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러 수출 제재 물 만난 현대車···생산공장 멈춰도 잘 팔리네

카자흐스탄 등 총동원해도 물량 못 맞춰 우회수출 현대차 베이온 인기 상품 등극

2023-04-25     이상헌 기자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시장의 인기 상품으로 떠오른 현대차 베이온(Bayon)이 어디론가 실려 가고 있다. /현대자동차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와 함께 정부가 대(對)러시아 수출 통제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지만 완성차의 우회 수출은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현지 생산 공장을 멈춰도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딜러를 통하면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일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세스트로레츠크에 위치한 현대차 루스 공장은 생산이 일시적으로 중지된 상태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이 현대·기아차 등을 병행수입 목록에 포함하면서 현지 인기 상품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까지 현대차는 러시아 자동차 시장 1위 업체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해당 공장은 2011년 완공돼 러시아 내수와 유럽 수출을 아우르는 거점이었다. 루스 공장에서 내수용으로 생산되는 자동차는 한 해 약 8만대로 추정된다. 아울러 유럽 시장으로 수출해 온 자동차 대수는 지난 2012년 2만 8000대에서 최근까지 14만 2000대로 증가해 왔다.

러시아 생산 공백을 카자흐스탄 공장에서 만회한다는 것이 현대차 전략이다. 카자흐스탄 현지 생산량은 2020년 기준 한 해 3만 3192대 수준이다. 이 밖에도 △체코 노스 모라바이 스코다 △터키 히즈메트 공장 △슬로바키아 공장 등을 가동 중이다. 그런데 이들 공장을 풀가동해도 물량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현대차의 인기가 높다.

러시아에선 최근 현대 베이온이 딜러들의 판매 인기 상품으로 우회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판매 가격은 190만 루블(한화로 3100만원) 정도로 전해진다. 러시아 매체 페드럴프레스(Federal Press) 조사에 따르면 현대차는 7%의 지지를 얻어 러시아 내 5위의 인기 브랜드를 차지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러시아 내 생산이 막힌 이유는 러시아산 제품을 유럽연합(EU)으로 수출 금지한 조치가 일차적인 원인이다. 러시아는 현재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해 외교·무역·투자 등에서 각종 불이익을 주고 있다. 자동차 및 가전 업체들이 대부분 공장 가동을 중단한 이유다. 다만 러시아 현지에서 국민 라면으로 등극한 팔도라면을 생산하는 에치와이(hy) 정도가 예외적인 전시특수를 누리고 있다.

결국 현대차의 한 발 걸쳐 놓기가 섣부른 매각보다 효과적인 전략이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르노·닛산·포드·메르세데스-벤츠 등 해외 경쟁사들은 합작사 지분을 전쟁이 끝난 이후 되사는 조건으로 러시아 국영 기관으로 헐값에 넘겼다. 도요타는 아예 현지 법인을 임의 청산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고급 스포츠카를 생산해 온 이탈리아 페라리는 러시아에 차량을 더는 팔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람보르기니도 사업을 중단했다.

러시아에 자산을 남겨놓은 완성차 업체는 매각 진행 중인 폭스바겐을 제외하곤 현대차가 유일하다. 부품만 확보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생산 재개를 통한 내수 물량 소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기업인 마이크론사의 대중 수출이 금지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듯, 정부 차원에서 무리하게 참견해 기존의 틀만 바꾸지 않는다면 전후(戰後) 특수까지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