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 더봄] 사람들은 불륜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사랑’이에요
[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 큐피트 화살을 맞은 최고의 미인 헬레네와 파리스 사랑의 도주로 '트로이 전쟁'은 시작되고
도대체 인간들은 왜 전쟁을 할까요? 러시아의 푸틴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그들 말대로 나토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본능인가요, 아니면 제국주의를 지향하며 호모 사피엔스의 속성인 탐욕을 터트린 것인가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누구인가를 두고 헤라와 아테나 그리고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경쟁하는 해프닝에서 비롯됩니다. 여신들은 황금사과 주인의 결정권을 쥔 파리스에게 갖가지 뇌물 공세를 퍼붓는데, 혈기 왕성한 청년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에게 주저 없이 사과를 건네지요.
아프로디테는 아들 큐피드를 시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마음에 사랑의 화살을 쏩니다. 결국 그녀가 9살 된 딸 헤르미오네를 버리고, 젊고 잘생긴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로 감으로써 그 전쟁이 시작되지요.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작은 또는 가벼운 오페라)인 <아름다운 엘렌>은 헬레네(엘렌)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그리스 신화를 패러디하여 예리한 시대 풍자와 세포마다 착착 붙는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발랄한 춤이 펼쳐지는 이 작품과 그리스 신화를 그린 화가의 명작을 살펴봅니다.
경쾌한 리듬과 아름다운 멜로디의 서곡이 흐르고 막을 올리면, 양치기가 제사장 칼카스를 찾아오는데, 그 직전에 편지를 입에 문 비둘기가 제사장에게 날아왔습니다. 편지에는 양치기와 엘렌(헬레네)을 만나게 해주라는 아프로디테의 뜻이 담겨 있었지요. 양치기는 아리아 ‘이다 산에서’를 부르며 황금사과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다 산에서
제사장의 중재로 양치기가 엘렌을 만나는데, 그를 만난 엘렌은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저항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지혜를 달라고 사랑의 여신께 도움을 요청하는데,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지요. 곧 엘렌의 남편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 그의 형인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 그리고 명장 아킬레우스 등이 등장하고, 엘렌도 자리에 함께합니다. 아가멤논의 주재로 그리스의 운명을 기도하는 제단에서 양치기는 자신이 트로이 왕의 아들인 파리스라고 스스로 신분을 밝힙니다.
엘렌이 잠든 사이 파리스가 등장해 잠든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지요. 잠이 깬 엘렌은 눈앞의 멋진 파리스를 보고는 자신이 분명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며 기뻐합니다. 아침이 되면 꿈도 사라질 것이라며, 그와 키스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요. 두 사람은 마냥 행복합니다.
그때 기도 갔던 크레타에서 갑자기 돌아온 메넬라오스가 왕비의 침실에 들어와 두 사람을 보고는 분노합니다. 모든 그리스의 왕들을 호출한 그는 그들의 불륜을 폭로하며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음을 고발합니다. 작곡가 오펜바흐는 이런 심각한 장면을 익살스러우면서도 재미있게 음악으로 풀어가고 있지요.
엘렌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사전 통보도 하지 않고 교양 없이 갑자기 돌아온 메넬라오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비난합니다. 부인이 남편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 메넬라오스는 파리스의 처벌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결국 왕들은 파리스를 스파르타에서 추방하기로 하지요. 엘렌은 추방당하는 파리스에게 자신의 사랑이 함께 할 것이라며 위로합니다.
얼마 후 아프로디테가 보낸 새로운 제사장이 탄 배가 오자, 모든 사람이 합창으로 그를 환영합니다. 신임 제사장은 아프로디테가 엘렌을 키테라로 데려오라고 했다며 왕 메넬라오스에게 신의 뜻을 전합니다. 신의 뜻에 따라 메넬라오스는 왕비를 배웅하지요. 배가 해안에서 멀어지자 제사장은 자신이 파리스라며 정체를 밝히고 엘렌과 뜨겁게 포옹하며 막을 내립니다.
헬레네와 파리스의 이야기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 그리고 사랑과 전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연애소설 같습니다. 신화는 오랫동안 여러 화가의 상상력을 자극했지요. 위 파브르의 ‘파리스의 심판’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고 제안한 아프로디테에게 파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증거인 황금사과를 건네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아들 큐피드가 축하하고 있으며, 선택받지 못한 헤라와 아테나는 두고 보자는 제스처를 보이며 떠나고 있지요. 붉은 옷을 입고 왕관을 쓴 헤라 옆에는 여신의 상징인 화려한 공작이 있고, 아테나는 투구를 쓰고 긴 창을 잡고 있군요. 다비드의 제자인 파브르는 원경과 근경을 나누고 균형 잡힌 구도를 바탕으로 정확한 데생 위에 깊이 있는 명암을 통해 입체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뚜렷한 색채의 대비도 인상 깊은 작품입니다.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서 역사·신화화(畵)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다비드는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자신을 선택한 파리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선물하지요.
위 그림은 배경에 그리스·로마 건축미를 보여주는 방에서 두 사람이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입니다. 홍조 띤 모습의 헬레네는 부끄러운 듯 다리를 꼬고 있으며, 붉게 상기된 파리스는 그녀를 잡아당기며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지요. 그들이 앉은 침대에는 붉은 덮개가 깔려 있어 격정의 사랑을 암시하고 있답니다. 인간들은 불륜이라지만, 신이 선택한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