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더봄] '악마의 물고기' 문어(2)···연한 식감 위해서 이렇게까지?
[전지영의 세계음식이야기] 이탈리아, 와인 코르크를 함께 넣어 끓여 그리스, 잡자마자 바닷가 바위에 ‘패대기’ 스페인, ‘문어 통돌이’에 빨래하듯 돌려
문어를 살짝 데쳐 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들큰한 문어숙회를 즐겨 먹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요리 방법이지만 지중해 연안 등 유럽 일대, 미국 등지의 서양에서는 문어의 조직을 연하게 하려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문어 다리의 촘촘한 근섬유는 콜라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높은 온도에서 1시간 이상 장시간 끓이면 젤라틴으로 변화되어 조직이 부드러워진다.
90℃ 정도로 가열된 기름 속에서 장시간 조리를 해도 문어의 근섬유가 천천히 찢어지면서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질감으로 변화한다. 저온에서 장시간 조리를 하면 높은 온도에서 튀겨내는 것보다 식재료 자체 수분이나 육즙의 손실이 적어서 진하고 촉촉한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문어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잡냄새 제거와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끓는 물에 오븐을 사용하여 데쳐낸 후 오븐에 넣고 장시간 구워내는 방법이 있다. 부드러운 살결과 진한 풍미를 즐길 수 있어 서양에서 문어 요리를 할 때 즐겨 쓰는 방법이다.
와인 코르크를 함께 넣어 끓이는 이탈리아식 문어요리
이탈리아에서는 문어를 연하게 조리하기 위해 물에 삶을 때 와인 코르크를 함께 넣어 끓인다. 와인 코르크에 묻어있는 타닌 성분이 문어를 부드럽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어를 연하게 하려고 식초를 넣어 삶거나 무로 문어를 때리거나 무를 갈아 표면에 문지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부드럽게 손질된 문어는 바질 잎이나 신선한 채소와 함께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려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파스타에 함께 볶아서 먹기도 한다.
그리스 일대의 어부들, 문어를 잡자마자 해안가의 바위에 ‘패대기’
지중해 연안에 그리스의 어부들은 문어를 잡자마자 해안가 바위에 ‘패대기’ 쳤다고 한다. 문어 머리를 잡고 온 힘을 다해 힘껏 바위에 내려치거나 문지르면 문어의 섬유 조직이 찢어지면서 부드러운 질감을 내기 때문이다. 문어를 잡아서 패대기쳐서 그리스 지중해 연안의 바람과 햇볕에 말린 건조 문어는 별미 중의 별미이다.
그리스에서는 이렇게 손질된 문어를 노릇노릇 구워서 통통한 다리에 레몬즙을 뿌리고 칼로 잘라 먹는다. 문어를 먹으면서 상상했던 졸깃한 식감이 아니고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부드러움에 그 놀라움이 배가된다.
스페인에선 문어를 연하게 하려고 ‘문어 통돌이’에 빨래하듯 돌려
스페인에서는 문어 조직을 연하게 찢기 위해서 ‘문어 통돌이’라는 세탁기와 비슷하게 생긴 기계에 문어를 넣어 빨래하듯 마구 돌린다. 그리스에서 바닷가의 바위에 패대기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데 미식가들이 염원하는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문어 맛’을 위한 요리 테크닉이라고 볼 수 있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유명한 문어 요리인 뽈뽀(pulpo a feira)는 월계수 잎을 넣고 부드럽게 삶은 문어에 스페인 요리에 빠지지 않는 파프리카 가루, 암염과 신선한 올리브유를 뿌리고 감자를 곁들여 먹는 요리이다.
지능이 높아 현명하고 똑똑한 문어, 문어알을 돌보며 생을 마감하는 어미 문어의 일생을 보면서 이제 문어가 더 이상 미개한 하등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감정을 교감할 수 있는 똑똑한 생명체임을 알게 되었다. 감정을 가진 고등동물인 문어를 패대기치고 통돌이에 돌려서 연하게 근육을 찢어서 전처리하는 서양의 조리 방법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뒤늦게나마 문어가 포유동물처럼 감정이 있는 고등동물로 인식되면서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유럽 국가에서 문어의 고통을 금지하기 위해 산 채로 삶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은 반가운 사실이기도 하다.
제주에서 만난 '마농 문어치킨'을 보며 문어를 이용한 세계 요리를 알아보게 되었다. 요리 방법도 다양하고, 서양과 동양에서 맛있다고 느끼는 문어의 연한 정도도 다르지만,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로 취급받던 문어는 이제 전 세계인의 화려한 식탁에 고급 식재료로 탈바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