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탈시설, 왜 장애인 주거선택권을 박탈하나

탈시설 논쟁은 공급자 마인드 정책 수요자인 장애인의 요구는 뒷전으로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의 행복이 우선

2023-05-17     김현우 기자
최중증 장애인을 돌보고 있는 보호자 부모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에게 시설은 유일한 대안이자 희망인 상황. 그런데 이마저도 입소 대기자 명단에 걸려 수년을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최중증 장애인 석훈 씨. 그는 가래조차 마음대로 뱉지 못해 누군가 옆에서 직접 빼줘야 한다. 대소변도 못 가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행동장애까지 겹쳤다. 집안 곳곳을 부수고 다닌다. 석훈 씨 어머니는 냉장고·TV 등 집안 살림에 보호막까지 사비를 들여 설치했다. 

석훈 씨 어머니는 사실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아들을 맡아줄 곳이 없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본인 인생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에겐 석훈 씨를 장애인 시설로 입소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마저도 입소 대기만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시설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시설에서조차 최중증 장애인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장애인 시설 입소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살아 온 석훈 씨 어머니는 요즘 절망에 빠져 있다. 정치권에서 내놓은 장애인 탈시설 법안 때문이다. 장애인 시설을 늘려줘도 모자랄 판인데 있는 시설마저 줄이거나 폐쇄해 장애인을 지역사회로 돌려보내겠다는 정책을 정치권이 밀어붙이고 있다. 

대한민국엔 1만2000여 명의 석훈 씨가 있다. 지금도 최중증 장애인들은 집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거주시설 수기 명부에 작성된 시설 입소 대기자 현황은 2017년 1291명에서 2022년 5월 말 기준 5065명으로 4배 늘었다. 이런 상황에 지역사회 내 장애인 학대 사건은 증가 추세에 있다.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에 신고 접수된 장애인 학대 사건 중 학대 행위자가 피해자의 가족 및 친인척인 경우는 2018년 대비 50.2% 증가했고 일반 지역 사회의 지인인 경우도 63.6% 늘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지난 5년간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거나 자녀와 동반 자살하는 사건은 언론에 소개된 사례만 해도 무려 34건이나 발생했다.

장애인을 무조건 시설에 수용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건 과거 잘못된 관행이었다. 그렇다고 반대 극단으로 장애인을 시설에서 무조건 몰아내 집으로 돌려보내는 정책 역시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란 건 석훈 씨 사례만 봐도 명확하다.

탈시설 법안을 주장하는 측에선 복지사회라는 유럽 각국의 사례를 금과옥조처럼 들이민다. 그러나 유럽연합도 2010년 '시설에서 지역사회 기반으로의 전환에 대한 전문가보고서'를 발표해 적절한 대안 없는 시설 폐쇄를 경고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시설 이용자 수를 줄이는 겉치레 행정에만 포커스를 맞춘 나머지 지역사회의 준비 상황이나 역량을 고려하지 않았다가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는 10여 년 전부터 자체적인 탈시설 시범 사업을 진행해 왔다. 결과는 참혹하다. 거주시설 퇴소자 1178명 중 연고자 인도, 타 시설 전원, 사망하는 경우가 764명으로 약 65%에 이르렀다. 자립한 사람은 338명으로 약 28.7%에 불과한 상황이다.

즉 탈시설을 통해 지역사회로 자립한 게 아니라 3분의 2에 해당한 장애인이 시설보다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실정에서 과연 탈시설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탈시설을 추진하자면 장애인을 받아줄 지역사회부터 먼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석훈 씨와 같은 최중증 장애인을 지역사회가 돌볼 수 있도록 시스템과 긴급출동 서비스 등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런 준비 없이 장애인을 덜컥 집으로 돌려보내면 결국 가족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이는 비극적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탈시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전형적인 공급자 관점의 시각이다. 정작 수요자인 장애인의 선택은 배제돼 있다. 신체 일부가 불편할 뿐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장애인에겐 탈시설이 바람직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석훈 씨처럼 24시간 돌봄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장애인에겐 전문가가 상주하는 장애인 시설이 유일한 생존 대안일 수밖에 없다.

장애인마다 장애의 정도나 처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가 다르다. 이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시설에 몰아넣는 것도 옳지 않지만 반대로 시설에서 무조건 내모는 정책 역시 장애인의 선택을 무시하는 전시행정일 뿐이다.

현재 정부 차원의 탈시설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실효성 있는 지역사회 서비스가 어떻게 개발돼야 하는지 국내 여건에서 보완되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과 그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 목표로 세워야 한다. 탈시설 달성률 같은 관료나 정치인의 업적 쌓기가 목표가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