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원자로 전쟁] ⑦ 원전10機 독자 수출 어려워진 尹, 노선 바꿀까?

빈 살만 이미 중국과 우라늄 개발 시작 이대로면 SMR도 들러리 시공사 전락 한·미 전문가 "양국 갈등 중·러만 이득"

2023-05-06     이상헌 기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전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나 석탄·천연가스 발전만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건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좇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원자력 발전은 청정에너지이지만 '후쿠시마'라는 트라우마가 늘 따라다닌다. 청정에너지와 안전이란 평행선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인류에 새 가능성이 열렸다. 바로 '소형 원자로(SMR)'다. SMR은 작은 용기 안에 원자로와 냉각기를 일체형으로 넣은 발전 시스템이다. 일체형이어서 폭발 위험성이 제로에 가깝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도 소형이어서 피해는 제한적이다. 원전 선진국인 한국은 일찌감치 SMR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탈원전' 도그마에 빠져 수년을 허송했다. 그 사이 미국·중국·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앞다퉈 SMR 개발과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늦었지만 한국에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원전 건설이나 운영 경험을 많이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이 본격화되는 소형 원자로 전쟁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한국의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①탄소중립 시대, 소형원자로가 답이다 
②한국형원자로 vs 소형원자로 뭐가 다르길래? 
③"SMR 정쟁 대상 아냐" 국회도 한목소리
④韓·美 공동수출 약속하고···폴란드·체코 충돌
⑤파이로프로세싱 논쟁 본격화···尹 선택은?
⑥한수원 이집트 원전 수주···美 역린 건드렸나

⑦尹 원전 10기 독자 수주 어렵다···재검토 필요
⑧한·미·일 원자력 안전·안보 동맹 가능성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6월 22일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에 진열된 한국형 APR1400 원자로 모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한국형 원자로 대표 모델인 APR1400의 독자 수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반미 독재 정권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핵 개발 용인 노선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동을 걸면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핵확산 우려국에 대한 수출 금지 메시지가 담기면서다.

7일 원자력계에선 핵확산방지조약(NPT) 준수를 선언한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 한국형 원자로 독자 수출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치권에선 미국과 맞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양국의 경제 안보 전문가들은 공동 수출 전선 구축이 유일한 돌파구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인이면 누구든 APR1400의 독자 수출을 꿈꾸겠지만, 원자력 산업은 미국이 기술·금융을 주도하고 한국은 시공 능력을 앞세워 공급망을 지원해 온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원자력 동맹'을 강화해 세계 원전 시장의 70%를 점령한 러시아를 몰아내고 중국이 러시아를 대체하는 상황까지 방지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미국은 SMR 부문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신규 원전국에 SMR 도입을 위한 초기 기반 구축을 지원하는 퍼스트(FIRST) 프로그램을 지난해 발족해 적극 추진 중이다. 윤 대통령 방미에 맞춰 SMR 개발사인 뉴스케일파워는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수출입은행 등과 글로벌 시장에 SMR을 보급하기 위해 기술·금융 및 제작·공급망 지원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한국 기업은 여기서 도우미 역할이다. 미국 뉴스케일파워가 설계한 SMR을 한국의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조하고 삼성물산이 시공하는 그림이다. 국내 1위 민자 발전사 GS에너지가 원전 밀집 지역인 경상북도 등에 미국형 SMR을 들여놓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형 SMR에 비해 한국형 SMR은 개발 속도가 크게 뒤처지는 실정이다. 뉴스케일파워는 지난 2020년 일찍이 세계 원자력 관련 최고 인증기관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 인증을 받았다. 지난 2019년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 일부 지분을 확보하며 SMR 제작성 검토 및 시제품 제작을 공동으로 진행해 왔지만 원천기술은 뉴스케일 소유다.

반면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에서 개발한 원자로는 설계 도면만 존재하는 '종이 원자로'에 불과하다. 대표적으로 1997년부터 개발해 2012년 인허가를 받은 바 있는 세계 최초의 SMR인 SMART는 사장된 채 수십 년째 머물러 있다. 본지는 앞서 [소형원자로 전쟁④] 한·미 공동 수출 약속하고도···폴란드·체코서 충돌 편을 통해 한국이 SMR 부문에선 러시아·미국·프랑스·중국보다 뒤처진 세계 5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짚어봤다.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 모습. 가로 8분의 1, 세로 12분의 1로 축약한 모형이다. /이상헌 기자

미국과 600억 달러 시장서 경합 예상
美 DOE 승인 없이는 독자수주 불가능 

한국은 그간 국내외에서 원전 31기를 건설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을 필두로 3세대 경수로 완공 실적(6기)은 미국(4기)이나 유럽(3기)에 비해 앞선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때와는 달리 신규 수출 모델이 100% 국산화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미국을 경쟁국으로 삼으며 동유럽 폴란드와 체코 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올 초 미국 에너지부(DOE)가 체코 수출 승인 신청서를 반려했다.

한미 공동성명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 참가국으로만 원전을 수출할 수 있다는 단서까지 붙었다. IAEA 추가의정서는 한국과 미국이 IAEA로부터 핵물질 감시를 받지 않는 나라, 즉 핵무기 전용 우려가 있는 국가엔 원전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2021년 5월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에서 약속된 것이다.

이어 윤 대통령과의 만남에선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따라붙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웨스팅하우스 기술과 무관하며 미국의 동의 없이 제한 없이 수출할 수 있다"는 한수원의 입장이 무색해진 것이다.

