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포기했던 춤, 연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다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 도전기] 무용 선생님의 최애 학생은 나였다 내 동작이 제일 미숙했기 때문 보다 못한 딸이 개인 레슨을 시작 "몸에 힘 빼고 음악에 몸을 맡겨라"

2023-06-02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지난 회에서 이어짐)

몸동작을 가르치는 선생님께서 목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가 제자리에 가져오는 닭 동작을 보여 주고서 한 사람씩 따라 해보라고 하셨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흉내를 내보았다. 내 차례가 되자 목과 가슴을 동시에 내밀었다. 마치 날아가려고 준비하는 듯한 자세가 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어설픈 동작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연극 아카데미 회원 대부분 동작이 어설펐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동작을 취할 때마다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꾹 참았다. 그러나, 연습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조금씩 닭을 닮아갈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몸동작 후에 안무가 시작되었다. 안무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여자 선생님이 가르쳤다. 우리나라 춤과 서양 춤인 발레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발레는 발뒤꿈치를 세우지만, 우리나라 춤은 발뒤꿈치가 땅에 닿는다. 발레는 발가락을 세워 몸을 지탱하고 이동한다. 우리나라 춤은 발뒤꿈치를 땅에 대고 앞부분을 세워서 이동한다.

난 솔직하게 말해서 한 번도 서양 춤인 발레와 우리 춤의 차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발레 공연을 보면서 그들이 입고 있는 멋진 의상과 음악에 맞추어 사뿐사뿐 날아오르는 모습에 넋을 빼앗겼을 뿐이다. 발가락을 세워 우아하게 걷거나 뱅글뱅글 돌 때 그저 황홀하게 쳐다보며 멋지다고 생각했다.

발레는 발뒤꿈치를 세우고 발가락을 땅에 붙여 춤을 춘다.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추는 우리나라 춤과 발의 사용 부위가 다르다. /픽사베이

한복을 입고 추는 춤은 손이 보일 뿐(어떤 경우엔 손마저 보이지 않는다) 치마 속에 발이 파묻혀서 발동작이 보이지 않는 때도 많지 않은가?

한국의 대표적인 춤, 부채춤이다. 발레와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점이 있다. /픽사베이
이 춤은 손도 발도 보이지 않는다. 서양 춤인 발레와 우리 춤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픽사베이

이런 것도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어쨌든 연기를 공부하면서 모르던 혹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무 선생님께서는 몸을 흥겹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순전한 나의 해석이지만 꽹과리 치고 북 치는 잔칫집에 가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손 움직이고 어깨 들썩이지 않는가? 다리도 살짝살짝 들고. 그러다가 막걸리 한잔 걸치면 살짝살짝 들던 다리가 번쩍번쩍 하늘 향했다가 땅 향하고, 취기에 몸도 유연하게 돌아가고.

어릴 적 동네에서 열리는 환갑잔치를 구경할라치면 북 치는 고수, 꽹과리 치고 상모 돌리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요조숙녀처럼 움직임이 얌전하지만 흥이 고조에 달하면 북 치는 사람도 고개와 팔이 신들린 듯 흔들리고 꽹과리 치는 사람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온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우리 민족은 흥이 많다고나 할까? 몸을 흥겹게 만드는 일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안무 선생님의 춤을 봐도 흥이 많다는 것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몸의 움직임이 아주 유연하다.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선생님의 모습은 닭 한 마리가 빨리 뛰는 것 같기도 하고 새 한 마리가 날갯짓하며 훨훨 나는 모습 같기도 했다. 우리도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손과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기도 하고 발을 재빠르게 움직여서 종종걸음을 걷기도 했다. 동작이 많이 미숙한 연기자에게는 1 대 1 개인 레슨도 해 주셨다.

선생님께서 제일 총애하는 학생은 바로 나였다. 왜일까? 내 동작이 제일 미숙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몸치다. 스포츠 댄스를 배워 멋지게 춤추어 보겠다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첫 시간에 그만둔 전력이 있는 몸치다. 그때는 내 마음대로 그만둘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된 춤을 추어야만 한다.

그날 배운 안무 동작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집에서 땀이 나도록 열심히 연습했다. 미숙한 몸동작을 혹시 남편이 볼까 염려되어 절대로 거실에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아뿔싸’ 외출하고 돌아온 딸에게 딱 걸렸다. 어설픈 몸치의 춤을 본 딸이 동영상을 봐도 되냐고 물었다. 두어 번 반복해서 보더니 딸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같이 추어보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한바탕 춤이 끝나자 나의 춤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선생님의 춤과 나의 춤을 동영상으로 비교해 보니 웃음이 나왔다. 털썩 주저앉았다.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까? 선생님이 얼음 위를 사뿐사뿐 걸어간다면 나는 쿵쾅쿵쾅 소리 나게 걸어서 얼음이 쩍쩍 갈라질 것 같았다. 난 갈라진 얼음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한 마리 소같이 매뉴얼에도 없는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결국 딸이 개인 레슨을 해 주기로 했다.  

딸의 첫 번째 조언은 손가락에 관한 것이었다. 손가락 다섯 개를 나란히 펴지 말고 셋째, 넷째 손가락은 붙여서 아래로 향하게 하고 둘째손가락은 약간 위로 향하게 하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자연스럽게 펴라고 했다. 손가락 움직임이 리듬을 타는 것 같았다.  팔을 흔들 때 파도를 타듯이 어깨도 같이 움직이라고 했다. 고개를 돌릴 때는 확실하게 돌리고 엉덩이도 마찬가지로 오른쪽 왼쪽으로 확실히 돌리라고 했다.

음악이 나오면 몸이 리듬을 타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했다. 몸이 너무 뻣뻣하다나···.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지 말고 음악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었다. 흥을 일부러 만들지 말고 흥이 나도록. 그렇게 연습해서 가도 내 춤은 선생님 보시기에는 미숙했나 보다. 최종 리허설에서도 나 혼자 개인 레슨을 받았다. 목과 손을 확실하게 반대 방향으로 해 달라는 주문과 함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