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지배력 강화 노렸던 현대百 '인적분할' 좌초
각 계열사가 보유해온 자사주가 변수돼 8.03% 지분 가진 국민연금 반대 결정타
'자사주의 마법'을 활용해 정지선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꾀하려 했던 현대백화점그룹의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 계획이 좌초됐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 지주사 전환 실패엔 지분 8.03%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것이 결정타였다. 표결 참여 주주 중 찬성이 64.9%, 반대가 35.1%였다. 안건이 통과되려면 참석 주주 3분의 2(66.7%)가 찬성해야 하는데 약 1.8%포인트 모자랐다.
인적분할은 회사의 재산을 분할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고 기존 회사의 주주에게 신설 회사의 신주를 기존 주주의 지분율에 따라 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가 각각 6.6%와 10.6% 보유한 자기주식(자사주)이 변수가 됐다.
미국은 자사주를 매입하면 바로 소각하지만,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장치가 없는 한국은 자사주를 보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인적분할 과정에서 그 자회사의 주식을 배정하고 모 회사의 이사회가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러한 자사주를 매개로 인적분할 시 지배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자사주의 마법이라 한다.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는 자사주를 인적분할 시 정지선 회장이 최대주주(17.1%)인 현대백화점 홀딩스, 동생 정교선 부회장이 최대주주(23.8%)인 현대지에프홀딩스의 지분율은 주식 교환 과정에서 자사주 지분율만큼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경제개혁연대 등 주주행동주의 단체는 이 같은 대주주 지배력 확대를 이유로 현대백화점의 지주사 전환을 반대했다. "인적분할도 자사주가 있다면,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쓰이는 구조"라고 비판해온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증권학회지에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은 채 보유 비중이 클수록 기업가치가 낮다"는 분석을 내놨다.
토빈의 Q(주식시장에서 평가된 기업의 시장가치를 기업의 자산가치로 나눈 비율)로 측정한 기업가치는 자사주 보유가 많은 그룹이 적은 그룹보다 약 24%포인트 낮았으며, 시장-장부가비율(보통주의 주당 장부가격에 대한 시장가격의 비율)은 약 43%포인트 낮았다.
현대백화점은 주주총회 이후 입장문을 내고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그간 추진해온 지주사 체제 전환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백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향후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재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