본지 조사 결과 IAEA 추가의정서에 가입(★ 표시)한 140여 개국 가운데 9곳에서 신규 원전 건설이 추진 중이다. 폴란드(★1단계 6~8기, 2단계 2~4기), 체코(★4기), 헝가리(★4기), 루마니아(★2기), 불가리아(★4기), 이집트(4기), 사우디(2기), 튀르키예(★4기), 우간다(★2기), 영국(★2기), 네덜란드(★2기)가 원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국가다. 

전 세계 신규 원전 프로젝트 추진 현황 /정리=여성경제신문

미국과 경합 중인 원전 시장 규모는 유럽·중동 등지에서 약 600억 달러(79조원)로 파악된다. 앞서 신규원전 2기 건설을 러시아 로사톰에 발주했으나 보안 문제로 일정을 지연 중인 헝가리를 제외하면 IAEA 추가의정서 가입국 8곳에서 30여 기 신규 원전 수주를 두고 맞붙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그동안 수출에 공을 들여온 사우디와 함께 이집트는 미가입국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3년 만의 원전 노형 수출을 목표로 공을 들여온 폴란드 민간 발전사(ZE PAK)의 '퐁트누프 프로젝트'는 정부 간 운영위원회까지 추진됐으나 수주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27일에 맞춰 바르샤바를 방문한 패트릭 프래그먼 웨스팅하우스 사장이 "미국법·국제법상 한국은 2단계 공사 수주가 어렵다"고 언급하면서 미국 에너지부 승인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전력공사 역시 튀르키예 원전 수주전에서 미국의 벽을 마주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전은 영국원자력청이 추진하는 신규원전 사업개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지만, 이마저도 당초 프랑스 EDF가 80% 지분을 가진 프로젝트다. 한국 정부가 반도체 기술 제휴를 앞세워 파트너십을 강화해 온 네덜란드에서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경쟁이 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은 오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공약했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 수주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는 양상이다. 미국의 수출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원전은 최근 두산에너빌리티가 한수원에 주기기를 공급하기로 한 국내 신한울 3·4호기가 전부인 셈이다. 원전 한 기 건설비가 약 10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눈 앞에 펼쳐진 600억 달러 시장 가운데 이대로는 30분의 1의 내수용 수주만 가능한 셈이다.

중국이 개발한 화롱 원자로 내부 전경 /중국핵공업집단공사

한미 갈등 지속 시 중·러에 안방 내줄 판
HLBC 정상화···핵 안전·안보 협력해야

전 세계 원전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는 러시아다. 2022년 기준 13개국에서 건설 중인 수출 원전 34기 중 러시아가 건설하는 비중은 23기로 전체의 약 68%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는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자금 지원, 우라늄 농축, 운영 및 유지보수 등 신규 원전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옵션을 '원스톱 패키지'로 묶어 제공하는 로사톰이 있다.

결국 IAEA 추가의정서 미가입국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곳은 러시아와 중국 업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22년 사우디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원자로 건설 지원의 양해각서를 체결한 빈살만 왕세자가 우라늄 탐사를 지원한 베이징 우라늄지질연구소에 '감사장'을 발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런 시기 한국은 로사톰이 주기기를 공급하는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 측 터빈 아일랜드(Turbine Island) 건설공사를 수주하면서 워싱턴의 분노를 샀다. (관련 기사: [소형원자로 전쟁] ⑥ 한수원 이집트 원전 수주···美 역린 건드렸나)

중국은 3대 국영기업인 CNNC, CGN, SPIC 중심으로 러시아와 함께 원전 수출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의 강력한 해외 진출 정책에 힘입어 자체 개발한 원전인 화롱(Hualong)을 파키스탄에 이어 최근 아르헨티나에까지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카자흐스탄과는 우라늄 협약을 맺어 국내외 원전 확대를 위한 안정적인 원전 연료 공급망 기반 구축에도 착수했다.

웨스팅하우스가 인수한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의 시스템 80+ 원자로(왼쪽)와 한국형 원자로 APR1400(오른쪽) 시스템도. /웨스팅하우스 등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이 자사가 2000년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을 인수하면서 지식재산 권리를 획득한 시스템 80과 시스템 80+의 설계를 토대로 개발됐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이는 다시 말해 한국이 원자로를 수출하는 모든 국가가 미국 집행 기관과 의회의 승인이 필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 모델의 복잡성을 줄이고 능동적 안전 조치에 방점이 맞춰진 System 80+와 마찬가지로 APR1400에는 4개의 별도 증기 발생기와 관련 배관 루프가 있는 대신 2개의 증기 발생기만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런 한미 간 분열의 틈을 타 중국이 시장에 치고 들어올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광석 원자력연구원 박사는 최근 워싱턴DC 우드로 윌슨 센터가 주최한 한미 공동 세미나에서 "러시아-중국 간의 강화되는 연대에 대응해 지금은 한미가 원자력 안전 기준 강화를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라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한미 고위급원자력위원회(HLBC)가 재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네스 루옹고(kenneth luongo) 세계안보협력재단 이사장도 우려를 표했다. 한미 간 지식재산권 갈등으로 국제 원자력 안전 기준이 전반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네스 이사장은 "최근 미국의 정책에 '신뢰할 수 있는 동맹으로의 복귀(reteurn to our reliable allies)란 내용이 담겼다"며 "해외 공동연구 투자 개발을 통해 원자력 안전과 안보(Nuclear Safety and Security) 강화에 힘을 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