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외로워 외로워~ 노래 대신 즐거운 뒷담화를 해도 좋을 나이

[송미옥의 살다보면2] 노년의 친구는 금보다 소중해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사는 우리 동네 좋은 동네

2023-03-01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술은 인간관계도 껄끄럽던 대화도 안 좋았던 관계도 술술 풀어주는 만병통치약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혼자 사는 팔순의 어른이 생신 턱을 낸다고 초대하신다. 
식당으로의 초대와는 달리 집밥 잔치는 축하와 함께 밥값을 해야 한다. 젊은 축의 밥값은 뒷설거지에 이야기 경청하기다. 자식들이 챙겨 둔 만찬 같은 점심 후 이른 저녁까지 뒷담화에 동참하여 음식도 아닌 것을 맛보고 뜯는 즐거움도 한몫한다.

이럴 땐 일찍 죽은 사람이 영 불리하다. 그 연세에도 정신이 맑고 술을 즐기시니 40도가 넘는 안동소주가 선물로 줄을 섰다. 술상이 먼저 펼쳐진다. 잘나가는 막장 드라마의 한 대사처럼 나이 들면 ‘외로워, 외로워~’를 노래하지만 우리 동네는 그런 노래 부를 일이 없다. 한 잔 두 잔 술잔이 돌면 저 깊은 곳의 허전하고 쓸쓸한 온갖 상념이 안주가 된다.

죽을 만큼 꼴 보기 싫고 생각만 해도 숨 막혀 돌아 버릴 것 같은 인간을 도로 그립게 하는 것도 술이다. 떠들며 마시면 높은 도수의 술도 음료수가 되는 건지 어느새 네 병째 비워지고 있다. 술 때문에 일찍 죽는단 말은 거짓말, 외로워서 죽는 게 맞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어울려 춤추고 울고 웃다 보면 오래 산다. 나는 잔머리를 굴려 중간에 빠져나올 작전을 짜 놓고 참석한 거라 적당한 시간에 울릴 신호를 기다린다.  

생일도 건강하게 맞이해야 행복하고 즐겁다. /픽사베이

이전에 요양보호사 일을 하던 때다. 그 일은 시간이 규정되어 있어서 제시간에 전자 도장을 찍어야 하니 정해진 시간이 오면 미적거리지 않고 일어선다. 하루는 출근하니 어르신들이 툇마루에 모여 있었다. 어르신들이 모인 이유는 이틀 전 백세가 가까운 동네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그날은 그분의 상여가 나가는 날이다. 다리가 아파 산에는 못 올라가니 이렇게 참여하는 거란다.

나도 일하지 말고 조문에 참여하라고 했다. 입에서 입으로 그 어른과의 기억이 염주 알처럼 흘러나온다. 그분의 신상 명세와 함께 ‘그 집 숟가락은 몇 개다’라는 이웃사촌 공식은 세세하게 뒷담화로 재생되었다. 

“가장 성공한 아들은 친아들이 아닌 업둥이라···미주알고주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며 따로따로 내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 가족사는 이웃 동네 사람까지 다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열일곱 꽃다운 처녀가 시집온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모르고도 어울려 살아온 구십 인생을 뒷담화로 각인시키다 보니 한 세기가 되어도 또렷하다. 시간이 지나도 상여는 지나가지 않고 놀며 보낸 세 시간이 삼십 시간보다 길었던 어느 날의 추억이다.

 언젠가 관광버스에서의 일이다. 노련한 젊은 사회자가 자기소개를 시키며 말했다. 
“여러분 자기소개는 1분 내로 하시고요. 2분 넘으면 경청 세금 받아요. 하하.” 
그날 많은 어른이 마이크를 잡기도 전에 오만, 십만 원씩을 내고 긴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사회자가 다시 말했다. 
“70세 이상 어르신은 자기소개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

생일 상차림. 혼자서 진수성찬을 차려 먹기보다 나물 한 개 놓고 먹어도 함께 먹으면 다 맛있다. /사진=송미옥

노년의 친구는 금보다 소중하다. 가족에게도 못하는 숨이 막히고 억장이 무너질 만큼 힘든 일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비밀을 아무 관계도 없는 나에게 하시는 분도 있다. 어쩌면 가슴속 응어리진 한을 살아있을 때 쓰레기처럼 버리고 싶은 마음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한다. 사람이 아니면 어떤가? 혼자인 나는 나무, 강물, 신에게 혹은 흙과도 대화한다. 누가 보면 미친년처럼 혼자 중얼중얼 주거니 받거니 한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직업도 생겼단다. 시린 가슴이 온기를 만나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 들어주기. 천일야화처럼 이어지는 어른들의 도돌이표 이야기가 역사를 만든다. 아직은 설거지만 하고 빠지는 나의 행동이 스스로도 얄밉지만 그래도 천천히 그들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중이다. 세 시경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고 나는 통화하듯 혼자 중얼거리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직도 철이 덜 든 밉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