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사는 프랑스 청년 "꼰대가 있는 게 부러워요"

프랑스 청년이 본 한국의 청년 세대 '한강의 기적' 만든 선배 둔 건 행운 "꼰대한테서 치열하게 배우고 싶다"

2023-02-16     김현우 기자
지난달 프랑스 대사관에서 열린 새해 파티에서 한 관계자가 프랑스산 샴페인 G. H. Mumm & Cie를 따르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교수님이 회식 중 돌연 '늙은 사람은 빠져야지'라며 집으로 가셨어요. 저는 교수님과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같이 있자고 했는데, 한국 친구들은 '아니야 이럴 땐 그냥 보내드리자'라고 하네요. 이해가 안 됐어요.

교수님이 가시고 친구가 그랬어요. '쟤는 꼰대야. 꼰대가 뭐냐고? 자신의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형된 속어야'라더군요." 

올해 한국 나이 31살인 알제리 이민자 출신 프랑스인 지브리엘(Jbrinelvl)과 30살 캐나다 퀘벡 출신 제이슨(Jason)이 여성경제신문을 만나 한국에 대해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K-팝 세계화의 환호로 어우러진 분위기 속 한국 청년 세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조금은 당황스러운 인터뷰였다. 

이들은 각각 주한 프랑스 대사관 근무, 퀘벡에 위치한 수소 관련 스타트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년여 시간을 한국에서 지냈다. 물론 이들도 K-팝을 좋아하고 비빔밥을 사랑한다. 그런데 이들은 음식이나 예절, 문화가 아닌 한국의 세대차이 및 세대갈등에 관심을 보였다. 나이로 나뉜 한국의 경계를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노하우를 물어보세요.

지브리엘 "최근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보니 정장을 입고 하루 대부분을 생활해요. 그날도 평일이라 정장을 입었어요. 퇴근하고 한국 친구들이 모인 언어교환 스터디그룹에 참여할 예정이었어요. 퇴근하자마자 그룹에 정장을 입고 참여했죠. 이날 우린 '아빠 엄마 이모 아줌마 아저씨' 같은 단어를 배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저씨'라는 말이 나오자 한 한국 친구가 정장을 입고 있는 저를 가리키더라구요. 저보고 '아저씨'라고 한 거에요. 왜냐고 물었더니, 제가 입은 와이셔츠에 땡땡이 문양이 그려져 있고, 스트라이프(줄무늬) 넥타이를 맨 데다 정장을 입고 있어서 아저씨라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그랬어요. '한국에서 그런 스타일하면 아저씨 소리 들어!'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제이슨 "아저씨라는 단어에 집중해보고 싶어요. 제가 태어난 캐나다에 위치한 작은 프랑스라고 불리는 퀘벡에선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해요. 프랑스어엔 '므슈(Monsieur)'라는 단어가 있어요. 한국어로 치면 '나으리' 혹은 요즘 세대에겐 '아저씨'라고 해석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는 이 단어를 상대방을 존중할 때 사용해요. 원래 므슈는 귀족이나 왕족을 가르키는 말이었거든요. 한국에서는 존경하는 분을 만났을 때 이름 뒤에 '선생님'을 붙이더라고요. 같아요. 예를 들어 누군가 저를 존중할 때 '므슈 제이슨(Monsieur Jason)'이라고 해요. 하지만 우린 '꼰대'라는 단어는 없어요."

16일 여성경제신문이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지브리엘(왼쪽)과 제이슨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지브리엘 "꼰대는 한국의 세대 갈등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라고 봐요.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 유럽에서도 세대 갈등은 있어요. 확실해요. 한국에서 느낀 점 중 흥미로웠던 사실은 대부분의 20~30대 한국인은 프랑스를 자유롭고 여유로운, 세대 갈등 따위는 없는 모두가 평등한 나라 그런 이미지로 보더라고요.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몇 년 전 프랑스에서 국민가수로 불리는 장 자크 골드만이 세대 갈등을 표현하는 내용이 담긴 노래를 냈다고 해서 이슈가 된 적이 있어요. 노래 내용을 잠시 해석해드릴게요.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이겨낸 것들. 이제 너희들 차례. 하지만 움직여야 한다. 오늘 나는 너의 젊음이 너무 부럽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젊은이를 표현한 거에요. 2절에선 젊은 세대가 말하는 내용이 있어요.

'당신들은 모든 걸 가졌어요. 평화, 자유, 그리고 많은 일자리. 우리는 실업과 폭력, 에이즈.'

젊은 세대가 느끼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은 전 세계 어디든 비슷한 양상으로 발생해요. 우리는 작년 청년 실업률이 25%에 달했어요. 이를 두고 기성세대는 프랑스에서 젊은이들이 일하지 않고 여유만 부린다는 비판을 하곤 했죠."

