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어렸을 때 추던 개다리춤 실력은 어디가고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춤이 필요한 '새' 공연을 앞두고 나는 나의 형편없는 춤 실력에 OH, MY GOD!을 외쳤다.

2023-04-07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나는『산국』공연 시 무대에서 1시간 20분 동안 양반집 마님으로 살았다. 마님역을 소화하기 위해 회원들과 연습하던 그때, 그리고 연습한 모든 것을 무대 위에서 쏟아내면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공연이 끝난 후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산국’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라는 노래의 흥얼거림도 더 이상 감흥이 없고, 공연의 감동도 사라진 그 무렵 나는 내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허전함을 달리기 위해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아다니면서 연극을 봤다. 좁은 무대 위에서 신들린 듯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그들의 연기에 감탄도 하고 동시에 나도 저 배우처럼 연기를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화를 내는 연기를 저렇게 표현하는구나! 사랑에 빠진 여인의 표정은 저렇구나! 등 배우들의 연기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보기도 했다. 나이 지긋한 배우를 보면 미래의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갔다. 새싹이 돋아나고 무더위가 지나가고 단풍이 찾아왔다. 그렇게 계절의 순환이 이어지고 문화재단의 연극 아카데미 2기생 모집 공고가 났다. 우여곡절을 거쳐 나는 2기생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회원들과 함께 가을을 맞이했다.

당신은 춤을 출 수 있나요? 아니면 춤추기를 즐기나요?

음악이 나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인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춤, 얼마나 귀엽고 아름다운가! 난 어렸을 때 춤을 아주 잘 추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느닷없이 춤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번 ‘새鳥’ 공연에서 춤을 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춤에 얽힌 에피소드 두 가지를 들추어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개다리춤이 유행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삼룡 코미디언이 통 넓은 바지를 입고 발 앞꿈치를 세워(발뒤꿈치는 공중에 들린 상태) 다리를 흔들면서 추는 개다리춤. 그 개다리춤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서 내가 다니던 시골 깡촌 초등학교 학생들도 모두 그 춤을 추게 되었다.

산 넘고 물 건너야만 도착하는 초등학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개 위에서 나는, 아니 우리 동네 친구들은 발뒤꿈치를 들고 앞부분을 세워 다리를 흔들었다. 고개 정상에서 발을 세워 다리를 흔들면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지형학적 위치로 인해 저절로 개다리춤이 추어졌다.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 없었지만, 우리 친구들은 개다리춤의 조교가 될 실력을 갖추었다.

집에 돌아오면 유명한 코미디언 콤비였던 남철 남성남처럼 동생과 한 조가 되어 개다리춤을 추었다. 다리를 교대로 번쩍번쩍 들면서 이리저리 교차해서 왔다 갔다 하다가 노래가 나오면 서로에게 뒤질세라 다리를 흔들었다. 흥겨운 한 판의 춤이 벌어졌다. 난 춤에는 자신이 있었다(이때의 이야기는『그리움 한 스푼』이라는 내 책에도 기록되어 있다).

나는 춤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했다. 학교에서 배운 동요 외에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유행가, 즉 대중가요는 모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로 머릿속에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남진의 ‘님과 함께’,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 하춘화의 ‘잘했군 잘했어’ 등은 제목만 말하면 자동으로 노래가 튀어나왔다.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자동화된 기계처럼 노래를 불러 제꼈다.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하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동생과 나는 이인 일조가 되어 서로 상대방을 영감으로 또는 마누라로 바꾸어 부르면서 어깨를 앞으로 집어넣었다 뒤로 빼면서 흥에 겨워 노래를 불렀다. 어려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발성 훈련을 했다. 관객이 없어도 우리는 수시로 우리만의 상설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 가무는 나의 취미였고 특기였다. 나는 노래도 춤도 자신 있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내 나이 마흔 중반인 2011년쯤인가? 그 당시 유행하던 스포츠댄스를 배워보겠다고 부푼 가슴을 안고 신청했다. 거금을 주고 댄스 슈즈를 샀다. 밤에 굽 있는 까만색 구두를 신고 거실을 한 바퀴 돌며 왼발 오른발 번갈아 튕기면서 댄서 흉내를 냈다. 춤을 잘 추는 멋진 댄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다음 날 남자 댄서(지도 선생님)가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톡 보내면서 간단하게 춤을 추는데 얼마나 멋진지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벌어진 입을 쳐들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숙이기를 반복하면서 넋을 놓고 댄서 선생님을 쳐다봤다. 춤추는 자세가 어찌나 멋진지 선생님 얼굴이 배우 정우성보다 더 잘 생겨 보였다.

박수 소리와 함께 춤이 끝나고 간단한 발동작이 시작되었다. 내 몸도 움직였다. 슬로우 슬로우 자세로 발을 옮겼다. 슬로우 단계를 지나 동작이 조금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왼발 오른발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발이 꼬이기 시작했다. 누구 발이? 내 발이. 아주 사정없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여러 명이 나란히 서서 발을 움직이는데 한 사람 발이 보조를 못 맞추고 우왕좌왕 정신없이 흔들거렸다. 내 발이었다. 창피했다. 보조를 맞추겠다고 반 박자 쉬고 시작하려는 그 순간에 또다시 나 혼자 제멋대로 놀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춤을 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몸치라고 해야 할까? 춤치라고 해야 할까?

음악에 맞추어 리드미컬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신나고 즐겁다. 그러나,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한다면 슬프다. 내 발의 움직임은 다른 사람들의 발동작과 달라서 창피할 정도였다. /픽사베이

딱 한 시간 춤추고 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그 후로 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소싯적 멋지게 흔들어대던 개다리춤 실력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왼발 오른발이 사정없이 뒤엉키는 몸치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번 ‘새’ 공연에서 몸동작이 많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새는 날지 못하는 닭이다.  닭을 몸으로 표현하기 위한 몸동작, 즉 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OH, MY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