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기획] 아버지가 물려주신 자수정 반지, 톰보이와는 어울리지 않았네

주얼리 공모전 다이아몬드상 작품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았던 우리 고모 거미 모양 반지 물려받은 박준희 님

2023-05-27     최영은 기자

여성경제신문은 신년기획으로 주얼리 공모전을 기획했습니다. 시즌1 장롱 속 주얼리 공모전에 이어 시즌2인 ‘반지의 추억’을 진행했습니다. ‘반지의 추억’에서는 반지와 그에 얽힌 사연을 받았습니다. 주얼리 공모전은 찬란했던 우리 인생의 한순간과 함께한 주얼리를 꺼내 추억을 소환하면서 어려운 시대 용기와 희망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아래는 공모전에 출품한 박준희 님의 사연입니다.

사촌들과 함께한 박준희 님(왼쪽에서 두 번째) /박준희

겁 없이 나이 오십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겠다며 시작한 것이 '귀금속 공예'입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금속과 광물의 특성에 매력을 느끼고 개인적으로 디자인 작업을 더 발전시켜 보고자 공모전을 찾아보던 중 발견한 것이 '반지의 추억' 공모전이었습니다.

노안이 오기 시작한 나이에 이 길로 들어서게 한 에너지가 무엇일까? 아버지 앨범에 꽂혀 있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보석 사진들, 주얼리 사진들,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고모의 손가락에 끼워진 투명하고 반짝이는 유색 보석 반지. 할머니의 한복 가슴께를 장식했던 해바라기 모양의 오팔 브로치?

어린 시절, 시골의 태양 빛에서 자라 시커먼 여자애의 눈에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손가락에서 번쩍거리는 거대한 투명 보석 반지를 낀 고모가 마치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보였습니다.

성인이 되자 금귀걸이를 주시고 아이를 낳자 핑크색 유색 보석이 박힌 금반지를 주셨지요. 어머니와 의논해서 미리 물려주시기로 하신 것 같습니다. 당시 젊은 나에겐 너무도 과분했습니다.

박준희 님이 감정을 의뢰한 사연 속의 자수정 반지. 거미를 형상화해서 주문 제작한 반지’라고 한다. /미래 보석감정원

고풍스럽지만 조금은 올드했던 반지는 척 봐도 톰보이인 나에겐 안 어울려도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언제 이 알을 빼서 금을 돈으로 바꾸나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깊은 상실감이 찾아왔습니다. 남아있는 모든 것의 역사가 안타깝고 또 궁금했습니다. 그때는 물어 볼 수도 답변을 들을 수도 없었지요.

젊은 시절의 아버지 /박준희

인간이 이리 멍청합니다. 기회를 잃었을 때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습니다. 어머님이 알려주신 정보는 ‘거미를 형상화해서 주문 제작한 반지’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핑크색은 내가 익히 봐온 자수정이라기엔 너무도 옅은 핑크인데 도대체 어떤 돌인지 궁금했습니다.

감정원의 감정 결과 초록색 반지는 쿼츠에 염색한 처리석, 핑크색은 ‘천연 자수정’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염색한 초록색 처리석과 말도 못 하게 예쁜 연핑크를 가진 50년 된 천연 자수정 반지를 당당하게 물려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담당 교수이신 윤 교수님과 옆자리의 은주 씨가 뉴스레터의 공모전 안내 링크를 단톡방에 공유하지 않았다면, 공모전을 검색하지 않았다면, 1차 공모전을 놓친 뒤 2차가 있는지 몰랐다면, 당선되지 않았다면, 진심으로 맞이해 주신 미래 보석감정원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혹시 몰라 들고 간 모든 반지를 감정해 주시지 않았다면, 내 아이들은 물려받고도 이 반지들이 가진 역사를 알 수 없어서 억울했을 것입니다.

반지를 감정할 기회가 생겼다는 말에 어머니는 눈시울을 적시셨습니다. ‘아빠가 많이 기뻐하실 거다. 감사한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호탕하고 단단하고 호전적이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너그러운 아버지는 형제 중에 제일 못생겼지만 항상 손톱을 깨끗이 다듬으셨습니다.

줄무늬 감색 양복 상의 안쪽 노란색으로 성함을 궁서체로 써놓으셨던 내면이 아름다운 아버지의 핑크빛 천연자수정 거미 반지를 소개합니다.


사연 속 박준희 님의 반지는 미래 보석감정원에서 감별을 진행했습니다. 거미 형상의 반지는 캐보션 형태의 자색 메인스톤만 1개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착용으로 인한 생활상의 스크래치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반지의 표면은 깨끗하였고 광택 또한 매우 좋았기에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여 온 주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반지 제품에 대한 보증서 및 감별서는 소지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감별 결과, ‘천연 자수정’으로 감별되었습니다. 수정은 보석 고유의 색상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지는데, 자색이면 자수정, 황색이면 황수정, 무색인 경우에는 백수정 등 여러 가지 변종의 이름으로 분류됩니다.

특히 수정 중에서도 자수정은 예로부터 가장 널리 쓰이고 오랜 기간 동안 귀하게 여겨진 보석인데, 국내에서는 신라시대의 “금령총”에서 5~6세기경의 자수정 장신구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박준희 님은 “추측만 할 뿐이었던 자수정이 천연석임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남겨주신 물건이라 어머님께 맞춰드린 것인데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곳이 없었는데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금속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궁금한 게 많아졌는데 더불어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원장님께서 직접 친절하게 안내해 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감정 소감을 남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