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팩] 과장된 한미 금리차 공포‧‧‧“실제 0.85% 불과, 자본 유출 우려 그만”

역전 이후 외국인 순매수 17조원 넘어서 “명목 아닌 인플레 반영된 실질금리 봐야”

2023-05-26     최주연 기자
1.75%. 한미 금리 역전 차가 사상 최대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1999년 기준금리 제도를 도입한 이후 미국 금리가 더 높아질 때마다 미디어는 자본 유출 우려를 전달했다. /연합뉴스

1.75%. 한미 금리 역전 차가 사상 최대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1999년 기준금리 제도를 도입한 이후 미국 금리가 더 높아질 때마다 미디어는 자본 유출 우려를 전파했다. 돈 굴리기에 더 유리한 미국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거라는 것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28년 만에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 인상) 단행으로 한미 간 금리 역전에 대한 걱정은 매체마다 넘쳐났다. 그럴 때마다 한은 총재는 우려만큼 자본 유출이 보이지 않는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언론이 앞장서서 불안을 조장하지 말라는 거다.

최대로 벌어진 한미 금리 역전 차. 실제 자본유출은 있는가. 여성경제신문이 [깐깐한 팩트 탐구] 코너를 통해 낱낱이 밝혀본다.

“금리차 프레임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1.75% 역사적인 금리차에 원화 가치가 절하될 거라는 말도 있었다.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는다는 시그널에 환율이 내려가지(원화 가치 절상) 않았나. 금리 격차를 기계적으로 볼 게 아니고 주위 다른 요인들을 봐야 한다. 이는 경험으로 봐도 이론으로도 맞지 않는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25일 3연속 금리 동결을 발표한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출입 기자들에게 "금리차 프레임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미 금리 격차를 기계적으로 보면서 자본유출을 우려할 게 아니고 주위 다른 요인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25일 3연속 금리 동결을 발표한 이후 기자회견장에서 출입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날 이 총재는 1.4%로 하향 조정된 올해 경제 성장률(직전 1.6%)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담긴 보도도 경계했다. 경제 파국도 오지 않을뿐더러 제조업 중심에 에너지 수요가 많은 국가 입장에서 이 같은 성장률은 주요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

현재 미국과 금리 역전은 자본유출을 일으키고 있을까? 본지 확인 결과 그렇지 않았다. 이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거래실적을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26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한미 금리차가 최대(1.75%)로 벌어지기 시작한 지난 4일부터 이날까지(16영업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2조5582억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개미(국내 개인투자자)는 3조 원가량 순매도했다. 개미가 던진 물량을 외국인이 받는 모양새다.

연준은 작년 3월 금리 인상을 시작해 지난 4일까지 14개월간 쉬지 않고 금리를 올렸다. 초고강도 긴축으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려 했다. 미국의 작년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9.1%를 찍었다.

미국이 자국 물가 때려잡는 굿판에 한국도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국보다 먼저인 2021년 8월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이후 연준의 강한 금리 인상 폭에 금리차는 역전됐다. 처음 금리가 역전된 때는 작년 7월 28일로 연준이 2번째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이후다. (연준은 다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도 금리를 0.75% 올렸고 기어코 4연속 자이언트스텝을 완성했다.)

한국은 미국보다 먼저인 2021년 8월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이후 연준의 강한 금리 인상 폭에 금리차는 역전됐다. 처음 금리가 역전된 때는 작년 7월 28일로 연준이 2번째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이후다. /최주연 기자

이후 본격적으로 한미 금리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금통위가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2022년 8월 25일)하며 기준금리를 2.5% 동률로 만들었지만 미국의 3번째 자이언트스텝(미국 3.25%, 2022년 9월 22일) 이후 역전됐다. 그러나 외국인 순매수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유가증권시장에서의 투자실적을 집계하더라도 외국인은 지금까지 총 17조1670억원을 순매수했다.(2022년 9월 22일~2023년 5월 26일) 이 기간 개미는 15조7780억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개미 관계는 같은 패턴을 보인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17조 원어치를 순매수할 때 한미 금리차는 0.25~1.75%포인트 사이를 오갔다. 이는 무엇을 시사할까. 전문가들은 눈으로 보이는 명목 금리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자본유출을 일으키는 유의미한 금리차는 실질 금리차라는 것이다.

물가 반영한 한미 실질 금리차 0.85%
인플레 수준 달라 美 금리 좇지 말아야

국내외 전문가들은 작년 미국 물가가 한국에 비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실질 금리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금리 차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본 유출은 명목 금리차보다 실질 금리차에 영향을 받는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를 반영한 실제 화폐가치 차이다”라며 “실질금리로 치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명목금리로 보면 한미 금리차는 1.75%다. ‘실질금리=명목금리-기대인플레이션율’일 때 미국의 실질금리는 0.85%(5.25%-4.4%)다. 반면 한국은 0%(3.5%-3.5%)로 두 나라 간 금리차는 0.85%로 좁혀진다. 알려진 금리차의 절반이다.

김 교수는 “인플레이션율이 비슷하면 명목금리를 자본유출 척도로 활용할 수 있지만 국가별 물가가 다르고 그에 따른 실질 화폐 가치 차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 시기에는 실질금리 활용이 적절하다”면서 "우리나라 물가가 앞으로 더 낮아지면 실질금리는 더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한미) 금리 차는 더 좁혀진다"라고 설명했다. 즉 금리 차 때문에 자본유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난 18일 ‘한국과 미국의 경제 전망’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에 참여한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도 김 교수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배로 교수는 향후 4년까지도 매년 미국은 물가가 최대 5%까지 오를 것이라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에 때마다 한국이 맞춰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배로 교수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 금리를 따져봐야 한다. 이유는 미국이 한국보다 물가가 훨씬 많이 높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실질 금리는 현재 비슷한 수준일 거라고 했다. 배로 교수는 20년 전인 2003년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한 달여간 강의하며 이름을 알린 바 있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이다.

금리차보다 중요한 것은 무역 상황이다. 무역 악재는 실제 자본유출을 이끌 수 있다. 한국 수출은 7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경상수지도 적자를 기록했다. 11년 만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금리 차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정식 교수 제공

김 교수는 “경상수지나 환율이 악화할 때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환율도 문제로 부상했다”라며 “원/달러 환율은 하락하는데 엔화와 위안화는 올라가고 있다. 이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때문에 수출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출을 늘려서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다”라며 “금리 차이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