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이야기] 엄마 집으로 내가 이사하다
유현숙『엄마의 방』연재 빈병 쓰레기를 주어오는 엄마 아들 붙잡혀 간다고 말해 회유 이후 꽃과 풀을 꺾어오는 엄마 농작물 심고 옥상 정원 만들어 요양보호사 자격증 있는 올케 일주일간 모셔주어 휴식 찾다
열려 있던 대문 안으로 엄마가 들어오며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왜 네가 여기 있어?”
“엄마랑 살려고 짐 다 버리고 이사 왔다고 전화로 얘기했잖아요.”
“열쇠는 어디서 났어?”
“엄마가 열쇠 나한테 다 맡기고 갔잖아요.”
“내가 그랬나? 그런데 아파트만 살다가 여기서 어떻게 살려고?”
“엄마가 우리 집으로 안 오니까 내가 와야지 어떡해요?”
“나 혼자서도 잘 사는데 왜? 네가 오니까 좋기는 하지만…….”
“엄마! 큰 소파랑 큰 식탁, 장식장 같은 큰 물건은 다 버렸지만, 160년 된 고목탁자는 엄마 응접실에 들여놨고, 그동안 모아온 그림들도 엄마 안 쓰는 방에 들여놨어요.”
“아까운 걸 다 버렸어? 그냥 안 쓰는 방에 들여놓지.”
“이사 가면 다시 살 거야. 좀 불편하겠지만…….”
사실 내가 아끼던 물건은 다시 살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잘못되면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기에 망설이지 않고 엄마에게로 왔다.
엄마가 돌아온 뒤 내가 하는 일은 엄마에 대한 관찰과 식사와 약 챙기기였다. 그리고 할 줄도 모르는 청소도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 밤이면 엄마가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일이 잦았다. 엄마가 밤에 몰래 빠져나가서 하는 일은 빈 병을 주워 오는 것이었다.
엄마가 귀국하기 전 청소를 하다가 몰래 감춰진 빈 병들을 이불장과 세탁기 안에서 찾아내서 다 내다 버렸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다 버린 모조 꽃을 주워서 꽃병에 꽂아두거나 이층 계단 밑에 빈 병들을 숨기기 일쑤였다.
나와 동생은 빈 병 줍기를 계속하면 생활비도 용돈도 안 주겠다고 협박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박스 줍는 할머니를 도와주려 한다고 했다.
“엄마도 돈 벌고 싶어 그래요? 애들이 리어카 하나 사주고 생활비랑 용돈 다 끊는다는데, 그렇게 살고 싶어요?”
별의별 협박을 해도 엄마는 내가 잠든 틈에 몰래 집을 나가 빈 병을 찾아 헤맸다. 그러면 엄마를 잘 아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네 엄마 영업집 병 모아둔 걸 가져가신대.”
너무 놀라 대문 앞으로 나가보니 엄마는 큰 포대를 질질 끌며 개선장군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문을 잠그지도 않고 빈 병을 찾으러 나간 것이다. 이 기회가 아니면 빈 병이 계속 집 안에 쌓일 것 같아 극약 처방을 했다.
“엄마, 빈 병 쓰레기 주워 오다 남의 걸 도둑질까지 한 거예요? 엄마 아끼는 큰아들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치매 엄마 관리를 잘못했다고 데려갔고, 나랑 엄마도 경찰서 가야 돼요. 왜 말 안 듣고 죄 없는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요?”
내 말에 엄마가 처음으로 놀라는 것 같았다.
“그럼 큰애가 잡혀갔어? 어떻게 해야 돼?”
“아들딸 다 감옥 보내놓고 엄마는 계속 빈 병 주우면 되지요. 우리 말 안 듣더니 이 꼴 돼서 좋아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되니?”
엄마는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마침 엄마가 빈 병을 가져온 주점은 내가 아는 곳이어서 먼저 전화로 사과를 했다. 처음이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엄마가 빈 병 가져온 집에 직접 가져다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과하고 빌고 와요. 절대로 아들 안 풀어준다니까 난 계속 빌어볼게요.”
