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왜 은퇴한 아버지는 외로운가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취미 있어야 수동적 취미보다 능동적 취미가 좋아 자신이 원하는 취미 찾는 방법은?
동창들과 술 한잔한 후 집에 들어가는데 창문으로 아이들과 아내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기타 반주에 맞춰 거실에서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현관에서 인기척이 나자 음악이 딱 그쳤다. 아버지가 귀가한 것이다. 아들 녀석이 아버지를 향해 ‘이제 오셨어요’라며 꾸벅 인사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딸아이도 엄마와 아버지의 눈치를 보다가 곧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아내도 곧장 부엌으로 가버린다. 말은 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있는데 왜 일찍 와서 분위기를 깨냐는 눈치다.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며 자신이 대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사실 아버지도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대화를 하려고 하면 뒷걸음질부터 친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늘 엄하고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어느 연구소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물었더니 잔소리 많은 사람,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사람, 휴일에 거실에서 TV만 보는 사람 등으로 답변이 나왔다. 문제는 또 있다. 아이들과 함께할 공통된 취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남은 인생 잘 보내려면 지금부터라도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취미 한두 가지는 찾아봐야 한다.
어떤 취미를 갖는 것이 좋을까. 취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능동적 취미와 수동적 취미다. 능동적 취미는 스스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며 자의적으로 여가를 즐기는 행위다. 예를 들면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글쓰기 등이 능동적 취미다. 여행을 가더라도 지도를 보고 가야 할 곳과 머무를 숙박업소를 찾고 일정을 짜는 것은 능동적 취미다.
반면 여행사에서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을 따라 관광하는 것은 수동적 취미다. 관광 중에 무언가 하고 싶어도 정해진 일정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버스에서 기다리는 가이드의 눈총을 받기 쉽다. TV 시청도 대표적인 수동적 취미다. 남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취미다. 물론 TV 시청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습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능동적 취미가 좋을까, 수동적 취미가 좋을까. 학자들은 일에 몰입했다가 그 몰입에서 벗어날 때 우리 몸에 좋은 엔도르핀이 나온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 주자가 한 시간 가까이 연주해야 하는 협주곡을 오케스트라와 하모니를 잘 이루어 마쳤을 때, 산악인이 암벽 등반을 마치고 무사히 평지에 두 발을 딛었을 때 엔도르핀이 솟는 것이다.
심리학자의 연구 조사에 의하면, 능동적 취미는 몰입하는 정도가 47%에 달한다. 반면 수동적 취미는 그 정도가 4%에 불과하다. 능동적 취미를 즐길 때 몰입하는 정도가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기왕 취미생활을 하려면 수동적 취미보다 능동적 취미가 더 바람직하다.
이 밖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새로운 사람과 교류하게 되고 동호회를 결성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에 의하면 인간에게 소속감의 욕구가 있는데 직장에서 은퇴한 후에는 소속감이 없어지며 자칫 정체성이 흔들리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이럴 때 동호회를 통해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소속감의 욕구도 충족하게 된다. 특히 가족과 함께 취미를 즐기면 공통 관심사가 생겨 대화가 풍부해지고 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물론이다.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취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먼저 종이에 원하는 바를 써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남이 원하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남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느라 애를 썼는데 후반생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다음의 세 가지 활동을 기준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를 찾아봐도 좋다. 첫째 현재 흥미를 느끼고 있는 활동. 둘째 과거에 하려고 했던 활동. 셋째 앞으로 하려고 생각 중인 활동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넘겨버리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모두 기록한다. 똑같은 활동이 반복돼도 괜찮다.
리스트를 작성했다면 이 중 몇 가지를 골라 활동을 시작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좋다. 또 ‘시한부 인생을 산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고민을 통해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할 수 있다.
인생에서 달성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새롭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먼저 목표를 정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좌절도 느끼겠지만 보람도 얻을 수 있다. 이것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