제이슨 "프랑스인은 대화를 많이 해요. 어딜 가나 항상 입을 쉬지 않아요. 프랑스 사람 두 명이 모이면 사랑을 하고 세 명이 만나면 혁명을 일으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만약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것을 대화로 풀고자 노력해요. 최대한 각자의 고정관념을 나누고, 함께 생활하는 데 있어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끔 노력하는 거에요."

지브리엘 "동의해요.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존중해요. 한국에서 느낀 점이 있어요. 회식하면 연차가 가장 어린 사람은 가기 싫어도 결국 눈치를 보다 회식에 참석하곤 해요. 이를 당연하게 보는 시각이 아직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프랑스는 그렇지 않아요. 내가 싫으면 강하게 싫다고 표현해요. 친구와 약속을 잡았어도 약속 당일에 가기 싫어지면 솔직하게 표현하고 가지 않아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다 보니 일을 할 때도 관리자와 실무자 간 갈등이 한국보다 적은 것 같아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제이슨. /여성경제신문

제이슨 "라떼('나 때' 내가 어릴 때는)라는 단어도 참신했어요. 나이가 든 사람이 본인의 경험을 당시 본인 나이인 후배에게 말하면, 후배는 '또 라떼 나왔다'라며 비아냥거리는 모습도 충격이었어요. 이 부분에 대해 주변 프랑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봤어요. 우리 프랑스 문화에선 내가 부족한 점을 선배에게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조금 이기적인 부분일 수도 있어요. 나보다 먼저 같은 분야를 경험해 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서든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해요.

사실 경험이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르다고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순간은 '현재'라고 봐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현재진행형'인 거죠. 시간이 흘렀을 뿐 하나의 선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 거죠. 과거가 현재가 됐고, 현재는 미래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봐요. 선배가 겪은 경험이 현재가 됐고, 그 현재 위에서 나는 미래의 방향을 잡기 위해 선배의 과거가 필요한 거죠." 

지브리엘 "그만큼 과거가 중요해요. 그런데 앞서 소개한 일화처럼 선배의 경험을 들을 기회를 '꼰대는 집에 가야지'라며 차단부터 하면 큰 기회를 눈앞에 두고 놓치는 격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아쉽죠. 이런 상황을 한국에서 굉장히 자주 목격해요. 값진 경험을 공짜로 가질 기회를 그냥 버리는 상황이 너무 아쉬워요. 물론 기성세대가 본인의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하지만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젊은 세대는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죠. 나한테 이득이 되는 부분만 내 것으로 만들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버리면 돼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지브리엘. /여성경제신문

제이슨 "아참, 한 가지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 인턴을 하는데 선배와 대화하며 그 대화 내용을 모두 녹음하는 친구를 본 적 있어요. 처음엔 '한 가지도 놓치기 싫어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느끼며 굉장히 감동했어요. 그런데 내막은 다르더라고요. 그 친구는 '평소에 이 선배가 이상한 말을 많이 해서 모든 순간 녹음한 후 꺼림칙한 말을 하면 인사팀에 알려줄 예정이야. 제이슨 너도 한국에선 이렇게 해야 해.' 수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만나는 사람과 이런 관계로 일을 해야 한다니···."

지브리엘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보면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프랑스는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선진국이었죠. 하지만 한국은 남존여비나 유교적 질서 같은 전통적인 사회관이 짙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6.25 전쟁까지 겪으며 최빈국으로까지 내려앉았었다고 배웠어요. 이 상황에서 국가는 경제 발전에 총력을 다해야 했기에 노동자 권리나 복지, 윤리 등 개개인의 권익을 생각할만한 상황이 아니었을 거예요.

이때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인 1990년대에 태어난 현재 청년세대의 유년시절 한국은 경제대국에 진입했죠.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급격한 경제성장에 맞춰 기존 사회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던 남녀차별, 복지 시스템, 노동자 권익, 소수자 차별 등 여러 신시대적 문제와 자유주의, 진보주의적 사상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서 후유증을 겪는 거라고 봐요."

제이슨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프랑스 사람의 관점으로 봤을 때 '꼰대' 문화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의 기성세대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세대예요. 이 사실은 전 세계 누구에게 물어보든 변함없는 사실이에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한국의 청년 세대가 부러워요. 한강의 기적을 직접 만든 세대와 함께 일할 수 있잖아요. 그들로부터 독하게 노하우를 뽑아낸다면 청년세대 개개인의 발전에 엄청난 도움을 불러올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회식 자리에서 '꼰대는 가라'는 등의 문화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