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북 송금 의혹 김성태 회장, 통일부에 신고 안 해

문재인 정부 5년 민간 대북 송금 승인 0건 같은 기간 김 회장, 800만 달러 송금 의혹 권영세 "사업 목적 중 금전 거래 내용 없어"

2023-02-08     김현우 기자
8개월간 도피 끝에 태국에서 붙잡힌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지난달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이 북한 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2019년, 통일부에 신고 및 승인을 받고 금전을 북측에 보낸 민간 기업이나 개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회장이 북측에 800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신고 없이 전달했다면 국내법은 물론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규정한 유엔과 미국 국제법 위반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8일 여성경제신문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간 인도적 차원에서 북측에 송금을 신고한 사례는 0건이다. 특히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북을 위해 북한에 800만 달러를 보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와 관련된 통일부에 신고된 내용이 없었다. 

지난 2018년 11월 16일, 당시 언론보도 등 내용을 보면 중국 선양에서 송명철 당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실장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성태 쌍방울 회장은 대북 사업을 위한 '경제협력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2019년 쌍방울이 임직원 수십 명을 통해 달러 현금을 책 사이 등에 숨겨 출국한 뒤 중국 선양에 있는 관계자에게 전달하고 귀국하는 방식으로 외화를 반출한 것으로 봤다.

검찰에 따르면 쌍방울의 해외 밀반출은 2019년 1월과 11월에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해당 시기는 쌍방울이 북한과 경제협력사업 관련 합의서를 작성한 시점과 유사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해당 돈이 대가로서 북한으로 흘러갔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쌍방울은 2019년 1월과 5월 북측 조선아태위 및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측과 만나 북한 희토류 주요 매장지인 단천 특구 광물자원 개발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서를 체결했다.

당시 합의 대상자인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는 대표적인 ‘남북경협주‘로 부상했고 아태협 안부수 회장을 사내이사로 영입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당시 나노스 주가는 장중 30%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통일부가 문재인 정부 5년간 대북한 인도적 지원 사업 내역. /태영호 의원실

통일부 자료를 보면 2017년엔 민간단체 한 곳에서 신청한 의료설비 등 3억원 상당의 대북 지원 등을 승인한 것이 전부다. 또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던 2018년엔 13개 민간단체에서 의약품, 의료소모품, 영양물품, 산림자재, 농자재 등으로 약 65억원 상당의 지원을 신고했다.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회동이 있었던 2019년엔 15개 민간단체가 의약품, 의료소모품, 영양물품 등 170억원 상당의 지원을 신고해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했다.

이후 통일부는 2020년 같은 항목으로 23억원 상당의 지원을, 2021년 의료장비 등 26억원 상당의 지원을 승인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에도 2개 민간단체가 의약품, 의료장비, 영양물품, 종이 등 18억원 상당의 지원을 신고했다. 하지만 이외 통일부가 승인한, 민간을 통해 북측에 물품이 아닌 금전이 직접 전달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13조에 따르면 북한에 물품을 반입하려는 자는 품목, 거래형태 및 대금결제 방법 등에 관하여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인도적 대북지원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제19조 1항을 보면 정부는 사업 추진의 자율성 및 세부 사항의 비공개를 요청하는 해당 단체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고, 남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영업상 비밀 등을 감안해 단체명 및 내역 등을 비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위한 민간 단체의 반출입 신고 현황 /태영호 의원실

여성경제신문이 추가로 통일부가 지정한 총 149개의 대북지원 지정단체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도 '쌍방울'은 보이지 않고 있다. 쌍방울그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재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본지에 "당시 김성태 전 회장이 북한과 대북사업을 논할 때 통일부 신고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인지도가 알려진 민간 기업의 북측 접촉을 통일부가 모를 수가 없지 않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에선 쌍방울이 통일부에 허위보고를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쌍방울이 단둥에 각각 두 번 정도 출장하면서 사전신고와 사후신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통일부에 신고한) 사업 목적 중에 돈을 갖고 간다는 내용은 당연히 없었고, 희토류 등 광물 사업을 한다는 부분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통일부가 쌍방울에 대북사업을 허가한 것은 2013년이 마지막이다. 당시 쌍방울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북한 내 위탁가공사업'을 허가받았으나 사업은 진행되지 못했다.

국정감사 당시 권 장관도 "쌍방울과 함께 간 아태평화교류협회가 통일부에 제출한 결과보고서에 북한 자원개발 등 사업에 대한 내용도 없었다"고 답변했다. 

결국 김 전 회장이 자신은 나노스를 중심으로 하는 자원개발 등 대북 경제협력 사업에만 집중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신고 의무조차 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019년 불법 대북 송금 이후에도 쌍방울이 북한 측에 부적절한 지원을 해온 사실이 증거은닉교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부수 아태협 회장의 과거 발언에서 확인됐다.

안 회장은 지난 2021년 유튜버 '오픈뉴스'와 '新명불허전'이라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쌍방울이 현금 수억원을 비롯해 코로나19 기간 마스크 10만 장을 일본의 '조선학교'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북한 통일전선부의 해외공작 조직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관리하는 조선학교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분류되는 기관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지에 "800만 달러 대북 송금이 검찰 조사 결과 사실로 확정된다면 이것은 국내법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연합(UN)과 미국 그리고 한국 등 대북 제재와 관련된 국제법과도 연결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