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사프란볼루 가는 길, 알라 할머니 (1)
[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산 넘어 산, 여섯 시간 버스 여행 스토킹을 피하니 화장실이 급해 네? 어쩌구 저쩌구 아알라아아~
‘안돼! 하필이면 이 사람이라니···.’
오토갈(튀르키예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바로 그 할머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던 바로 그 분이다.
할머니는 당신의 차도르 자락으로 대합실 바닥을 모두 닦으려는 듯 구석구석 걷다가 내게 돌진해왔다. 우뚝 솟은 배는 내 얼굴에, 흘러내린 옷가지로는 내 무릎께를 건드리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어쩌고 저쩌고 아알라아아아~”
할머니가 돌진하면 나는 최대한 쪼그려 몸을 숙였다. ‘하~흡~하~후~’ 할머니는 인공호흡이 필요한 사람처럼 밭고 가쁜 숨을 내 목덜미 뒤로 쏟아냈다. 하필이면 내가 앉은 벽에 시계가 걸려있었다. 1분 간격으로 달려와 시간을 확인하는 할머니를 피해 시원한 대합실 의자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었다.
바로 그 할머니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사프란볼루까지 여섯 시간이 넘는 기나긴 버스 여행의 동석자가 하필이면 그인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시작된 할머니의 공격 혹은 구애는 집요했다. 아예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앉아서 계속 말을 붙였다. ‘어쩌고 저쩌고 아알라아아아’를 반복하며 나와 눈을 맞추려 필사적이다.
“벤 툭체 빌묘름(저는 튀르키예 말을 하지 못합니다.)”
나는 미리 외워둔 말을 반복하며 안타까운 듯 양쪽 눈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가 두 번째로 택한 방법은 찌르기 혹은 건드리기다. 말 그대로 팔꿈치 공격.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마다 나를 툭툭 치며 눈을 깜박거렸다. ‘멋있지?’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할머니는 자기 나라 풍경에 새삼 감동하는 듯했다. 문제는 이 팔꿈치 찌르기도 1분 간격이라는 것이다. 책을 펼치거나 메모하려고 창에서 고개를 거두면 어김없이 툭 치는 태클이 들어왔다. ‘저거 봐야지 뭐해’라는 듯 턱으로 밖을 가리키며 풍경을 보라고 보챘다.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말로 나는 소심한 맞대응을 시작했다.
“그만 좀 치세요. 지금 짜증 만땅이거든요.”
그때 내 기분을 한마디로 하자면 ‘망했다!’ 되시겠다. 고요히 펼쳐질 예닐곱 시간을 고대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나타날 줄이야. 어떤 거부반응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튀르키예 할머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육로 여행, 철기 문명의 나라 히타이트를 상상하며 튀르키예의 땅을 지나고 싶었던 바람이 폭염 아래 아지랑이가 되고 있었다. 응대하기도 너무 성가셔 자는 척을 해볼까 했지만 그럴 수야 없다. 커피색 땅을 뒤덮은 해바라기 벌판, 꿈꾸던 장관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데 스토커 할머니를 피하자고 꿈꿔왔던 풍경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제 여행을 할머니가 완전히 망치고 있거든요!”
순하고 착한 표정을 입에 물고 나는 할머니의 손을 떼어내며 독한 소리를 했다.
“오늘 정말 운이 너무 나쁘네요. 하필 할머니 옆자리에 앉았으니까요.”
한국말을 아는 사람에게는 절대 할 수 없을 말을 하면서 친절하고 상냥한 표정을 짓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정신 이상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나름의 노력이었다. 할머니의 1분 공세를 견디며, 버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지 않고, 그러니까 온전한 정신으로 무사히 샤프란볼루까지 가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해두자.
웬만한 찌르기에는 반응하지 않고 모르는 척 하리라 결심했는데 어느 순간 할머니가 체중을 실어 내 어깨를 누르며 입으로 푸르륵~ 새 날아가는 소리를 냈다. 목젖을 울리는 쩌렁쩌렁 우렁찬 코골이의 시작이었다. 세상에···, 드디어 할머니가 잠을 자기 시작했다.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타자의 코 고는 소리에 그렇게 깊은 평안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할머니가 잠들고 평화를 누리나 했는데 아무래도 커피가 문제였을까? 방광의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 손바닥 실금마다 땀이 맺히고 부드러운 버스 진동에도 아슬아슬 참기가 힘들어졌다. 앞자리 의자를 잡고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어 사지의 근력으로 한참을 버틴 후였다. 한 번 휴게소에서 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미 네 시간이 지났다. 아··· 진땀이 나며 소름이 끼쳐오는 한계에 달했다.
염치 불구하고 투발렛!(튀르예어로 화장실)을 외치려는데 거짓말처럼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휴게소로 진입했다. 나는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통로를 달려 나가 버스 문이 열리는 동시에 용수철처럼 튀어 내렸다. 참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보이는 것도 없고 생각도 없는 무아지경의 상태였다. 당연히 나는 앞으로 내게 무슨 일이 닥치리라는 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