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만 부추긴 여가부 폐지안···尹공약 '포퓰리즘' 논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미포함 대통령실 "원하는 대로 안 돼" 尹 지지 이대남들 "한심하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빠진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로 윤석열 정부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 좌초됐다. 현실성 없는 공약으로 인해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만 심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7일 통과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하고 외교부 산하에 재외동포청을 설립하는 내용만 담겼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개편안에는 여가부 폐지가 포함됐으나 여야 합의 실패로 불발된 것이다.
정부의 개편안에는 여가부 소관 사무 중 양성평등, 청소년 업무 등을 신설되는 보건복지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성평등 정책 총괄·조정 기능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 여야는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여권은 여가부 폐지 불발에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일단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관련 질문에 28일 "지금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원하는 대로 모든 법이 개정될 수는 없다"며 "현실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할 것"이라고 답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민주당의 부동의로 여성가족부를 건설적으로 해체해 다른 부처로 옮기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게 못해 아쉽다"며 "민주당은 이름에 성평등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고집을 버리고 국가기관들이 제대로 된 업무를 하도록 협조하기 바란다"고 했다.
여당이 여가부 폐지안을 끝내 미룬 배경엔 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정부조직 개편이 지연된 현 상황이 감안됐다.
여가부 폐지 주장은 2021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주도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지난해 1월 윤석열 대선 후보가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올리면서 이슈가 됐고, 5월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본격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폐지 찬성 여론보다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 여성계의 반발이 커지고 젠더 갈등 논쟁은 사그라들지 않으면서다. 당초 윤 대통령이 추구했던 야당과의 협치도 점차 유명무실해지면서, 거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반대를 굽히지 못했다.
지난 1년간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여가부 폐지 공약을 믿고 윤석열 후보에 지지를 보냈던 '이대남'(20대 남성) 층은 개탄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해 2월 18세 이상 29세 이하 남성의 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평가는 28%로, 전체 국민 긍정평가 35%보다 7%p 낮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2일 청년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는 "여가부 폐지 공약 먹버(먹고 버리기) 하는 건 역대급", "지지자들을 개돼지 취급", "자기 대통령 만들어준 사람과 제1 핵심공약을 무참히 짓밟아버림"이라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또한 "한심하다", "시행령 잘만 써놓고 여가부는 야당 탓?", "아직도 저짓거리 하면서 표팔이 하려고", "여가부 폐지되는 거 보고 싶으면 총선 때 국힘 뽑아라 이 소리네"라는 등 비판 댓글이 이어졌다.
여가부 폐지 반대 측에서도 개정안 불발에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전국 시민·인권단체 900여 곳으로 구성된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은 27일 논평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무책임하고 저급한 선거용 구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실질적으로 망쳤는지 똑똑히 보았다"며 "존폐 위기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여성가족부는 업무를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웠고 눈치 보기에 급급해 오히려 성평등 정책 실현이라는 존재 이유에 반하는 행태를 이어왔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2일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좌초됐는데, 그땐 그래도 공약 폐기를 인정했지만 여가부 폐지는 빛 바랜 선언만 있는 상태"라며 "여당 입장에선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다는 전략만 남았겠지만 대국민 설득이 먼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