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시청자를 꽁꽁 묶어버린 '퀸메이커' 김희애의 스카프

[홍미옥의 일상다반사] 스토리를 끌고 가는 소품 스카프와 블레임 룩의 의미는? 인터넷쇼핑몰·남대문시장을 후끈 달구는 '김희애 스카프' 10년전 여고 동창들 마음을 하나로 묶은 시장표 스카프

2023-05-08     홍미옥 모바일 그림작가
지금 남대문시장에서는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하듯 저렴한 가격에 스카프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림=홍미옥, 갤럭시 노트20 울트라

수시로 대박을 터뜨리는 K-콘텐츠의 선두엔 한국 드라마가 있다. 상반기에 전국을 한바탕 휩쓸며 학폭이라는 사회문제까지 돌아보게 한 송혜교의 <글로리>가 있었다면 요즘은 <퀸메이커>가 그 뒤를 이어받았다.

화제 면에선 글로리보다 덜한 면도 있지만 극 중 주인공인 김희애의 패션이 장안의 화제다. 그 중심엔 스카프가 있다.

■ 스토리를 끌고 가는 스카프와 블레임 룩(Blame Look)

넷플릭스 드라마 '퀸메이커'의 한 장면. 주인공의 오간자 스카프가 돋보인다. 하늘하늘 얇은 소재지만 힘이 있는 느낌이 주인공 캐릭터와 닮은듯하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드라마 퀸메이커는 배우 김희애와 문소리가 호흡을 맞춘 넷플릭스 시리즈다.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고 흔들던 황도희(김희애)가 인권변호사 오경숙(문소리)과 서울시장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정치드라마다. 드라마는 바람에 날려 물에 빠진 스카프를 주우면서 시작한다. 결국 스카프는 버거운 '훈장' 또는 '결박' 같은 의미로 주인공을 옭아맨다.

더불어 매번 큰일을 앞두고 등장하는 김희애의 스카프 패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늘하늘 잠자리 날개 같은 오간자 소재의 스카프는 의외로 힘 있고 강단 있게 그녀의 목을 감쌌다. 길게 늘어뜨린 타이 스타일의 롱스카프는 일견 강한 모습이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게 드라마가 전개되는 내내 다양하게 등장하던 스카프는 마치 말하듯이 스토리를 이끌고 간다. 그 영향일까? 인터넷 쇼핑몰에는 '김희애 스카프'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제는 패션계나 정치계의 전문용어가 되었다는 블레임 룩! 비난한다는 의미의 블레임(Blame)과 보여지는 스타일 차림새(look)의 합성어다.

분명 사회적으로 비난 받아야 마땅할 대상이 입고 걸치는 패션이 때론 선망의 대상으로 혹은 조롱의 의미로 유행하는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직도 생생한 린다김의 에스까다 선글라스, 짝퉁임이 밝혀지긴 했지만, 신창원의 미소니 티셔츠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누군가는 단순한 모방심리였겠고 또 누군가는 그를 조롱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이런 '블레임룩' 현상은 드라마 퀸메이커에도 등장한다. 극 중 초반 검찰에 소환되는 재벌가 여인의 사회적 물의나 이슈는 치밀하게 계획된 전략에 의해 흐려지고 말았다. 그 중심에는 대중의 매서운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도구로 패션이 등장한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불빛 앞에 선 피의자는 어마어마한 가격의 재킷과 가방, 명품 스카프로 비난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가 착용한 모든 것은 완판 행진을 하며 대중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야 만 것이다.

그 모든 걸 계획하고 설계하는 역을 맡은 김희애의 스카프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매번 소재와 모양을 달리하며 화려하게 때론 심플하게 등장한다.

■ 시장표 스카프로 꽁꽁 묶은 우정

남대문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다양한 스카프들 /사진=홍미옥

오늘도 남대문시장은 더할 수 없이 넉넉했다. 에르×× 구×× 루이×× 스카프가 두 장에 오천 원이라는 넉살 좋은 상인의 외침이 정겹다. 한 눈에도 조잡한 패턴이 눈에 들어오지만 100퍼센트 명품 스타일 실크라고 우기는 패기 또한 유쾌하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스카프 매대 앞에는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굳이 드라마의 영향이 아니었더라도 스카프는 여성들에겐 손수건보다도 더 강력한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패션 소품을 넘어서 일상 소지품이 되어버린 모양새다. 일교차가 20도를 넘나드는 변덕스러운 요즘 날씨에는 더욱더 필요한 존재다. 어디 그뿐일까? 피해 갈 수 없는 중년의 노화현상인 목주름을 가리기에도 스카프만 한 건 없다.

오래전, 시장표 스카프로 단단하고 끈끈하게 연결된 친구와의 우정 /사진=홍미옥

십 년도 훌쩍 넘은 어느 여름, 만나면 그저 즐겁기만 한 여고 동창들은 저마다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목이 아닌 머리에 야무지게! 드라마 속 화려한 스카프가 아닌 소박한 시장표 스카프는 우리의 머리와 우정을 단단하게 묶어주었다. 나름 컨셉이었을까? 사진을 찍어 주던 이도 웃음을 참아가며 중년 아줌마들의 스카프 놀이를 응원해 줬던 것 같다.

값비싼 명품이 아니어도, 차르르한 실크가 아니어도 간단한 소품 하나가 기억해 주고 저장해 주는 추억은 참으로 소중하기만 하다. 개인적으론 이제 '멋'보다 '보온'이나 '목주름 가리개'로 스카프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살짝 서러워지려 한다.

하지만 지금 난 단골 쇼핑몰에서 '김희애 스카프'를 열심히 검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