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심 더봄] 지진 피해 노토반도(能登半島)의 빠른 복구를 기원하며
[양은심의 일본열도 발도장 찍기] (13) 이시카와현(石川県) 스즈시(珠洲市) 절에서도 프로젝션 맵핑을 즐기는 시대 지진 피해를 입은 미츠케지마(見附島) 라이트업한 해변가의 논, 시라요네 센마이다(白米千枚田)
노토사토야마(のと里山) 공항을 빠져나오자 까만 지붕들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회색과 갈색 지붕은 본 적이 있지만 까만 기와를 쓰는 동네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새로운 발견에 기분이 고조된다.
지붕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은 시마네현(島根県) 산자락 마을에서 갈색 기와지붕을 보고부터다. 한 동네의 통일된 지붕이 그 지역의 강한 개성으로 다가왔었다.
노토반도(能登半島)를 돌아보는 2박 3일 단체 여행.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서 약 1시간의 거리였다. 바닷가 동네에서 점심으로 노토마에즈시(能登前寿し)라 불리는 초밥을 먹은 후 노토철도(のと鉄道)를 타고 바닷가 경치를 구경하며 소지지소인(総持寺祖院)이라는 절로 이동했다. 첫날의 하이라이트다. 라이트업한 절 안을 돌아보고 나서 프로젝션 맵핑을 관람했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이상 절을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이 말은 다른 지방 절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프로젝션 맵핑 또한 방문자를 늘리기 위한 노력 중 하나이다. 스님이 되려는 사람도 귀하다며, 집에 가기 싫은 사람은 절에 남아도 좋다는 농담에 웃음이 퍼졌다. 지원자가 없는 와중에도 서양에서 온 스님이 유창한 일본어로 안내하여 적잖이 놀랐다.
절 입구에 스님과 동네 사람들이 마련한 소꿉놀이 같은 시장이 열렸다. 절에서 주방을 담당하는 스님이 직접 담갔다는 감주(甘酒)가 너무 달지 않고 맛있어서 두 잔이나 마셨다. 검은깨를 뿌린 떡과 함께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뜨근뜨근한 감주. 술술 넘어간다. 11월의 노토반도의 밤은 싸늘했다. "또?" 하며 활짝 웃으시던 스님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행 이틀째 날은 '군함섬(軍艦島)'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미츠케지마(見附島), '오쿠노토 국제예술제(奥能登国際芸術祭)'의 작품 관람, 스즈미사키(珠洲岬)에 있는 '푸른 동굴(青の洞窟)'과 '궁중 전망대(空中展望台)', 노토반도 끝에 있는 '롯코사키 등대(禄剛崎灯台)'와 염전 견학, 마지막으로 수확을 끝내고 라이트업한 '시라요네 센마이다(白米千枚田)'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섬'이라고도 불리는 '미츠케지마'. 지난 5월 5일에 있었던 지진 때에 앞부분이 무너져 내리는 큰 피해를 입었다. 썰물 때에는 육지에서 섬까지 걸어갈 수도 있는 곳이다.
오쿠노토 국제예술제(奥能登国際芸術祭)는 3년에 한 번 스즈시에서 열린다. 작품을 관람한 곳은 옛날 가옥을 증정받아 상설 전시관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이다. 가나자와(金沢) 미술공예대학 학생과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가 작품 안내를 담당하고 있었다. 카가와현(香川県)의 나오시마(直島)나 쇼도시마(小豆島)처럼 예술 애호가들이 방문하고픈 예술제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일본의 3대 힐링 스폿 중에 하나라는 '파란 동굴'. 동굴이 파랗다니 신비롭겠다 싶었는데, 파란빛을 썼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역사 속의 인물이 항해 중 태풍을 피해 피난했던 동굴로 '배를 숨기는 동굴'이라고 불렸었다고 한다. 동굴 안에 있는 하얀 돌멩이는 주워도 된단다. '행운의 돌'이란다. 하트 모양에 가까운 것을 하나 찾아서 기념으로 가져왔다.
해안가에 있는 '센마이다(千枚田)'로 향했다. '다타미 천 장의 논'. 작은 논들이 층층이 이어져 절경을 이룬다. 우리가 찾은 것은 11월이어서 수확을 끝낸 후 라이트업한 모습이었다. 차창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버스 안 여기저기서 실망하는 소리가 나왔다. 첨승원이 말한다. "우리가 내릴 즈음에는 그칠 거예요"라고. 부디 그러기를 바라며 어둠이 내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믿으면 이루어지는가? 빗발이 약해지더니 굳이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체재 시간 15분. 비에 젖은 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서두르며 발길을 옮기니 캄캄한 어둠 속에 라이트업된 논이 나타났다.
"이쁘다~! 볼 만하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불빛 너머는 바다이건만 칠흑 같은 어둠이 있을 뿐이다. 15분은 짧다. 분홍색도 보고 싶었으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둘러 버스로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자 빗발이 후드득 거세어졌다.
지난 5월 5일. 스즈시(珠洲市)와 와지마시(輪島市)에 매그니튜드 6.5에 달하는 지진이 있었다. 노토반도의 까만 지붕들이 무너져 내렸다. 힘든 코로나 시대를 견뎌내고 이제 좀 활기를 찾으려나 했는데, 이번엔 지진이다.
지진이 일어난 다음 날 뉴스였지 싶다. 공공기관에서 나누어 주는 천막을 받으러 온 모녀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자기네는 받았는데 모르는 어르신들이 계셔서 대신 받으러 왔다는 것이다. 비가 올지도 모르니 천막으로 임시 수리하시라고 나누어 주고 난 후, 다시 인터뷰에 응했다. 지진 첫날은 긴장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하룻밤 지나고 나니 앞날이 막막하다고 털어놓는다. 방금까지 씩씩했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내일 모레면 지진이 일어난 지 3주일이다.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린 'G7히로시마(広島) 정상회의'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며, 지진 피해를 전하는 뉴스의 양은 줄었다. 지진 피해자들은 '내 몫의 고통, 우리 동네의 고난'으로 여기며 또다시 견뎌낼 것이다.
이 글을 써도 되나 고민스러웠다. 결론은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노토반도에 관심 가져 주기를 바라며 쓰기로 했다.
노토반도의 하루 빠른 복구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