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파란만장(波瀾萬丈)한 봄이 당신에게 전하는 소식
[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 '잔인한 달' 4월의 역사는 상처로 얼룩 누구나 '상처 받은 치유자' 될 수 있어 늦기 전에 천원의 기부라도 시작해야
당신의 봄은 핑크빛 벚꽃인가요?
4월의 첫날 첫 주말의 아침 7시 정각. 부스스 눈 비비며 창밖을 내다보았지요. 시리도록 푸른 봄 하늘을. 저격수처럼 창틈으로 들어온 바깥 공기는 더 이상 시리지 않은 내 등짝을 스치며 순식간에 벚꽃이 피어나게 하여 당신과 나의 봄은 기어이 다시 오고야 말았습니다.
습관적으로 KBS 아침 클래식을 켜고 '아~ 미친 듯 잔인한 4월이 왔구나' 책임 없이 중얼거리며 냉수 한 사발에 마른 목젖을 적셨지요. 4월 연재 글의 마감일에 맞추느라 끙끙대며 첫 주말에 이 글을 씁니다.
산책길 물소리, 바람 소리, 목련화, 벚꽃, 개나리···. 우뇌를 자극한 봄의 세로토닌(Serotonin) 호르몬을 담뿍 담은 선물 바구니가 오른 물가와 성과경쟁에 지친 좌뇌 신경세포들을 개운하게 씻어 주니, 봄날의 소소한 행복이 행여 새로운 사건·사고 뉴스로 달아날까 살며시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한강으로 흘러가는 탄천 길 따라 찬란한 벚꽃들의 군무를 사열하듯 걸어가는 내 걸음과 심박수도 물소리 따라 한 바퀴 지구를 품고 우주로 날아갈 듯 춤추는 봄의 전령 나비가 되어 팔랑팔랑 흘러갑니다.
벚꽃의 향연은 천국인데 시인들은 4월을 아름답지만 잔인한 달로 표현했으니 반드시 그럴만한 모순의 이유가 있을 테지요. 내 청춘에도 잔인한 4월로 기억된 사건이 있었을까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봅니다. 동시에 분홍의 불꽃으로 하늘을 수 놓은 벚꽃에 넋 나간 내 망막을 카메라 렌즈에 들이대기에 바쁩니다.
영국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888~1965)은 그의 싯구절에 4월을 이렇게 표현했지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아~ 그래 맞아.'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공허하고 허무한 감정을 담은 역사적 4월이 있었지요. 날카로운 첫 키스를 운명인 줄 결심했건만 훌쩍 고무신 거꾸로 신고 시집간 친구 생각에 입영열차 바깥 벚꽃 풍경을 맥없이 바라보다 고개 떨군 청춘의 4월이 저에게도 있었지요. 불투명하고 막막한 미래와 아프고 먹먹한 이별을 뒤로 하고 빡빡머리 훈련병이 되어 입영열차 안에서 읊조린, 상실감을 위로하듯 고향 형님의 청춘 시절 노래 한 구절 살포시 불러본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입영열차를 타고 가던 내 청춘을 돌이키며 고향 형님의 노래를 읊조립니다.
소시민적 개인의 역사를 넘어 우리들의 부모님이 살다 간 현대사에 깊은 상처로 남은 희생의 사건들이 4월에 있었지요. 70여 년 전의 4월, 제주도에서 '서북청년단' 완장을 두른 폭력집단에 3만여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일방적 희생을 당한 4·3 사태의 진실 파악과 국가적 차원의 치유가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픈 숙제로 남아 있지요.
사자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들은 여전히 눈물로 가슴 치며 통렬하게 항의하며 한숨으로 4월을 보내고 있다지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모두가 치유 받아야 할 아픔으로 남은, 기억조차 어렵고 입에 담기 부끄러운 4·16 세월호의 참사도 4월에 일어났지요.
살기 좋은 세상은 마냥 기도하고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는 뼈아픈 되새김질로 4월을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람길 따라 '놀멍 쉬멍' ('놀며 쉬며'의 제주도 방언) 걷다가 '성실하고 따뜻한 사랑' 꽃말을 가진 제주의 섭지코지 양지바른 곳에 살포시 피어난 제비꽃을 발견하곤 하얀 이빨 드러내 환하게 웃으며 내 이웃과 세상의 상처를 아름답고 사려 깊게 치유할 꿈과 힘을 얻어 냈지요. 굴곡의 인생 시간을 겪은 이제야 꽃이 주는 희망에 감격하는 힘을 얻었지요.
아 ~ 이 또한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야생의 제비꽃 한 무리가 파란만장한 내 생애를 위안해 주다니 오~ 4월에 발견한 신부 같은 꽃이여!
인간으로 태어나 영욕의 세월 파란만장(波瀾萬丈) 나그네가 되어서 살다 죽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는 한시적 존재이지만 4월의 꽃은 죽어서도 이듬해 다시 피어나는, 아! 이 얼마나 찬란한 봄의 모순인가?
파란만장(波瀾萬丈)이란 인생을 심한 파도와 큰 물결에 비유하여 생활과 일의 진행에 여러 가지 곡절과 시련이 많은 삶을 표현한 것이니, 4월의 벚꽃을 바라보며 이왕 힘겹고 파란만장해 버린 '내 인생 행복한 파란만장으로 마무리하자' 새로운 꿈의 에너지를 저에게 부어 주는군요.
600명의 심장병 어린이를 살린 100억원 기부의 사나이 방송인 이상용 씨는 매일 파란 지폐를 지갑에 채우며 자신의 인생을 1억짜리 인생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파란 지폐 1만 장이면 1억이지 않나. 파란만장하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기구하게 태어나 파란만장한 사람들에게 지폐 1억원을 나눠주는 사명감으로 산다는 소식을 새봄에 들으니 우리는 누구나 파란만장 'Wounded Healer(상처받은 치유자: 먼저 상처 받은 사람이 같은 상처를 받은 다른 사람에게 미소로 돕는 존재를 의미함)'로 살아갈 호모사피엔스 지혜로운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지금껏 나와 내 가족과 직장이 성장하는 꿈을 꾸었다면 더 늦기 전에 하루 단돈 천원부터 신종여시(慎終如始: 끝이 처음과 같이 신중하게 같다는 뜻) 후원하고 기부를 시작해야겠습니다. 내 청춘 파란만장한 새로운 꽃가마 길에서 걸음마를 시작했으니 기쁘게 당신에게 4월의 봄소식을 전합니다.
핑크(pink)빛 파란만장한 봄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부디 받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