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판도라 상자’ 열릴까‧‧‧SVB 파산 이어 신흥국 경제 붕괴 예고
미국 연준 11개월간 450bp 금리 인상 ‘금리 정책 시차’ SVB 유동성 위기 파산 미‧유럽 은행주 급락‧가상화폐까지 충격 “6%대 진입 시 신흥국 경제 붕괴 우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심어놓은 ‘긴축 폭탄’이 시간을 두고 하나둘씩 터질 조짐이다. 지난 1년간 연준의 고강도 긴축 정책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유동성 위기로 파산했고 가상화폐 시장까지 충격이 확산했다.
미국 금리가 6%대에 수렴할 때 신흥국은 경제 붕괴마저 예고된다. 그러나 금리 정책 효과가 6개월에서 1년까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고 할 때 11개월간 진행된 450bp 인상 효과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 왔던 SVB가 지난 10일 파산한 가운데 그 충격으로 국내 증시가 급락하고 있다. 13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5.86포인트(0.24%) 올라 2400.45로 개장했지만 이후 하락세로 방향을 틀었다. 코스피 지수는 오전 10시 35분 기준 2374.49를 찍었고 같은 시간 코스닥은 전장보다 13.90포인트(-1.76%) 내린 774.70을 기록했다.
SVB는 파산 전날인 지난 9일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전 거래일(267.83달러)보다 161.79달러(-60%) 하락한 106.04달러로 종가를 기록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거래 정지 상태로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상업은행이었던 SVB의 파산은 고금리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손꼽힌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타격이 큰 IT분야 대출이 많아 부실자산 규모가 커졌다. 미국의 벤처를 지탱하던 공룡 은행도 1년 긴축에 장사 없던 것. 고객의 대규모 예금 인출과 직전의 가상화폐 전문은행 파산 영향도 ‘공룡 붕괴’에 기인했다.
연준은 지난해 3월 25bp(1bp=0.01%) 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지난 2월 25bp 인상까지 11개월간 총 450bp를 인상했다. 2년여간 지속했던 0%대 금리를 중단하고 최악의 물가에 고강도 긴축으로 대응했다. 28년 만에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도 모자라 4번 연속 ‘거인 스텝’을 밟았다.
지난해 7월 9.1%까지 올라갔던 미국 물가는 정점을 찍고 현재 6%대(2월 소비자물가상승률 6.4%)에 머물러 있지만, 여전히 강한 고용 시장과 임금 상승률은 연준이 금리를 올릴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SVB 파산이 연준의 금리 정책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한다. 제로 금리에서 현 4.75%까지 급격한 인상으로 은행 자산의 건전성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힘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美 시스템, 은행권 전체로 전이 방어"
은행주 주가 흔들 가상화폐 시장 충격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미국 백악관은 은행 시스템이 과거 ‘리먼 사태’와는 달리 공고한 상황이라며 규제기관에 신뢰를 표명했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대규모 뱅크런 사태가 발생한 SVB 은행을 폐쇄한 직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리자로 임명했다. 13일 미 재무부와 FDIC는 이날부터 고객이 예금 전액을 인출할 수 있게 조치했다. 단 주식과 채권은 해당하지 않는다.
모건 스탠리 등 미국 금융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개별 은행의 자금 운용 문제일 뿐, 해당 유동성 위기가 은행권 전체로 전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 중소형 은행을 중심으로 위기가 확산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발생한 가상화폐 거래 은행 ‘실버게이트’의 뱅크런 영향이 가세하면서 유동성 문제는 더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버게이트는 코인은행이자 연준으로부터 정식 은행업 인가를 받은 곳이다. 유동성 위축으로 위기를 맞으며 지난 8일 청산을 선언했다.
SVB 파산은 미국, 유럽의 은행주 주가를 급락시켰다. 이날 크레디트 스위스는 사상 최저치인 2.66달러에 장을 마쳤다. 같은 날 UBS도 20.34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전장보다 0.59포인트(-2.82%) 하락, 최근 수개월래 가장 큰 일일 하락폭을 찍었다.
같은 날 비트코인 가격도 2만 달러를 하회하면서 가상화폐 시장으로까지 충격이 확산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저가 매수에 나서면서 24시간 전 대비 9.17% 상승한 2만2336.7달러(13일 오전 10시 26분 기준)를 기록했다.
신흥국, 연준 긴축 쫓아가다 금융위기
“미국 금리 인상 1년여 후 충격 전달”
고금리 상황이 더 지속해 미국 금리가 6%대에 진입하면 신흥국 경제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3월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시사하면서 선물 시장에서 미국의 최종금리가 6%까지 상향 조정되면서 불거졌다.
사티엄 판데이 S&P 글로벌 레이팅의 신흥국 수석 전략가는 “세계 경제가 취약한 상태에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6%까지 오를 경우 신흥국 경제가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마니크 나레인 UBS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6%에 도달하면 신흥국이 역사적인 '고통 임계값(Pain Thresholds)'을 시험받게 될 것"이라며 "인도 루피, 중국 위안화, 필리핀 페소가 최대 5%까지 약세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금리 정책은 정책 효과의 시차도 고려돼야 하는 요소다. 학계에서는 중앙은행이 금리 정책을 펼친 후 그 효과가 6개월에서 1년 이후에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내 인플레이션과 미국과 금리 역전 차를 방어하기 위해 15개월간 300bp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마지막 금리 인상은 지난 1월 25bp로 금리 효과의 시차(6개월~1년)를 고려하면 올해 심각한 경기침체를 예측할 수 있다. 이미 고금리로 인한 집값 하락으로 부동산 거래 절벽은 만성화됐고 지난해 겨울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서 자금 시장 경색을 겪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에 “금리 효과는 6개월에서 1년의 시차를 두고 자산 시장 등에 영향을 준다”라며 “또 과거 미국 금리 인상 역사를 보면 단기간(1~2년)에 금리를 3%포인트 이상 높인 경우 미국 금리 인상 이후 1~2년의 시차 후 신흥시장국은 금융위기나 외환위기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행은 미국 연준과 같이 금리를 인상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미국은 경기가 호황국면에 있는 반면 한국은 경기침체 심화로 기업 도산이 늘어나면 부채위기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자본 유출을 막으려다 금융위기를 당할 수 있는데, 금리를 높이기보다는 수출을 늘려 경상수지 흑자로 전환하고 경기를 연착륙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경우 환율이 안정되고 자본유출도 막을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