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팔 비틀어 물가 누르는 官‧‧‧“때 이른 공공요금 인상이 문제”
5%대 물가 반등에 기대인플레이션도 벌떡 올초 10% 인상 계획 식품업계 동결 도미노 “난방비 인상이 방아쇠‧‧‧상품 질 저하 우려
금융사부터 시작한 정부 압박이 식품업계까지 전가되면서 제품 가격 동결로 이어지고 있다. 서민이 고물가를 체감하는 소주부터 고추장 등 올 초 가격 인상이 예고됐던 식품 및 주류 가격을 정부가 일제히 멈춰 세웠다. 학계에서는 때 이른 공공요금 인상이 가져온 인플레 재앙이라면서 상품과 서비스 질 저하로 실질적인 물가 상승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2일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에 “소주값은 물론 온갖 것이 다 오르려고 하는데, 이는 공공요금 인상이 ‘트리거’(Trigger)로 작동했다”라며 “물가가 오르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는데 이는 가계가 빚을 못 갚으면서 부채위기가 올 수 있다. 위급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하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식품업계는 제품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이날 CJ제일제당은 이달 초부터 편의점 판매용 고추장과 조미료 및 면 제품 출고가를 인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면 보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가쓰오우동, 얼큰우동, 찹쌀떡국떡 등 본래 판매 가격을 평균 9.5% 올리기로 했던 계획은 백지화됐다. 고추장을 포함한 장류 6종 가격은 최대 11.6%까지도 인상할 계획이었지만 이전 가격을 유지하기로 했다.
앞서 풀무원도 생수 가격을 비롯한 제품 가격을 전면 동결했다. 이달부터 풀무원샘물 출고가를 5% 올릴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27일 철회했다.
여기엔 정부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달 28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서울 방배동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13개 식품기업 고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CJ제일제당과 풀무원을 비롯해 농심, 동원F&B, 롯데제과, 매일유업, 남양유업, 동서식품, 삼양식품, 오뚜기, 오리온, 해태제과, SPC 등 13개 식품기업 대표 및 고위 관계자가 참석했다. 풀무원은 간담회 전날 가격 동결을 알렸고 CJ제일제당은 간담회 참석 이후 인상 계획을 취소했다. 그밖에 업체들도 일제히 추가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인플레이션 반등 영향이 크다. 고물가 지속에 정책당국도 당황한 기색이다. 물가 하락세에 마음을 놓고 있던 사이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2%로 직전 달(5.0%)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심지어 소비자의 향후 물가 상승 전망을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도 다시 4%대로 올라섰다. 전기요금, 도시가스비, 교통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도미노 영향으로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커졌다.
김 교수는 “정부가 공공요금 역시 인상을 자제하면서 상황을 지켜봤어야 하는데 올려버렸다”라며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라) 좀 있으면 임금 인상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기아차의 경우 보너스를 올려달라고 투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물가는 이제 걷잡을 수 없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6000원 소주도 당분간 없다 가격 얼음
‘은행=공공재’ 시즌2 언 발에 오줌 누기
주류 업계도 가격 동결을 결정했다. 고물가에 주류 업계는 소주 6000원 시대를 예고했다. 그러나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권고에 없던 일이 됐다. 지난달 26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다음날 하이트진로를 비롯해 오비맥주‧롯데칠성음료 등 업계는 당분간 주류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며 인상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정부 정책이 전형적인 관치라는 비판이 불거졌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정부가 다른 수단 없으니까 초조한 것 같다. 무역적자 상황이 12개월째 이어지고 경상수지 흑자도 흔들리면서 권력으로 위기를 늦춰보려는 것”이라며 “시장경제에 역행하고 있다. 원가를 반영하면 소비가 줄고 가격은 내려가게 될 텐데 시장 기능이 제대로 역할하지 못한다. 결국 기업들이 상품 질이나 양을 줄이며 실질적인 가격 인상이 나타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교수는 “물가가 높기 때문에 고금리는 지속할 것이다. 부동산 시장 정체를 비롯해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금리는 올라가고 부채위기까지 오면 내년 총선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라며 “현존하는 부동산 시장 규제를 당분간 완전히 철폐하고 부동산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이후 금리를 그만 높이고 수출에 총력을 다하는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