엄마는 바짝 긴장되고 어두운 얼굴로 다시 빈 병 포대를 끌고 나갔다. 주점이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혼자 가시게 하고 다시 주점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는 빈 병 주우러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고, 엄마 큰아들 풀어준다고 말해달라고 했다. 이미 주변에서는 엄마의 치매를 알고 있는 터라 알았다고 했다.
전화를 하고 얼마 안 돼 엄마가 환한 얼굴로 돌아왔다.
“큰애 경찰서에서 금방 풀어준대. 음료수도 주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어. 너 아는 사람이라며? 잘 대해주더라. 나 다시는 병 안 주울 거야.”
엄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뒤로 엄마의 병 줍는 버릇은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청에서 심어둔 꽃을 뽑아오거나 쓸모없는 풀잎들을 뜯어다 모았다.
그동안은 엄마를 위해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 농장을 만들었다. 먹거리를 심고 가꾸는 일을 취미로 할 수 있게 20여 년간 온 가족이 도왔다. 그래서 엄마는 무엇이든 키우고 가꾸기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없어 옥상 정원을 만들고 엄마가 심고 싶어 하는 것들을 함께 심었다. 치매 환자에게 원예치료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하루도 늦출 수 없었다.
나 역시 단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주택에 와서 사는 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꼭 필요한 물건 외에는 다 버리고 왔어도 중요한 짐을 쌓아두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사 올 때 다 버려야 했던 40여 개의 크고 작은 화분이 사라져 내 삶은 삭막했다. 그래서 엄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옥상 정원은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었다.
옥상 정원에는 내가 좋아하는 꽃보다 엄마가 원하는 작물을 심었다. 상추와 고추, 오이, 호박, 토마토를 심었다. 또 내가 심고 싶어 하던 샐러드용 양상추도 심었다.
엄마 집으로 이사한 뒤 엄마는 자주 사라졌다. 엄마를 찾아다니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한시도 집을 비울 수 없었다. 내 신경 안테나는 늘 이층 엄마에게 향해 있었다.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늘 신경 써야 하는 상태로 지낸 탓에 우울감과 수면장애가 매일 계속되었다.
또 지인들이 집 근처로 찾아와 커피 한잔하자며 나오라고 해도 못 나갔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서 소외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집 안에서 24시간 내내 엄마를 지키느라 철창 없는 감옥살이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나는 삼시 세끼 밥을 먹어 본 적도 없다. 내가 엄마 건강과 약 드시는 걸 도와야 했기 때문에 막상 내 끼니는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엄마의 식생활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채식주의자에 생선도 안 먹던 엄마는 육식형으로 변했다. 과일을 좋아하긴 했지만 본인 입맛에 맞는 과일은 하루 종일 다 먹어버렸다.
그렇게 지쳐가던 내게 빛이 찾아왔다. 하루 세 시간씩 엄마를 돌봐줄 요양보호사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게 된다고 했다. 덕분에 아침 세 시간은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지치고 몸져누울 때쯤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고모의 하나뿐인 며느리가 며칠 편히 쉬라며 엄마를 일주일간 모시겠다고 한 것이다.
올케언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있고 구순이 넘은 고모를 모시는 처지다. 나는 마음 놓고 엄마에게 필요한 집을 쌌고, 큰동생이 엄마를 금호동 고모 집에 모셔갔다.
올케언니 덕분에 한의원 치료도 마음 놓고 받았다. 일주일은 제대로 쉴 수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가 잠시 손을 내밀어 준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럴 때 잠시 돌봐줄 며느리나 자매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곤 했다.
아들 셋에 딸 하나인 나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와 막내는 외국에 살고, 큰며느리는 직장 생활을 하는 터라 내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완전한 외톨이가 된 서러움이 순간순간 몰려와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 위 이야기는 유현숙의『엄마의 방』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