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우즈베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실크로드 최고 오아시스, 히바 수줍고 짓궂은 황금 이빨 여인 소매치기가 아니라 한국팬이요

2023-02-16     박재희 작가·모모인컴퍼니 대표
우즈베키스탄 히바(Khiva)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오아시스 도시다. 이름에서 알지브라(algebra),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위대한 과학자였던 알 호리즈미(Al Xorezmy)의 고향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가 다가온다. 집요하게 서늘한 눈길을 보내던 여인이다. 내가 히바(Khiva)의 성안 마을 이찬 칼라에 있는 주마 사원에 들어설 때부터 그는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회랑을 돌면서 나를 따라오는 여인을 곁눈으로 살피며 나는 긴장의 끈을 당겼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겨드랑이 사이의 현금 파우치를 눌러 단속했다.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련연방에서 독립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학습 단계에 있고 지하 경제가 공공연하다. 타슈켄트행 비행기에서 만난 사업가는 나에게 우즈베크에 가더라도 절대 은행에 가서 환전하지 말라고 했다. 정부 거래 공식 무역이 아니면 모두 암달러상을 통한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당시 공식 환율이 1달러당 3000숨(cum)이었는데 ‘따블 숨, 따블 달라’를 외치던 환전상은 달러당 6000숨으로 계산해 주었다.

50달러 한 장을 건네고 지폐를 100장씩 묶은 커다란 돈뭉치 세 개를 건네받았다. 두 손으로 쥐기도 어려울 만큼 거대한 부피의 현금에 갑자기 부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빵빵한 현금으로 부풀었던 마음이 지금 나를 따라오는 여인 때문에 불안해 터지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너 다시 왔네? you come again?”

잔뜩 긴장한 내게 그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내가 몇 시간 전에 왔던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길 실크로드의 마지막 오아시스로 세계의 중심지였던 히바에는 지난 3000년 동안 켜켜이 쌓인 문명의 지층이 남아 있다. 예수가 태어나기 600년 전 탄생한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이 일상에 녹아 있고 고대 페르시아 유적과 이슬람 문명까지 모두 섞여 있는 이 사막 도시는 그 자체로 박물관이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이찬 칼라를 관광하려면 공인해설사의 안내를 받게 되어 있다. 나도 문화해설사가 이끄는 그룹에 끼어 주마 사원을 둘러봤었다. 오래된 영화 <대장 부리바>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던 해설사를 따라 이찬 칼라의 아름다운 모스크와 메드레세를 돌아보며 도시를 구석구석 구경했다. 

그룹과 헤어진 후 주마 사원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 온 참이었다. 나를 기억하다니···. 더 불안했지만 불안을 감추고 최대한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와 마주 섰다. 그러면서 현금 파우치를 다시 한번 겨드랑이로 눌러 단속했다. 여자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까레아. 한국 사람이예요.”

 “대.장.금. 나 대장금 알아. 좋아해.”

히바 성 안 마을 이찬 칼라의 주마 사원_ 218개 목재 기둥이 유명하다. /사진=박재희

한국을 좋아한다는 그는 드라마 이름을 줄줄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여인의 두 눈에 가득 들어있는 하트가 보였다. 그는 우물쭈물하는 내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사진 찍어. Photo, Photo.” 무언가 노리는 표정이었던(나의 건방지기 짝이 없는 몰이해였음을 고백한다) 그가 수줍게 웃으며 사진 모델을 자처했다.

말을 걸고 싶어서 망설이며 타이밍을 엿보던 여인을 소매치기로 의심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난 일부러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했고 그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깔깔댔다. 배꼽을 잡으면서도 손으로 입을 가리다가 내가 활짝 웃으라고 주문하자 그는 손을 내렸다. 순간 입 속이 번쩍번쩍, 윗니가 모두 황금이다. 힙합 전사도 아니고 사막 한가운데 사는 중년 여자에게 황금 이빨이 웬 말인가?

“어머. 너는 이가 모두 금이네.”

그녀가 시무룩해졌다. 중앙아시아에서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금니는 부의 상징이고 유행이었다. 기혼 여인이라면 금니 열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아, 그 여자 시집 잘 갔구나~’ 했다니까. 요즘은 더 이상 황금니를 하지 않는다. 여자는 황금니를 부끄러워했고 나는 그런 그녀가 안타까워 연거푸 예쁘다며 거짓말로 달랬다.

“유 보이? You Boy? 예브 포 걸 , 원 보이.”

이름이 예브라는 여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헤매다가 겨우 통했다. 자기는 딸 넷에 아들이 하나 있다며 내게 아들이 있냐고 묻는 말이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내게 아들이 없다는 말에 펄쩍 뛰며 울상을 지었다.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토닥이더니 기도하는 시늉까지 한다.

우즈베크 여인들에게 아들을 낳는 것은 아직도 중대한 문제다. 평균 16살이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 시작했는데 요즘 늦어져 18~20세에 첫 출산을 한다. 믿거나 말거나 딸을 13명 낳고 14번째 아들을 낳은 여인도 있다고 했다. 21세기에도 아들 생산의 의무를 지고 사는 예브들에 마음이 아팠다. 

한동안 사진 놀이를 한 후 내가 작별 인사를 하자 예브는 바느질 바구니에서 조그만 주머니를 집어 내밀었다. 그녀는 사원 안에서 엽서와 수예품을 파는 여인이다. 좋아하는 한국에서 온 아줌마를 만나 장사도 팽개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후한 가격으로 사 줄 참이었다. 예쁘다고 칭찬하며 얼마냐고 물었다.

“Gift. Free. 선물로 주는 거야. 공짜야.”

“······아냐. 그럴 수는 없어. 내가 사야지. 얼만지 알려줘.”

그는 No와 Free를 연발하며 손사래를 쳤다. 조금 전까지 나를 빤히 쳐다본다는 이유만으로 지갑을 노린다고 의심하지 않았던가. 나는 부끄러웠다. 한참 실랑이했지만 예브는 단호했다. 나는 빵빵한 현금 파우치에서 넉넉히 집히는 대로 꺼낸 돈을 예브에게 건넸다. 그는 주춤하더니 웃음을 거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선물이야. 공짜로 주는 거야. No. Gift. Free.”

히바는 건물만 남은 도시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산다. 살아있는 마지막 오아시스 도시다. /사진=박재희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은 나였다. 소매치기로 의심하더니 알량한 GNP, GDP가 뭐라고 이제는 선물로 주고 싶다는 마음조차 거부하는 꼴이 아닌가. 더는 사양할 수 없었다. 예브를 꼭 안고 볼 인사를 했다.

“예브, 고마워. 너무 예쁘게 만들었다. 라흐맛. 촉 라흐맛.”

종일 앉아 수놓는 그녀가 하루에 그것을 몇 개나 만드는지, 얼마에 팔고 얼마나 버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거칠고 갈라진 손톱을 가진 예브가 나보다 훨씬 보드랍고 화사한 마음을 가졌음을 알고,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을 반기는 열린 마음으로 축복하며 산다는 것을 알 뿐이다.

우즈베크의 낯선 고대 문명은 신비롭지만 나를 매료시킨 주체는 사람들이었다. 히바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은 목화를 키우고, 빵을 만든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젊은 아빠는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친다. 예브처럼 이찬 칼라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수줍게, 그리고 가끔은 짓궂게 깔깔대며. 돌려받지 못할 대상에게 선뜻 좋은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부자 마음을 지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