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웃는 새] ② 한국은 스파이에게 천국···美 CIA 감청 무방비
한국산 무기 지원 바라는 미국 러 보복 두려워 망설여온 韓 양측 틈 노린 공작으로 드러난 무방비 상태의 대통령실 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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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새(笑鳥, The Laughing Bird) 작전. 1980년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한 전두환 정부가 펼친 건국 이래 최초 경제정보 수집 활동을 말한다. 재일동포들의 적극적인 협조 결과 일본 정부의 극비리 에너지 프로젝트인 '선샤인 공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이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전략방위구상을 발표하기 3년 전의 일이었다. 반세기 만에 신냉전이 돌아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중국과 러시아 압박 카드를 쏟아내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통상 지형도 양자(兩者)에서 다자(多者)·진영(陣營) 중심으로 이동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신냉전을 '경제 전쟁'이라고 표현해 왔다. 한국 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시도 중에 있었다. 이런 가운데 '칩4'로 표현되는 경제 동맹이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최선의 답안을 찾는 것이 오늘의 과제다. 다만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국내 경제안보법제는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해외정보기관의 스파이 침투 등에 무방비한 법제로 인해 미·중 보호무역주의에 끌려다니기만 할 판이다. 여성경제신문이 반도체 세계 대전과 함께 본격화하는 경제정보 전쟁의 상황을 살펴보고 돌파구를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① 반도체 전쟁 시작인데···국익 뒷전 韓 경제정보법 |
"세상에 친구인 정보기구는 없다. 단지 우방의 정보기구가 있을 뿐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 (1970년)
미국 정보 공동체에 침투한 이중스파이가 유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호정보(SIGINT) 문건 가운데 중앙정보국(CIA)이 한국 대통령실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를 도·감청해온 정보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10일 대통령실은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보도된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며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고 밝혔으나, 비밀·방첩 공작의 연장선으로 진행되는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과 감청은 일상적 업무로 분류된다.
물론 한국 입장에선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법적 제재 수단도 없고 상대국의 정보활동을 중단시키기도 어렵다. 미국은 우방국에 대한 도·감청을 상대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지는 비적대적인 정보수집 활동으로 간주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SIGINT는 일반적으로 신호(signals)라고 일컬어지는 전자파를 도중에 가로채는 방법(intercept)으로 이뤄지는 정보수집 활동이다. 어느 국가나 민감한 정보는 중요성을 고려해 암호화하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처럼 방첩 개념이 전무한 상대국일수록 마이크로칩(microchip) 같은 간단한 장치만으로 고급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미국은 현지 주둔 미군 기지를 비롯해 대사관·영사관·무역대표부 등에 신호정보 기지를 둬 CIA와 국가안보국(NSA)이 합동으로 운용해 왔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모스크바 주미 대사관에 비밀스럽게 설치된 신호정보 감청 기지에서 공산당 총서기 브레즈네프를 비롯한 간부들의 통신을 감청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냉전시대부터 미국 정보당국은 마이크로칩을 통한 전통적인 도·감청뿐 아니라 새 모양을 본뜬 아퀼린(Aquiline)이란 비행체를 제작해 작전에 투입할 정도로 정보수집 활동에 적극적이다.
우방국에 대한 감청 사례도 숱하게 많다. 1956년 이스라엘군이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침공한 제2차 중동 전쟁 당시 수에즈 운하 위기 관리를 위해 영국의 외교 통신을 감청했다. 이 밖에도 1997년에는 이스라엘 외교통신을 감청해 미국 정부 내 친이스라엘 인사의 침투 상황을 분석했다.
이 같은 정보수집 활동을 반대측에서 방어하는 개념이 바로 방첩(Counterintelligence)이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실 창문은 도·감청 필름을 붙여 대비가 돼 있지만 벽은 도·감청 필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방비 상태의 보안(소극적 개념의 방첩) 문제를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를 통해 지금까지 공개된 한국 관련 정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것이 전부다. 해당 문건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비서관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제공을 공식 천명하는 방안을 거론하자 김 전 실장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오해를 살 수 있다며 폴란드를 통한 우회 지원 방안을 거론했다는 내용이다. 해당 문건은 공교롭게도 "한국으로부터 주문한 전투기(FA-50)가 오면 남은 미그29기를 전부 지원하겠다"는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의 언급이 나온 즉시 폭로됐다.
미국 정부는 이번 SIGINT 문건 유출 사태를 중대한 보안 위반(A significant breach in security)이라고 규정했다. 믹 멀로이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누군가 우크라이나, 미국, 나토의 노력을 망치려고 고의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며 친러 스파이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이중스파이의 활동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방첩공작 활동(Offensive Counterintelligence Operations)이라 한다.
정보당국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바라는 미국과 러시아 보복이 두려워 망설여온 한국 정부의 심리를 이용한 기만 공작으로 볼 수 있다"며 "한국 정부로선 조용히 방첩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법 말곤 선택지가 없다. 정보전에선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만큼 꾸준히 역량을 강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과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