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브레이너드, NEC 낙점···연준, 긴축 가능성 높아지나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연준 내 매파 견제 장치 무력화 인플레 재발과 긴축 장기화 우려

2023-02-20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미국 백악관은 1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을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에 공식 임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21년 11월 22일 연준 부의장으로 지명된 뒤 백악관에서 연설하는 브레이너드의 모습.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숱한 화제를 낳았던 tvN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가 막을 내렸을 때 출연자들은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눈물의 의미는 단지 이 드라마가 두 자릿수의 시청률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많은 것에 대한 인간적인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드라마 주인공인 의과대학 의사 겸 교수들의 모습은 완벽에 가까웠다. 진정으로 환자를 염려하고 열과 성을 다해서 돌보았다. 동료로서는 깊은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훌륭한 친구였고 선배로서 또 상사로서도 실력과 인성 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종합병원 전문의들이었다.

연기자들에게는 평생 연기해보고 싶은 이상적인 역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드라마 종영 후 주인공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그냥 뿔뿔이 흩어지지만은 않았다. 나영석 PD가 연출한 예능 버라이어티 ‘삼시세끼’의 ‘슬기로운 산촌생활’ 편에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예능에서 이들은 같이 노동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해 하루 세끼를 별미로 채운다. 그러다가 땅거미가 지면 아름다운 정선의 저녁놀을 배경으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이들의 우정과 사랑은 노랫말에 실린 가사를 통해 시청자에게 은은한 감동으로 다가간다.

한편, 전장에 나서는 로마군의 진두에서 화려한 투구에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마상에 높이 앉은 카이사르는 일장 연설로 병사들의 사기를 돋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병사의 마음을 들끓게 해 곧 죽을지도 모르는 살벌한 전선으로 달려 나가게 만든다.

이처럼 언어의 힘은 강력하다. 높은 연단에 선 지도자의 연설이 가지는 힘은 더욱 강하다. 영화 ‘LBJ’는 1963년 인기가 한창이던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이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충격적인 암살을 당하고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B 존슨(LBJ)이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얼떨결에 대통령이 되었지만 전임자의 그림자가 워낙 컸던 터라 LBJ에게는 확실한 지도력을 보여줘야 할 계기가 필요했다. 그는 1965년 1월 초에 있을 대국민 연두 연설을 기회로 삼기로 했다. 문안을 다듬고 다듬으며 심혈을 기울여 상하 양원이 모인 합동의회에서 열변을 토했다.

의회의 양원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 인사가 총출동해 연설을 경청하는 가운데 국가가 처한 주요 의제에 대하여 심도 있게 대통령의 입장을 설명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 SOTU)이라 불리는 이 웅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나서야 LBJ는 비로소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LBJ는 처음으로 심야에 시간제한 없이 TV를 통해 전국으로 송출되는 국정연설에서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야당 인사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이를 통해 그가 역점을 두었던 사회보장정책인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Great Society)’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 이후 미국 대통령의 심야 국정연설은 전미프로미식축구(NFL) 결승전인 슈퍼볼과 함께 2월에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가장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그것은 현직 대통령인 조 바이든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연설을 통해 비전과 건재함을 과시해 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최근 북미 상공에서 발견된 4개 비행체들에 대한 정부 대응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미국은 이달 들어 북미 상공에서 발견된 중국 '정찰 풍선'과 뒤를 이은 미확인 비행체 3개를 잇따라 격추했다. /워싱턴DC AFP=연합뉴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금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주 화요일(6일) 열렸던 국정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 과제, 그리고 정책 방안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그의 이번 연설은 과거에 비해 위기감보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의 상당 부분을 경제 부문의 성과와 과제를 설명하는 데에 할애했다. 그는 과거 미국의 생산설비가 대거 해외로 이전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그 결과 중산층이 붕괴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미국 반도체 산업의 침몰과 공급 부족 그리고 인프라스트럭처의 노후화로 인한 문제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 위기를 타개하고자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제정해 국내외 자본의 적극적 투자를 유치하고 재임 중 제조업 부문에서만 8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비제조업 부문을 포함하면 12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실업률은 50여 년 만에 최저치인 3.4%로 떨어졌다고 자신의 경제 성적표를 소리 높여 자랑했다.

그러면서 바이든은 진보적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약속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충전소를 수년 내에 50만 개 확충하고 인슐린 등 의약품 가격의 통제에 나설 것이며 재산 1조원이 넘는 슈퍼리치와 대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것임을 천명했다.

무엇보다 공룡 석유회사들이 240조원이 넘는 흑자를 달성하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자사주 매입에만 골몰하는 행태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자사주 매입에 대하여 1%를 부과하는 현행 특정세(excise tax)를 4배로 높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거대 플랫폼 기업을 비롯한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반독점정책을 강화하고 노동조합의 결성을 지원하며 대학 학비 감면, 총기 규제, 낙태 허용 등 진보정책을 유지할 계획임을 밝혔다. 대외정책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에 초점을 맞출 것을 천명했다.

그런데 바이든의 연설을 들으면 그의 현실 인식이 낙관으로 가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년까지 국정의 최우선 현안으로 강조하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거의 들을 수 없다. 또한, 미국 가계와 기업이 광범위하게 예상하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위기 국면에서 리스크관리에 나선 지도자의 모습보다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승리를 눈앞에 둔 전투에 임하는 사령관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의 위험선호적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번 주에 발표된 레이얼 브레이나드(Lael Brainard) 연방준비제도(연준) 부의장의 백악관 ‘전미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 위원장 선임이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재무부와 백악관에서 근무했던 브레이나드 부의장을 과거 청와대 정책실장과 유사한 자리에 임명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하면 집권 2기 재무장관으로 유력해 브레이나드 본인의 행보에도 해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연준 내 비둘기파의 입장을 대변하던 연준의 2인자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파월 의장을 비롯해 현재 우위를 보이고 있는 연준 내 매파를 견제할 장치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된다. 바이든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인플레이션이나 연준의 고강도 긴축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의 이러한 인식이 인플레이션의 재점화와 연준의 과도한 긴축으로 이어질지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