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UBS 이어 美 JP모건도···글로벌 은행, 신용위기 구원투수로
도드-프랭크법 완화···감독 포기로 파산 규모만 더 커진 美 중소은행 대형은행 없었다면 그대로 뱅크런 규제 완화로 인한 과점 체제 무죄
유럽에서 UBS가 크레딧스위스(CS)를 인수한 데 이어 미국에서 파산 위기에 내몰렸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JB모건이 인수하면서 대형 은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2일 미국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시간으로 이날 새벽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부(DFPI)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지정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파산과 함께 매각이 결정됐다.
퍼스트리퍼블릭의 몰락은 과거 금융위기 당시 워싱턴 뮤추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지난해 말 기준 퍼스트리퍼블릭은 미국 내 14번째로 큰 은행으로 연결자산은 약 2130억 달러에 달한다.
뉴욕 등 부유 지역에 입점한 퍼스트리퍼블릭은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유사한 사업구조와 취약점을 가졌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정한 보험 한도인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자산을 가진 예금자가 다수인 가운데 지불 유예 가능성이 현실화하면서다.
앞서 미국 대형은행 11곳이 퍼스트리퍼블릭을 지원하기 위해 300억 달러를 예치했지만 은행의 주가를 크게 끌어올리지 못했다. 또 은행이 지난 1분기 실적에서 예금 감소 등을 발표하면서 투자 심리는 빠르게 냉각됐다.
결국 JP모건이 구원투수로 나서면서 은행권 시스템 위기설이 일단은 진정됐으나 초대형 금융사의 도움으로 급한 불을 끈 모양새가 되면서 이들의 힘을 제한하기 원하는 정치권의 시도는 무색해졌다.
또 올해 파산한 퍼스트리퍼블릭,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쳐 뱅크 오브 뉴욕의 자산을 합하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25개의 은행 자산보다 많다. 결국 은행업 규제가 아닌 금융당국의 대형은행에 대한 감독 소홀이 문제를 빚은 것이다.
지난 2018년 도드-프랭크법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자산 규모 500억 달러 이상이던 금융감독 대상을 자산 2500억 달러 이상으로 축소하며 사실상 감독 기능을 무력화시킨 것이 결정타가 됐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도드-프랭크법 완화는 은행의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오바마 대통령이 2015년 입법한 '볼커룰'(Volcker Rule)을 완화하는 내용이었으나, 초대형 은행은 큰 변화 없이 나머지 은행들의 고위험 투자를 방치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면제하는 감독 부실을 낳았다.
美 증시 상장은행 97%가 미실현손실
양적완화 추진하면서 감독 소홀한 탓
또 파산 규모도 커졌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2130억 달러로 자산이 가장 많았고, SVB(2090억 달러), 시그니처은행(1100억 달러) 순이었다. 당시 워싱턴 뮤추얼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파산으로 3070억 달러의 자산을 잃은 바 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이번에 파산한 3사의 자산 규모가 지난 2008년 파산한 25개 은행보다 크다. 당시 25개 은행의 자산은 현재 가치로 환산했을 때 5260억 달러(한화 약 705조3000억원)다.
미국 은행은 금리 인상으로 국채 등 보유 장기채권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금리 인상으로 미 장기채권의 가격은 재작년에 비해 20~30% 하락했다. 증시에 상장된 전체 435개의 은행 가운데 97%가 대출에서 미실현손실을 입은 상태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대출 미실현손실(222억 달러)은 총 자기자본(174억 달러)을 모두 잠식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QE)를 통해 풀린 돈이 은행의 채권과 대출 증가로 이어졌고 제로금리 덕택에 고정 이자도 매우 낮게 책정됐기 때문이다. 김성재 미국 가드너웹 대학교 교수는 "은행 위기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최근의 긴축(QT)보다는 과거의 무분별한 장기 양적완화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이런 이유로 금산분리 강화와 같은 대형은행 과점 규제에 집중하기보단 신용 위기에 보다 많이 노출된 상호신용금고 등 제2금융권을 포함한 금융권에 대한 전반적인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시중은행의 과점 체계 약화와 수익성 약화는 시스템 리스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면서 "국내 은행의 경우는 적절한 가산금리 체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미래 성장과 경쟁을 위한 전략 차원에서 비이자 수익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