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치매 환자 재산 소송, '의사 표현 능력'이 판 가른다

치매 앓더라도 '의사 표현 능력' 인정 최근 중증 환자 관련 판례 다수 나와

2023-03-28     김현우 기자
치매 환자 /게티이미지뱅크

#친형제인 박성민 씨와 박성준 씨는 최근 중증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형제간 재산 소송을 겪게 됐다. 성민 씨는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었음에도 의사 능력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고 성준 씨는 치매 중증 진행 상황에서의 의사 표현 능력은 법으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치매 중증 환자라도 본인의 생각을 의사로 표현했다면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성민 씨의 손을 들어줬다. 

치매 환자의 의사 표현 능력도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재판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 지난 1월 대법원에선 사망한 고모할머니의 유언효력을 확인해달라는 원고 A씨의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고모할머니 B씨는 생전 중증도 치매 환자였다. 그런데 중증도 치매 진행 당시 B씨가 적은 유언효력에 대해 가족 간 재산 분쟁이 발생한 것.

재판부 1심에서는 유언장 효력을 부정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고인이 치매를 앓고 있더라도 후견인을 정했거나 그 과정에서 의사능력만 있다면 유언장의 효력이 유효하다고 봤다.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의 판결도 치매 환자의 의사능력을 주요 기준으로 봤다. 대학에 재산을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한 아버지의 의사결정이 치매 진단 후 이뤄진 데 따른 아들의 무효 소송에 재판부는 환자의 의사능력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해서 치매 환자의 모든 의사 결정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재판부에 느는 추세다. 하지만 인정 여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의료계에선 치매를 진단받게 되면 그 자체로 의사 표현이 어려운 상황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성년후견인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상범 대한신경과의사회 공보부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치매 환자는 초기 진단에서부터 중증에 이르기까지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라면서 "따라서 환자의 의사 표현 하나만으로 법적인 판단을 내리기엔 무리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 표현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 자녀 혹은 직계 가족이 환자의 의사 표현을 대신 하도록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성년후견인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사는 치매의 진행 정도에 따라 판결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봤다. 이윤우 대한변호사협회 부대변인은 본지에 "당초 치매 환자라고 해서 본인 의사 표현을 모두 부정해야 한다는 법률은 없다"면서도 "다만 의사 표현 능력이 정상 범위에 있는지 판사가 직접 확인하고 그 정도에 따라 법으로 인정되는지를 우선적으로 본다. 따라서 판사의 판단하에 치매 환자가 증상이 심각하더라도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면 치매 환자의 의사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법무법인 관계자는 "치매 환자라면 의사 능력이 없으니 유언장 등이 법적 무효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행위 당시 명확한 의사능력이 있다면 이 부분을 핵심으로 판단한다"며 "실제 판결에서도 중등도 치매라고 해서 무조건 의사능력이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초기 치매 판정 직후라도 영상 촬영 등을 활용해 생전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에서 유언을 남겼다는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 두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 A씨는 "재판부는 첫 번째로 환자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인지를 본다"면서 "간단한 질문을 네 가지 정도 준비해 환자에게 물어보고 답변받아야 한다. 이 과정이 끝나고 환자의 유언을 영상으로 남겨둔다면 추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