‘시끄러운 한은’의 숙제···‘왜요?’ 되묻는 민지 앞세운다는 이창용

한국은행 창립 73주년 2년차 소회 밝혀 토론문화 확산·자료공유 확대 내부 변화 “자유롭게 관행에 도전 분위기 조성해야”

2023-06-12     최주연 기자
‘할 말은 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창립 73주년을 맞은 한국은행 임직원에게 바라는 모습은 ‘관행에 도전하는 자유로움’이다. /연합뉴스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자”

‘할 말은 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창립 73주년을 맞은 임직원에게 바라는 모습은 ‘관행에 도전하는 자유로움’이다. 저출산, 고령화 등 팬데믹 이후 뉴노멀, 세계 경제의 분절화와 지정학적 갈등 심화, IT 기술 확산 등 경제 전반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점에서 새로운 환경에 맞서 과감한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총재는 토론문화와 자료공유 확대를 강조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본보기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다. 과거처럼 지시에 그대로 복종하고 따르기보다는 더 이야기하고 되묻고 소통하고 변화하자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소통하는 이 총재의 모습과 같은 결이다.

12일 이 총재는 한국은행 창립 73주년 기념사를 통해 “급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해결책을 찾아 쉼 없이 움직였던 한해였다”면서 “최근 주택시장의 부진이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부동산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금융 부문 리스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 시계에서는 금융 불균형이 재차 누증되지 않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해 가계 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차입 청산)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녹록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국가별로 물가 오름세와 경기 상황이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에 따른 정교한 정책 대응이 중요해졌고 각국 중앙은행의 능력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가 제시한 해법은 내부 경영의 변화다.

특히 이 총재는 ‘경영 인사 혁신방안’의 성과를 강조했다. 이 총재는 “토론문화 확산, 자료공유 확대 등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도 시작했다. 여러분의 협조 덕에 ‘한은사(寺)’에서 ‘시끄러운 한은’을 향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책과 내부 경영 모두에서 발전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날 들고 온 사자성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MZ 직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요 결정을 책임지고 수행하게 할 것을 제안했다. 고위 직급의 정보 독점화를 막고 전행적인 정보 공유가 핵심이라고 했다. 모두가 대변인이라는 마음으로 대외 소통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젊은 직원들이 그 변화의 한가운데 우뚝 서 주기를 바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업무지시에 대해 ‘왜요?’, ‘제가요?’, ‘지금요?’라고 되묻는 경향이 많다고 들었다”면서 “저는 한국은행에서 이러한 질문을 더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재는 “상사의 지시라면 수긍하기 어려워도 분위기를 고려하여 그냥 받아들이던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면서 “간부들은 젊은 직원들이 자유롭게 관행에 도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후세대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한 책무임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젊은 직원의 아이디어와 간부들의 경험이 어우러질 때 법고창신의 교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기자와 소통하는 총재, 솔직한 발언도
“헤드라인 바꿔줬으면 좋겠다” 불만도

이 총재는 금통위 종료 직후 기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지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재는 금통위 종료 직후 기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지속하고 있다. 언론뿐 아니라 시장과 소통에 힘을 쏟는 역대 한국은행 총재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지난달에는 정부의 구조 개혁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5월 25일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연금, 노동 개혁 등 구조개혁 추진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그는 “노동, 연금, 교육을 포함해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우리의 문제는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해당사자 간 사회적 타협이 어려워서 진척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마다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의 논의를 해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에 관심 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는데 다 관련이 있다. 이런 것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니 결국 재정, '돈 풀어서 해결하라', '금리 낮춰서 해결하라' 하면서 통화정책까지 부담이 온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그는 사회적 타협을 이루지 못해 해결하지 못한 것을 “재정·통화정책 보고 해결하라고 하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총재는 첫 번째 금리동결을 결정했던 지난 2월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물가보다 경기 챙겼다는 헤드라인에 대해 불편한 심정도 드러냈다. 그는 “물가를 고려하지 않고 금리정책을 결정했다는 해석은 사실과 맞지 않다. 경기를 비롯해 금융시장 안정도 고려하지만 저희가 생각해 왔던 물가 경로대로 가고 있기 때문에 동결했다”면서 “(전망대로) 물가가 더 빨리 안 내려오면 더 인상할 수도 있고 더 빨리 내려오면 다른 조치를 할 수도 있다. (기사) 헤드라인 바꿔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출입기자단과 함께하는 ‘호프데이’ 행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가기로 했다. 이 총재를 비롯해 부총재, 부총재보, 주요 부서장들이 참여해 자유로운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