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죽 쑤는데도 신용이 '트리플A'?···韓 ‘장그래’보단 ‘진도준’이었다

지난 1분기 순대외금융자산 7730억 달러 대외건전성 튼튼‧‧‧무디스 트리플 A 평가 “경상 적자지만 대외자산 축적 경로 확보”

2023-05-30     최주연 기자
반년 넘게 장사로 재미를 보지 못한 한국이 금융투자로 해외자산을 불리고 있다. 해외순자산만 7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 1분기는 전 분기보다 늘었다. 사진은 지난 5월 12일 뉴욕시 월스트리트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AFP=연합뉴스

반년 넘게 장사로 재미를 보지 못한 한국이 금융투자로 해외자산을 불리고 있다. 해외순자산만 7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 1분기는 전 분기보다 늘었다. 새 총알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확보해 놓은 총알로 새 가치를 만들고 있는 셈. 이에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 대외건전성에서 좋은 점수를 줬다. ‘트리플 A’로 평가한 곳도 있다.

올 1분기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반도체 수출이 급락했다. 한국은 ‘영업맨 장그래’보다는 ‘투자 귀재 진도준’이 돼 난관을 돌파하려 했다. 미국, 유럽, 일본 주식시장 호조세 덕을 봤다.

30일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순대외자산이 몇천 억대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투자자산에서 나오는 소득을 잘 살리면 경상수지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자산을 늘려나갈 수 있다”며 “무역과 같은 일반적인 것과 다른 형태의 대외자산 축적 경로를 확보했다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국제투자대조표’ 자료를 보면 순대외금융자산은 7730억 달러로 작년 말(7713억 달러) 대비 17억 달러 증가했다. 한국의 대외 지급 능력을 반영하는 순대외금융자산은 대외금융자산에 대외금융부채를 뺀 나머지를 가리킨다. (순자산=금융자산-금융부채) 올 초 미국과 유럽, 일본 주가가 상승하면서 주식투자를 중심으로 자산과 부채 잔액이 증가했는데 자산 증가 폭이 더 컸다.

순대외자산 증가 요인에는 수출 흑자와 금융 투자 두 가지 경로가 있다. 경상수지 등 실물 쪽에서 흑자가 날 때 금융 포지션에서 자산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수출 상황은 밝지 않다.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 부진 장기화로 수출이 7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 영향으로 올 1분기 경상수지는 11년 만에 적자(-44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적자 상황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데 컨센서스가 있다. 이 부전문위원은 “현재 한국의 경상수지가 그렇게 크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다”라며 “서브 항목인 무역수지가 문제라서 그런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물론 경상수지가 계속 적자면 나중에 순대외금융자산도 쪼그라들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나 연구기관이나 한국의 경상 적자가 만성화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데 의견일치를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 추이는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전에 쌓아둔 큰 폭의 경상 흑자가 자산 확대의 씨앗(SEED)이 되고 있다.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 추이는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인다. 이전에 쌓아둔 큰 폭의 경상 흑자가 자산 확대의 씨앗(SEED)이 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이 부전문위원은 “2010년대는 순대외자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구조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라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과거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흑자를 계속 쌓으면서 순대외자산이 쌓여갔고 저축해 놓은 것으로 해외자산으로 눈을 돌려서 비중을 늘려나가는 구조를 갖춰나갔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배당, 이자수익 등을 포함하는 본원소득수지는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큰 폭의 흑자를 보였다. 이로 인해 상품, 서비스 수지 등에서의 손실을 보전, 대외금융부채 증가를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 배당, 이자수익 등을 포함하는 본원소득수지는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큰 폭의 흑자를 보였다. /국제금융센터

한국의 순대외자산 규모는 주요국과 비교할 때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IMF 국제투자대조표 기준 일본이 3만1655억 달러로 최상위를 달리고 있고 △독일 2만9329억 달러 △중국 2만5313억 달러 △홍콩 1만7613억 달러 △대만 1만4107억 달러 △노르웨이 1만1825억 달러 △싱가포르 8221억 달러 △스위스 7789억 달러 다음으로 한국이 9번째 규모의 순자산을 기록하고 있다.(대만 2021년 말 기준 그 외는 2022년 말 기준)

글로벌 신평사 “한국 대외건전성 트리플 A”
외화 보유 세계 9위 “대외건전성 관리 만전”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대외건전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수출과 무역수지 적자 걱정을 할 때 글로벌 신평사들은 한국이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등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S&P는 “한국은 양호한 순대외포지션 및 긴 역사의 경상수지 흑자를 보유하고 있다(Strong external balance sheets)”라고 평가했고 무디스는 “한국은 경상수지와 순대외포지션 모두 대규모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AAA external vulnerability risk)”라고 평가했다. 또 피치는 “한국의 견조한 대외포지션은 글로벌 시장 변동성에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sound external finances)”라고 했다. 무디스의 경우 한국의 대외건전성에 ‘AAA’를 부여했다.

무디스는 “한국은 경상수지와 순대외포지션 모두 대규모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AAA external vulnerability risk)”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이 부전문위원은 최근 환율 불안도 대외건전성 하락이나 자금 유출 때문은 아니라고 봤다. 원/달러는 지난 17일 1343원까지 오르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 부전문위원은 “대외건전성에 대해 논의할 때 환율 불안을 먼저 꺼내고 금융위기를 거론하는데 최근의 환율 불안은 실물경제나 금융투자 활동 때문이다”라며 “가령 국민연금이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대규모 해외투자를 하는데 그 때문에 상방 압력을 받기도 한다. 금융위기 때문에 환율이 오른다고 볼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신평사 등 어디를 봐도 한국의 대외 부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라며 “경상수지 적자임에도 어떻게 좋은 평가를 받는지 의문스럽겠지만 이는 순대외포지션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유복근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국외투자통계팀장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조6643억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GDP의 46%를 순대외금융자산으로 갖고 있는 셈이다”라며 “외화보유액이 세계 9위 수준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대외 지급 능력과 외채 건전성 측면에서의 대외건전성은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기획재정부는 “정부는 자금 유출입 동향과 만기 구조 추이, 외화자금시장 영향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대외건전성 관리 노력을 지속 강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