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숙인의 늪] 원치 않는 임신만 3번, 붙잡을 동아줄도 없었다

길거리 성폭력 24시간 노출 노숙인 복지도 남성 중심적

2023-05-24     김현우 기자, 김혜선 기자
23일 서울역 앞 거리에 잠들어 있는 여성 노숙인 /여성경제신문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규율을 만들어 사회 안전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서울역 노숙인 세상에서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매의 눈을 켜고 때를 노리는 수컷 사이에서 붙잡을 마지막 동아줄도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10년째 봉사하는 종교 단체 관계자 경식 씨(가명·42·남)는 여성경제신문을 만나 숨겨 놓았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원치 않은 임신을 3번 한 여성 노숙인 사연이었다. 

"무료 배식 업무를 보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노숙인 형미 씨(가명·32·여) 배가 부풀어 오른 걸 목격했다. 설마 하고 물어보니 어느 날부터 배가 부풀어 오른다고 하더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해보니 임신 4개월차였다. 애초부터 정신 상태가 왔다 갔다 하던 사람이라 자초지종을 물어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 상황 판단도 안 돼 보였다." - 경식 씨

 "에... 음... 자고 있었는데... 대왕 아저씨가 깨웠어요... 음... 대왕 아저씨가 머리 잡고 끌고 갔어요... 지하도는 바닥이 딱딱해서 잘 때 불편하니까 다른 곳에 옮겨준댔어요. 그래서... 그래서... 따라갔는데 옷을 벗기고 괴물로 변했어요." -형미 씨

 "이미 임신 4개월을 넘어선 상황이라 일단 출산하기로 했어요. 아이가 태어났고 육아할 상황이 아니니 우선 아동 보호 시설로 아이를 보냈죠. 형미 씨는 이대로는 서울역에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종교 단체 후원금으로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 방을 내어 줬어요. 그런데 이 또한 대안은 아니었죠. 쪽방촌마저도 입주자 대부분이 남성이라 같은 상황을 또 당했어요. 길거리도 아니고 이번엔 밀폐된 공간이다 보니 남성들에게 형미 씨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던 거죠. 원치 않은 임신을 3번을 한 형미 씨는 결국 마지막에 만난 남자에게 사로잡혀 다시 서울역 거리로 돌아갔어요. 그 남자는 형미 씨를 지켜주겠단 명목하에 아직도 곁에 두고  노리개로 삼고 있어요. 경찰을 불러도 형미 씨가 아니라고 하니 도울 방법도 남자를 구속할 방법도 없죠." - 경식 씨

여성경제신문이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 결과를 전달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약 4505명이던 서울시 노숙인 수는 점차 감소해 2020년 3895명으로 확인됐다. 2013년 대비 2020년 전체 노숙인은 15.6% 줄었다.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은 22.4% 감소한 반면 여성은 9.0%나 늘어났다.

특히 노숙인협회 조사를 보면 서울역·쪽방촌 거주 노숙인 중 32%는 교도소 만기 출소자다. 만기 출소자의 3년 이내 재범률이 24.9%인 상황에서 여성 노숙인이 이들 사이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 

23일 서울역 앞에서 무료 배식을 받기 위해 노숙인이 줄을 서 있다. /여성경제신문

또한 여성 노숙인과 남성 노숙인은 노숙 유입 계기에서 두드러지는 차이를 보였다. 여성 거리 노숙인 43.3%, 시설에 입소한 여성 노숙인 63.3%가 가족관계의 어려움을 문제로 노숙을 시작한 것으로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드러났다. 실직 및 사업 실패 등 경제적인 어려움이 주원인인 남성 노숙인과는 상황이 달랐다. 여성의 노숙 원인으로는 가족 해체와 실직뿐 아니라 가정폭력, 친족간 성폭력, 정신질환과 관련한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여성 노숙인은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수반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체 노숙인 중 알코올·약물 중독, 우울증 등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노숙인의 비율은 여성이 47.6%, 남성이 22.9%였다. 장애 진단을 받은 비율도 여성 집단에서는 55.4%, 남성 집단에서는 27.3%로 여성의 비율이 더 높았다. 정신질환을 가진 노숙인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도 질병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질병 자체를 부정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복지 대상에서 제외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실제로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에 비해 폭력에 노출될 확률도 높았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및 향후 대책(안)’에 따르면 노숙 생활 중 구타 및 가혹행위, 성추행을 겪었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 노숙인보다 여성 노숙인이 6.7%p 컸다. 2017년에는 여성 노숙인이 동료 남성 노숙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재경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본지에 "여성 노숙인을 위협하는 주요 상대는 대부분 남성 노숙인"이라며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보다 힘이 약하고 여성 노숙인의 다수가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갖고 있어 저항이 더욱 힘들다. 피해를 겪어도 공권력이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어렵기에 지속적인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숙인 복지도 남성중심적이다. 2018년 기준 여성 노숙인 전용 시설은 전국 12곳. 이마저도 △서울 9개 △인천 2개 △경기 1개로 수도권 지역에만 존재했다. 비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 노숙인은 사실상 전용 시설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시설 정원은 총 961명으로 전체 여성 노숙인의 34.2%만 수용할 수 있다.

자녀를 동반하거나 임신한 여성 노숙인은 입소 가능한 시설을 찾기조차 어렵다. 중학생 이상 남자아이나 생후 7개월 이내 자녀를 동반한 경우 시설 입소 자체가 어렵다. 여성 노숙인과 그 자녀가 입소할 수 있는 모자 시설이 있긴 하지만 서울시 △강서구 △관악구 △은평구 등 3곳에만 몰려 있다.

서울역은 노숙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 중 하나다. /여성경제신문

정신질환자 비율이 높다는 여성 노숙인의 특성 역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정신질환자의 경우 스스로 병을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노숙인이 응급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국공립병원이 거의 유일한데 이곳도 여성 병상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에서 노숙인에게 지원하는 일자리는 용접이나 건설 현장 노동 등 남성중심적인 분야가 대부분이다. 노숙인 일자리 참여도를 보면 여성의 참여도는 60.9%로 65.8%인 남성보다 낮다. 이중 남성의 43.2%가 고임금 건설일용직에 근무하는 반면 여성의 43.6%가 서울시 제공 일자리에 참여했다. 서울시 제공 일자리에 동일하게 참여해도 남성은 자활근로의 비율이 높은 반면 여성은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받는 공원 청소나 복지 업무 보조에 참여했다.

서울역 노숙인 봉사단체인 '거리에서' 김민욱 대표는 본지에 "가정폭력 때문에 임신한 상태로 집을 나온 여성을 임신을 이유로 홈리스 시설에서 받아주지 않고 미혼모 시설에서도 미혼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사례가 있다"면서 "결국 쪽방에서 임시 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요양·재활 시설은 중앙정부에서 거리 노숙이나 자활시설은 지자체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이원화돼 있다. 노숙인이 정책에서 소외당하니 정부나 지자체 예산도 적을 수밖에 없어 성별 특성을 반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