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양자경 "여성이여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양자경이 전한 어머니에 대한 송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가족의 의미
“여성 여러분, 어떤 누구도 여러분이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하게 두지 마세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지난 12일 아시아계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양자경이 무대에 올라 전한 말이다. 그리고 “이 상을 제 어머니께, 모든 전 세계의 어머니에게 바칩니다. 그분들은 진정한 영웅이고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라며 수상소감을 마쳤다.
홍콩영화 마니아로 10대와 20대를 보낸 나 같은 세대에게 양자경은 시원하게 액션 장면을 펼쳐 보였던 ‘예스 마담’이었다. 그런 그녀가 4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영화계의 중심에 서서 여성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말이다. 안 보고 있었던 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one Everywhere All At Once)'(이하 에브리씽)를 챙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자경 주연의 '에브리씽'은 작년 가을 개봉한 이래 N차 관람을 불러일으키며 소리 없는 팬덤을 만들어낸 영화다. 아시아 스타일의 멀티버스(multi + universe의 합성어로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을 말함) 영화겠지란 짐작으로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았지만, 61세의 아시아계 여배우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캐릭터와 서사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OTT로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양자경이 수상소감으로 이야기한 어머니에 대한 송사가 이해됐다. 나에게 이 영화는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 가족 드라마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양자경이 연기한 에블린은 빨래방을 운영하며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중년 여성이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남편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온 그녀는 지금까지도 쉼이 없는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런데도 하나밖에 없는 딸은 엄마와 이야기가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고, 갑작스레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 설상가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는 딸을 찾아온다.
저글링 하듯 일상을 유지하던 그의 삶이 금이 가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린다. 멀티버스를 통해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에블린들을 만나게 되고 위험에 빠진 우주를 구해야 하는 미션을 부여받는다. ‘이루지 못한 목표와 버린 꿈이 너무 많아’ 우주 최악의 에블린으로 살고 있는 그녀는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에블린들의 힘을 빌려 세상을 그리고 가족을 구한다. ‘엄마’의 힘으로 말이다.
영화를 통해 자연스레 엄마이자 아내, 딸인 나를 돌아봤다. 아마 나만이 아닌 대부분의 내 또래 여성들은 에블린의 모습과 비슷할 거다. 넉넉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가족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사는 보통의 가족,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이와는 빈번하게 갈등하고,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은 남편과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부모님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때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다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건 남편과 딸,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각자가 마주하는 세계가 있고 그곳에서 애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있지만 각자가 마주하는 경험과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모두가 각자의 ‘유니버스(우주)’를 가지고 있으니 이것들을 관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건 쉽지 않다.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아이는 엄마에게 “내가 보지 못한 걸 당신이 보고, 다른 길도 있었다고 이해시켜 줬으면 했어”라고 원망하고, 남편은 “내가 아는 거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때에는”이라고 말한다. 그런 아이와 남편을 바라보며 마침내 에블린은 “나는 너의 엄마야. 항상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다시 시작해보자. 우리는 가족이야”라며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런 연후에야 우주는 다시 안정된다. 다른 시공간을 살아왔고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을 묶어주는 건 ‘사랑을 가지고 제대로 바라보기’이다. 그래야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다. 그것이 없다면 영화 속 ‘베이글’이 상징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공허해지며 어느 순간 포기하고 싶어질 수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의 우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변할 수도 있는 혼돈의 상황을 지탱하는 힘은 사랑이다. 멀티버스를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는 특별한 관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