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사면초가’ 꽁꽁 언 부동산 시장에 기준금리도 ‘얼음’
부동산 시장 거래 절벽 장기화 무역 적자에 경상수지 폭 감소 올해 성장률 1.7%→1.6% 하향
밖에서 오는 우환이냐, 안에서 곪고 있는 종기냐의 선택에서 한국은행이 집안 단속을 선택했다. 밖에선 미국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세계적인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고개를 들면서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이와 달리 국내에선 부동산 시장 경착륙 조짐과 가계 부채 폭탄, 무역수지 적자에 따른 경기 침체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외우내환의 기로에서 한국은행은 금리 동결을 선택했다. 바깥 우환보다는 국내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는 게 급하다고 본 셈이다.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하향하고 있다(2.5%→1.6%). 정부도 한국 경제가 둔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처음으로 인정한 만큼 한국 경기는 한파를 맞았다.
2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종전 기준금리 연 3.5%를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연속 인상은 사상 최장 기간인 7차례(1.25→3.5%)나 이어진 끝에 멈췄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직전 전망치보다 매번 더 낮은 수치로 수정되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6%로 지난해 11월 전망치(1.7%)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2023년 성장률 전망치는 2021년 11월 2.5% 전망 이후 지속적으로 하향하고 있다.
이번 금통위 결정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주효했다. 작년 아파트 매매가격이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하는 등 부동산 거래 절벽이 장기화하면서 경기 둔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최신 리포트에서는 작년 부동산 거래량은 108만 1765건으로 전년(178만 8267건) 대비 39.5% 감소했다. 이는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실거래 자료를 공개한 2006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지난달 경제고통지수(실업률+물가 상승률)는 8.8로 1999년 6월 통계 개편 이후 역대 1월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이 3.6%로 전달보다 0.6%포인트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운데 물가도 여전히 5%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적자 우려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다. 무역적자가 11개월 연속 이어지면서 2022년 경상수지 흑자 폭은 전년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335억49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 감소했다.
소비자도 향후 물가 오를 거라 전망
美 긴축 메시지 환율↑자본유출 우려
침체 상황에서 고물가 상황은 여전하다.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2%로 전달(5.0%)에 비해 0.2%포인트 상승했다. 소비자의 물가 예측 지표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개월 만에 다시 4%대로 진입했다. 이에 따라 향후 물가 상승 가능성은 더 짙어졌다.
또 미국의 고용과 소비가 강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3월 연준이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연준의 대표적 매파 위원인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와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물가가 예상보다 오래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예상치(6.2%)보다 둔화 속도가 느려진 6.4%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강달러 추세도 다시 돌아왔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1303.5원에 개장했다. 지난 1일 101.22에 종가를 기록한 달러인덱스는 22일(현지시각) 104.59에 종가를 기록했다.
고환율에 국내 물가 상황은 상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2%로 직전 달(5.0%)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금리 역전 차로 인한 자본유출 우려도 떠올랐다. 이번 동결 이후 한미 금리 역전차는 1.25%포인트다.
다음 달 연준이 빅스텝을 밟게 되면 금리 상단 기준으로 5.25%에 달하게 된다. 한국 기준금리가 3.5%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역전 차는 무려 1.75%나 격차가 벌어진다. 이는 1999년 5월 6일 첫 콜금리 목표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큰 역전 폭이다.
이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침체와 자본유출 사이에서 정책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경기가 좋아 금리를 올릴 여력이 있지만 한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는 경기침체 때문에 금리를 올릴 여력이 없다”라면서 “그러나 한은이 동결하고 미국이 다음 달 빅스텝을 밟으면 금리 차는 1.75%포인트 차이 나게 되는데, 이는 자본유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금통위는 금리 동결 결정 이후 “물가상승률이 점차 낮아지겠지만 목표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가 연중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도 높은 만큼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와 불확실성 요인들의 전개 상황을 점검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