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부조직법 논의 합의 실패···지지부진 여가부 폐지, '역풍' 우려
여성계 "與, 대통령 지지율 떨어질 때 여가부 폐지 입장" 박상병 "여야 합의 없이 처리 불가···지지층 공략 어려워"
윤석열 정부의 주요 대선 공약인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개편안이 거대 야당의 반발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는 가운데 전문가는 여가부 폐지 시도가 여당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0월 여가부를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개편하는 내용의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해당 개편안에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여성권익, 아동, 청소년 등 여가부의 주요 기능들을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1일 정부조직개편안 논의를 위해 여야 3+3 협의체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면서 정부 측은 대선 과정부터 여러 번 의지를 표명한 여가부 폐지 공약을 해를 넘기도록 이행하지 못했다. 이에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무리인 공약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조직 개편을 위해선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협의가 필요하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작은 정부’ 구현을 위해 18부4처였던 당시 정부조직을 13부2처로 축소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22.5%포인트 차의 압승을 거뒀고 새 정부에 대한 지지도 역시 높았지만, 야당의 반대에 부딪히며 통일부, 여가부는 존속시킨 15부 2처 체제에 합의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상정되어도 여야 합의 없이는 처리가 잘 안 되는데, 여가부 폐지에 민주당이 동의할 수 없기에 합의가 어렵다”라며 “여가부를 폐지하더라도 여가부보다 더 강력하게 여성이나 가족, 청소년을 보호하는 부처가 있으면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 여성,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여가부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다른 부처로 분산시키는 것에 민주당이 동의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 폐지에 대한 합의점이 도출되지 못한다면 정부조직개편안은 국회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이에 여성계는 ‘여가부 폐지’ 논의가 또다시 정치적 구호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은 지난 11월 열린 발족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급기야 지난 9월 말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자 돌연 10월 6일 행안부 장관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혐오와 차별의 정치”라고 비판했다.
여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정부조직법 개편 논의를 재개했다. 주호영 국민의힘·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은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6일 1시간가량 3+3 비공개 회동을 열었다. 여야는 국가보훈청의 국가보훈부 승격,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 신설 문제에 대해선 합의를 이뤘지만, 여가부 폐지에 대해선 이견을 재확인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지도부끼리 예산을 비롯해 연말에 고생했다는 의미로 순수하게 식사하자는 게 주목적인 자리”라며 “김진표 국회의장과 추후에도 3+3 회동을 하자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3+3에서 논의됐던 정부조직법과 관련 2개 부처에 대해선 합의가 됐고 여가부 관련해선 아직 합의가 안 됐다”며 “일괄해서 할지, 합의된 것(국가보훈부·재외동포청)을 먼저 처리하고 나머지는 숙의해서 처리할지(결정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여야는 추후 3+3 협의체의 다음 회동 일정을 잡은 뒤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만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여가부 폐지 추진을 다시 한번 약속한다면 지지층으로부터 역풍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박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만약 여성가족부 폐지가 무산돼 버린다면 국민의힘도 다시 처리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상태에서 또다시 그(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세운다면 남성들도 이제 돌을 던진다”라며 “지난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폐지를) 하지 못한 것을 오히려 사과해야 하는데 또 한번 여가부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여가부 폐지에 환호했던 사람들에게도 반감을 사면서 오히려 역풍이 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박 교수는 “여가부를 폐지해서 그 기능을 약화시키고, 그 기능을 다른 부처로 분산시키는 안을 통해 다시 지지층을 공략하는 것은 이미 어렵게 됐다”라며 “다만 만약 국민의힘이 다음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난 다음에는 여가부 폐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