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부모님의 손을 잡고 마음을 들어보세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내일이 기대되는 일상을 마주하실 수 있도록 부모님의 행복을 찾아 드리는 방법을 고민할 때
5월 8일이 월요일이라 전 주 5일에 친정 부모님과 식사 약속을 잡았다. 평소에도 집에 모셔서 식사를 하거나 맛집을 찾아 외식을 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어버이날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두 분이 좋아하시는 음식으로, 너무 북적이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상암동까지 가게 됐다. 초밥 등 일식을 푸짐히 먹을 수 있는 뷔페로 예약을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연휴 첫날인 데다 어린이날이다 보니 넓은 식당이 여유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날이 날이니만큼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부터 노부모를 모시고 온 대가족까지 홀 안 테이블이 꽉 찼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니 손주들을 챙기는 할머니, 며느리를 챙기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실감됐다. 우리 가족 역시 오랜만에 만난 손녀딸 근황이 이야기의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어린이날 용돈을 안 주면 본인들이 서운하다며 기어코 쥐여 주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보며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눈을 맞추며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은 언제나 자식 걱정이 우선인 분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너무 당연히 여긴다.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지, 전하는 눈길이 무얼 말하는지 가늠해 보지 않으면서 말이다.
연휴 동안 우연히 시청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얼마나 부모님과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옥탑방의 문제아들>(KBS2)이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강수지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한 장면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함께 6년을 지내며 두 사람은 늘 함께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매해 1월 수첩에 적어 둔 유언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이젠 가야지… 그만 가야 해… 수지, 연명치료는 하지 마라. 내가 죽으면 입던 옷 아무거나 입고 가고 싶다. 그리고 꽃 같은 것 하지 마라. 관은 제일 싼 것으로 해라. 늘그막에 너무나 행복했다. 수지,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
아버지가 써 놓으신 대로 보내 드렸다는 그녀는 지금도 후회되는 건 함께 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는 거라고 한다 “부모님의 손을 한번 잡아보세요. 아무 말 안 해도 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느껴질 거예요”라고 말하며 자신은 지금까지 그 온기로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수지의 이야기 중 내가 주목한 건 아버지가 남긴 ‘늘그막에 너무나 행복했다’라는 구절이다.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음이 들 수 있게 할까.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그런 딸이 나왔다. 평소 좋아하는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자연의 철학자들>(KBS1)에서도 ‘울 엄마 맹순 씨의 새들처럼’이란 제목으로 모녀가 등장했다.
올해로 여든두 살인 엄마 정맹순 씨의 얼굴은 활기가 가득했다. 아파트 베란다와 주변 나무를 돌며 새들을 만나고 다시 이걸 그려내는 일상이 즐겁기만 하다고 말한다. 2018년 심장 수술을 한 후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녀에게 두 딸은 함께 새를 관찰하자고 말했다. 베란다에 새들을 위한 먹이를 놓아두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딸들은 또 이렇게 맹순 씨의 집으로 찾아온 새들을 한 마리씩 그려보면 어떻겠냐며 색연필을 전했다. 어색하고 서툴렀던 엄마의 그림은 이제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달력을 만들 정도가 됐다. 딸들과 함께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평안한 노모의 얼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버이날에 제주도에 계신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늦은 오후 집에 그냥 앉아 계신다고 하시기에 친구분들이라도 만나러 나가시라고 했더니, ‘이제 가까웠던 친구들이 점점 사라지네’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한 해 한 해 부모님의 시간은 달라진다. 몸과 마음의 기력이 이전 같지 않은 그분들이 일상의 즐거움을 다시 만날 수 있게 관심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야말로 자식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오롯이 생각해 봤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