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 피해 여성 급증···보호 법망 사각지대

관련 법안 2년째 계류 중 해외는 규제 적용 대상 넓어 이수정 "시대 상황 맞춰 개정해야"

2023-06-02     이상무 기자
교제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지난달 28일 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연인이나 전 연인을 살해 또는 폭행하는 '교제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사회적인 문제로 번지고 있다. 교제폭력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인데 보호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일 보복살인과 사체은닉 등 6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김모씨가 검찰에 넘겨졌다. 그는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신을 교제폭력으로 신고하자 이에 격분해 주차장에서 기다리다 흉기로 살해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에서 헤어진 여자친구의 목을 조르고 멱살을 잡아 강제로 차에 태운 31세 남성이 체포됐다. 그는 스토킹과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이력이 있었다.

28일에도 새벽 경기 안산시 단원구 주택에서 한 30대 남성이 사귀던 30대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뒤 흉기로 자해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 벌어진 살인범죄는 미수와 예비 등을 합쳐 692건인데 범죄자와 피해자가 애인 사이인 경우가 9.3%였다.

경찰청 통계를 보더라도 2020년 1만9940건이었던 교제폭력 신고는 1년 만인 2021년 5만7297건으로 약 3배로 늘었다. 교제폭력으로 검거된 경우는 2016년 8367명에서 2021년 1만554명, 지난해에는 1만2841명으로 늘었다.

교제폭력은 입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접근금지 명령이나 가해자 분리 조치를 법적으로 규정한 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처벌법과 다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연락금지나 접근금지 등 긴급임시조치를 취하려면 사실혼 관계이거나 부부여야 한다.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법안들은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교제 중이거나 교제했던 상대로부터의 폭력을 가정 폭력으로 규정하고, 접근 금지 등의 제도를 통해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한다는 내용의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이 안되거나 논의 후 진전이 없는 상태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등은 지난해 7월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선진국에선 폭넓은 규제로 교제폭력을 처벌한다. 일본의 배우자폭력방지법은 한국의 가정폭력처벌법과 비슷하게 배우자, 이전 배우자, 사실혼 배우자 간의 폭력을 규제했다. 그러다가 2013년 적용 대상을 '생활 본거지를 같이하는 교제 관계'로 확대했다.

영국도 2012년 가정폭력의 정의를 '사회적·생물학적 성별에 관계 없이 가족구성원 또는 친밀한 파트너 관계거나 그런 관계였던 16세 이상인 자 사이에서 행해진 신체적·성적·폭력적·위협적 행동 등'으로 넓혔다. 과거 배우자 또는 파트너였거나 서로 결혼 의사가 있는 관계에도 적용된다.

전문가는 교제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일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파트너폭력처벌법' 이런 식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을 변경해야 한다"며 "시대 상황에 맞춰서 요새는 뭐 혼인 신고를 안 하고도 동거하는 커플이 많으니까 범위를 넓혀주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임시 조치 등이 다 많이 있는데 지금 국회가 쓸데없는 일에 낭비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본지와 통화에서 "피해자 보호 명령을 하거나 가해자 접근금지를 하는 부분이 부재한데, 일단 현재 법률적 형태에서는 경찰이 신변 보호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있으니까 그걸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다만 스토킹처벌법이 생긴 것처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보호 명령 같은 제도가 앞으로 추가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