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야구할 공간이 없는 도시, 야구할 사람이 없는 농촌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야구의 시즌이 돌아왔지만 도시도 농촌도 야구할 사람 없어 운동도 학원에서 보충하는 시대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4월 1일 프로야구 리그가 개막하였다. 올해 야구에 대한 분위기는 이전 같지 않다. 지난 3월 WBC 세계야구대회에서 일본과 호주에게 패배하여 예선 통과도 못 했던 기억이 채 사라지지 않은지라 팬들의 분위기가 싸늘해 보인다.
단지 국제 대회 성적에 대한 실망감에서만 팬들이 등 돌리는 것은 아니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몇몇 선수들의 불성실한 태도, 부족한 준비 상태, 책임지지 않는 야구 관계자들의 태도에 팬들은 더 실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IA 장정석 단장의 뒷돈 요구 사건이 터졌다. 한심하다. 그래서 나도 올해부터 프로야구 응원을 접을까 생각 중이다. 그래도 개막은 한다. 워낙 큰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야구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나도 야구팬이기 때문이다. 축구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축구보다는 야구를 더 좋아한다. 또 농구보다는 배구를 좋아한다. 야구와 배구를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축구와 농구는 공을 골대나 골망에 넣어야 하는 운동이라면 야구와 배구는 공을 상대편에 넘기는 운동이다. 그리고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축구와 농구는 상대방 볼을 가로채거나 골을 먹었을 때 이루어지고, 야구와 배구는 공격 횟수 3회의 기회가 주어진 후 전환이 이루어진다. 나는 상대방 볼을 가로채는 것보다는 정당하게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공평하게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역시 평화주의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지난 연말 나를 너무 잘 아는 친구가 말하길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놀고먹기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평생 평화를 사랑해서 야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놀고먹는 성향이라서 그렇다니 충격에 빠졌다.
친구는 설명했다. 축구와 농구는 경기 내내 계속해서 선수들이 뛰면서 공을 다루느라 쉬는 시간이 하프 타임밖에 없다. 반면 야구는 공격과 수비를 나누어 하는데 대략 평균적으로 1이닝에 15분에서 25분이다. 야구 관객들은 1이닝 동안 내내 집중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이 공격할 때는 집중하고 수비할 때는 이완되어서 느긋하게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신단다. 관객들에게는 수비 시간이 쉬는 시간이고 간식 시간이란다. 집중했다가 놀고 집중했다가 노는 형태의 반복이 나의 성향과 딱 맞아서 야구를 더 좋아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양준혁 전 선수가 ‘야구는 레크레이션이다’라고 했단다.
듣고 보니 그렇다. 경기를 직접 보러 야구장을 자주 가지만 경기 결과가 기억나는 시합은 별로 없다. 기억나는 것은 신나는 응원과 치맥이다. 역시 야구는 레크레이션이다. 나는 레크레이션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나는 놀고먹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맞다.
귀농과 귀촌을 스포츠에 비교한다면 축구는 귀농이고 야구는 귀촌이다. 축구처럼 경기 내내 쉬지 않고 뛰고 달리고 상대방을 견제하며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귀농이다. 농사를 짓는 농번기 내내 파종하고 경작하고 수확하는 과정이 쉼이 없다. 잡초와 해충과 재해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가축을 키우는 집은 이틀도 집을 못 비운다. 비가 와도 큰일, 가물어도 큰일이다. 성과를 내려면 축구 선수처럼 끝날 때까지 달려야 한다.
귀촌은 그래도 여유가 있다. 모든 직업이 다 치열하고 끝까지 집중해야 하지만 농사만큼은 덜하다. 귀촌이란 농업 외의 직업을 갖거나 사회활동, 여가를 즐기는 것이다. 주로 은퇴자가 많다. 우리나라 귀촌자들은 완벽하게 자신의 자산과 연금으로 생활하는 이는 많지 않아 대부분 무언가 일을 한다. 그리고 워라밸을 추구한다. 일과와 여가를 전원에서 누린다. 야구처럼 공수 교대를 하며 생활한다.
