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골드만삭스의 안이한 판단이 초래한 SVB 파산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미 국채 덤핑 매도 후폭풍 예상 못해 월가 애널리스트도 SVB 매도 '0명' 위기 땐 최악 가정 위험관리 해야

2023-03-20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3월 1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빌딩에 걸린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간판. /EPA=연합뉴스

최근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붕괴 과정은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이 전문가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취약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SVB가 최고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자문을 받아 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는 와중에 파산을 맞아 충격을 더하고 있다. 

우선 이 은행은 2019 회계연도 이후 한 번도 적자를 본 적이 없다. 2021년도에는 최근 들어 가장 견조한 19억3000만 달러(2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시현했다. 금리가 급격히 상승한 2022년에도 16억7000만 달러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해 견조한 영업실적을 지속했다.

이를 반영해 은행주 애널리스트들의 전망도 호의적이었다. 한 주식정보 사이트의 자료에 의하면 최근까지 이 은행을 커버하는 19명의 애널리스트 가운데 매도 의견을 낸 분석가는 한 명도 없었다. 6명은 강력매수를 추천했고, 9명은 매수 추천, 나머지 4명도 보유 의견이었다. 

SVB의 금년 주당순이익이 작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비교적 견조한 주당 16.9달러에 이르고 내년에는 20.3달러를 회복하리라 전망했다. 총수익도 마찬가지로 금년 약간 감소세를 보인 뒤 내년에는 금년 수준을 넘어서리라 예측했다.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은 모두 틀렸다. 지난 주말 (12일) SVB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의해 영업정지를 당하고 자산과 부채가 모두 신설되는 가교은행으로 이전됨으로써 더 이상 어떤 수익도 창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가는 물론 제로가 되었다.

이들 최고의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잘못된 예측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SVB의 재무구조가 이들에게도 탄탄해 보였기 때문이다. 작년 말 현재 SVB의 총자산 2118억 달러 중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큰 대출이 차지한 비율은 35%에 불과했다. 현금성 자산도 212억 달러에 달했다.

나머지 대부분은 채권에 대한 투자였다. 작년 말 현재 이 은행은 총자산의 57%에 달하는 1201억 달러를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이 은행은 전체 채권의 76%인 913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을 만기보유증권(HTM, held-to-maturity)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만기보유로 분류된 채권은 가격 등락으로 인한 평가손실이 손익으로 인식되지 않게 된다. 채권 만기 시에는 채권가격이 액면가와 같게 돼 평가손익이 영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이 은행이 보유한 만기보유채권의 대부분은 연방전미모기지협회(FNMA, Fannie Mae)와 같은 주택담보대출 보증 전문기관이 발행한 모기지 관련 채권(MBS)과 복합채무증권(CMO)이다.

또한, 전년 말 현재 이 은행은 전체 채권의 22%인 261억 달러에 달하는 매도가능증권(AFS, available-for-sale)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채권도 매도하기 전에는 손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미실현 손익이 기타포괄이익으로 인식돼 자기자본에 영향을 미친다. 

이 매도가능증권의 62%(161억 달러)는 미 국채(Treasury)였다. 그런데 국채와 같이 안정성이 높은 채권은 제2의 지불준비금이라 하여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비롯한 금융당국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보유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기도 한다. 문제는 국채 대부분을 만기보유가 아니라 매도가능으로 분류해 가격이 내려갈 경우 자본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3월 13일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의 실리콘 밸리 은행 밖에서 대기 중인 고객들이 로비로 입장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서 SVB는 자본적정성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은행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연준의 양적긴축(QT)으로 실물경제 내 유동성이 악화하면서 은행의 주 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 인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에 은행 경영진은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확충에 나서는 한편 국채를 비롯한 매도가능증권을 팔아 유동성 확충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SVB는 240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을 팔아 215억 달러를 마련했다. 문제는 이 매도가능증권을 판 뒤에는 미실현손실이 실현손실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이 은행은 세후 18억 달러의 손실을 실현하게 됐다.

이 손실의 규모는 전체 자기자본의 10%를 넘는 수준이었다. 이 손실 발표의 충격은 컸다. 3월 8일 주식시장 종료 후 이 은행의 시간 외 주가는 크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그 추이를 지켜보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SVB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그 다음 날인 금요일에는 주가가 60% 폭락했다. 은행이 위험하다는 소문을 들은 스타트업들이 앞다퉈 자금을 인출해 가면서 뱅크런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거액의 채권을 팔지 않아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뱅크런을 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채권매도 손실의 파괴적 영향을 과소평가한 것은 23억 달러의 유상증자가 성공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상증자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증자 대금이 순조롭게 은행에 들어올 경우 그만큼 손실을 커버하면서 자본 손실을 메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SVB가 유상증자를 위해 고용한 회사가 바로 최고의 M&A 전문가인 월가 1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였기 때문이다. 물론 골드만삭스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3자 배정의 유상증자를 추진했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공모방식을 추가하기도 했다. 

거래가 성공할 경우 거액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딜에 대하여 낙관적 전망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SVB가 손실을 보면서까지 대거 국채를 매도한 거래의 상대방도 골드만삭스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거래가도 시가에서 할인된 수준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골드만삭스는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를 제치고 월가의 진정한 최강자가 되기 위해 투자은행에서 상업은행으로의 변신을 도모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용카드 사업 등에서 거액의 손실을 보면서 상업은행 부문을 대거 구조조정하기에 이르렀다.

골드만삭스가 그렇게 고전하게 된 것은 상업은행 시장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막연한 낙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SVB와의 거래에서도 유상증자가 성공할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주의에 기반해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SVB와 채권 거래를 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경우 신용평가기관과 예금자 그리고 주식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하여 골드만삭스는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물론 SVB 파산의 일차적 원인은 경영진에 있지만 시장 전문가들의 막연한 낙관주의가 큰 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유동성 위기의 가능성이 보일 때는 최악을 가정해 적극적 위험관리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