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위세 당당한 양반집 마님으로 산 1시간 20분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 도전기] 네 번째 작품에서 주연 맡아 딸 연기 보려고 80 넘는 어머니 동생들 총출동 응원···코로나로 동료 대신 가족들과 뒤풀이
(지난회에서 이어짐)
드디어「산국」이 무대에 오른다. 리허설을 끝내고 난 뒤 지도 선생님께서 “연습한 그대로 하면 된다”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할 수 있지. 우리가 누구냐? 50년의 연기 경력을 가진 대배우에게 가르침을 받은 우리 아닌가?’ 공연 첫날, 우리는 지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새기면서 화이팅을 외쳤다.
입장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자 당당하게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해설자의 나레이션이 시작되며 막이 올랐다. 연습을 많이 해서일까? 떨리지도 긴장되지도 않았다.
「산국」의 첫 대사는 양반집 마님이다. 양반집 마님이 누구냐고? 바로 나, 김정희이다. 드디어 주인공을 맡게 된 나.
지나온 나의 좌충우돌 연기에서 맡은 배역을 되돌아보면, 단 두 번의 출연에 다섯 줄의 대사가 전부였던 첫 무대. 찌그러진 깡통 같던 스스로를 위로하며 존재감을 느끼고자 애썼던 그 순간. 다섯 줄의 대사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가! 배역에 맞는 의상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여기저기 둘러보았고, 대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름 분석하면서 애썼던 그 순간들. 시장에서 산 저렴한 원피스를 입고 무대 위에서 애드립을 하며 털썩 주저앉았던 짧은 등장의 「기억」.
주인공의 첫째 딸로 나름대로 대사가 많았던 두 번째 무대. 엄마와 두 딸의 인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 플래카드 디자인을 고민하며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결정하느라 동료와 주고받은 수많은 문자와 전화.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주문하고 자질구레한 물품들을 자르고 붙이면서 분주하게 보냈던 시간. 나이 어린 동생의 죽음 앞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랑 여자 그리고 삶」.
그리고 야심 차게 찍은 영화에서 눈 주변이 시커멓게 번진 아이라인으로 검은 판다가 생각난 세 번째 작품. 선배가 그려준 까만색 아이라인이 눈꺼풀 위로 번져서 눈두덩이가 꺼멓게 범벅이 되어 버린 내 얼굴. 배우가 아닌 대나무 위 검은 눈의 판다가 오버랩되어 중간에 영상을 꺼버린 영화 「언니 잘 먹었어」라는 세 번째 작품. 친구들에게 한껏 자랑했다가 혼자만 보고 기억 저편으로 던져버린 내 생애 첫 영화. 며칠 후에 끝까지 보긴 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영화.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 작품이다. 크게 심호흡하고 객석을 바라본다. 세 번째 줄에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양 옆에 동생들이 앉아 있다. 지금 엄마는 심장이 강하게 뛰고 있을 것이다. 딸 아이의 첫 피아노 연주 때 내가 그러했으니까. 잘할 것이다 믿으면서도 끝까지 조마조마했던 그때의 그 심정이 되어 있을 엄마가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구 이젠 더 이상 못 걷겠다”로 첫 대사를 쳤다. 잠시 후 며느리의 대사가 이어지고 “에미야, 얘! 우리 죽더라도 집으로 돌아가자. 얘야 넌 뭘 그러고 섰느냐?”로 두 번째 대사가 이어진다. 왜병들을 피해 어두운 밤에 산으로 도망 온 힘든 상황에서 치는 대사.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강단 있는 마님의 두 번째 대사가 이어진다. 제대로 하고 있다. 배운 대로 “돌아가자”라는 말에 선명하게 방점을 찍는다.
며느리와 주고받는 대사, 몸종을 혼내는 대사, 소작농 아낙과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대사, 의병 활동을 하는 젊은 청년과 물리고 무는 대사, 주인공이다 보니 대사가 많다. 아주 난감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도, 물기가 다 빠진 고목 같은 처지가 되어도 절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빳빳하게 고개 들고 위엄을 갖춘 위세 당당한 마님. 이러한 마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연습했던 순간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많고 많았던 대사 중에서 양반집 마님의 성격을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사. 리플렛 사진 밑에 적혀 있는 그 말. “내 기가 좀체루 꺾일 거 같으냐. 어림없다 어림없어. 내 땅 우리 가문 아무도 손대지 못해.” 어떤가? 이 대사만으로도 마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의 가문을 지킬 자식도 손자도 죽고 며느리마저 자결한 이 상황에서 저 비장한 대사를 치고 있는 마님. 난 이 대사를 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내가 가장 고심했던 이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로 마님 그 자체였다. 비장의 눈물을 속으로만 철철 흘리고 있어야 하는 이 대사. 난 이런 자존심 강하고 좀체로 꺾일 줄 모르는 기세 당당한 양반집 마님으로 1시간 20분을 살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밖으로 나오자 엄마의 미소가 나를 반겼다. 내 목소리가 제일 또박또박하게 잘 들리더란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고 당연한 말씀이지 않은가? 그날 나는 엄청난 선물과 꽃다발을 받았다.
지인들과 가족들과 함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웃으면서, 껴안으면서, V자를 그리면서. V자는 그날의 내 마음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코로나로 인해 동료들과 뒤풀이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근사한 파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남편과 딸들, 동생들과 올케, 대식구가 모였다. 그날은 주인공인 나의 연기 이야기로 긴 시간을 보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엄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