나도 어릴 적 남들처럼 동네 야구를 한 기억이 있다. 아무리 서울이어도 70년대에는 공터가 많았다. 자동차도 드물었던 시절이라 공터에는 무수한 아이들이 나와 축구와 야구를 즐겼다. 우리 동네는 야구파가 더 많았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졸라 글러브를 손에 얻었다. 야구 배트는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당시는 고교 야구가 인기가 너무 좋았다. 꼬맹이들은 자기네 팀 이름도 고등학교 이름으로 지었다. 서울 놈들이 광주일고 팀과 부산고 팀으로 나누어 경기했다. 가끔 천안북일고 팀도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해서야 야구팀 이름이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팀을 따라갔다. 서울은 MBC 청룡과 OB 베어스로 나뉘어졌다. OB 베어스는 청주에서 시작했지만 1985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다. 어린이 회원을 모집할 때 사은품이 가장 튼실해서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이내 동네 야구팀이 사라졌다. 1980년대 개발 붐이 불면서 공터가 사라지고 넓은 골목은 자동차들이 점령했다. 야구할 공간이 없어졌다. 동네 야구팀은 해산하고 응원팀만 남았다.
농촌만큼은 동네 야구가 오랫동안 남았다. 야구할 공간은 농촌에서는 충분하였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오르는 만큼 지역 야구팀의 유니폼을 맞추어 입은 동네 팀들이 늘어났다.
주말이면 어른들은 아이를 데리고 야구장을 찾았다. NC 다이노스가 없던 시절. 부산을 비롯한 경상남도는 모두 롯데 자이언츠팀의 연고지였다. 거제도 야구팬들은 토요일 오전 일과가 끝나면 점심을 거른 채 얼른 페리호를 타고 부산으로 건너가 구덕 야구장에서 열리는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았다. 배만 4~5시간을 타는 지극정성을 보였다. 모두 다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공 한 번쯤은 다 던져봤고 배트를 휘둘러봤다.
도시보다 농촌은 아이들이 야구를 접하기 좋은 공간이다. 야구할 넓은 공간이 있고 야구용품 정도는 집마다 있다. 학교에서도 단체 경기로 야구를 권장한다.
그러나 2010년대를 넘어서며 동네 야구팀이 농촌에서 사라지고 있다. 야구할 아이들이 사라졌다. 출생률이 낮아지고 중학교 이상의 아이들은 도시로 이동하여 지역에는 야구팀은커녕 농구팀도 꾸리기 어렵다. 농촌에 남은 아이들도 학교 통폐합으로 집과 학교가 멀어 스쿨버스 타느라 방과 후에 함께 운동하며 놀 수가 없다.
몇 년 전 동네 야구를 하는 아이들을 전라남도에서 본 적이 있다. 여자아이도 있기에 신기해서 소속을 물어보니 농촌 유학센터란다. 농촌 유학센터란 도시에서 농촌으로 유학을 간 아이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학교 수업 이후의 시간을 함께하니 야구가 가능한 것이었다. 농촌 유학센터는 전국 지역마다 있다. 특히 전라북도는 도지사가 관심을 가지며 육성하고 있다. 아이가 있는 가족이 귀농귀촌을 한다면 농촌 유학센터를 방문하여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며칠 전 청주에 일이 있어 청년들을 만났다. 자기소개를 하니 야구 선수 출신이란다. 야구를 잘하는 청년을 만나니 반가웠다. 청주는 사회인 야구팀만 100개가 넘고 유소년팀까지 합치면 수백 개란다. 생활 체육 차원에서 야구 리그가 번성하고 있단다. 청주시는 도시지만 농촌 지역이 매우 넓다. 조금만 나가면 야구 연습장이 있다. 아직은 야구할 공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청년들은 지금 어린이 대상의 스포츠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일종의 체육 학원이다. 도시 어린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학원에 다닌다. 하루에 3개에서 5개의 학원을 이어달리기처럼 간다. 그러다 보니 운동 부족이다. 부족한 운동은 스포츠 학원에서 보충한다. 놀 공간이 없고 놀 시간이 없고 놀 친구가 없어서 학원에서 노는 게 현실이다. 야구와 축구를 학원에서 배우고 있다. 도시의 어린이들은 야구할 시간과 공간이 없어서 못 하고, 농촌의 어린이들은 야구할 친구가 없어서 못 한다.
올해도 프로야구가 흥행하기를 바란다. 야구가 예전만큼 인기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야구 응원을 접는 상황이지만 프로야구팀이 마음에 안 드는 거지 야구가 싫은 건 아니다.
야구(野球)는 들에서 하는 공놀이다. 농촌에서 하는 공놀이란 말이다. 그러나 정작 농촌에 야구할 어린이가 없다. 골목에서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다가 밥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에 쪼르르 자기 집으로 달려가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