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 더봄] 버림받은 연인, 죽어야 받을 수 있는 애처로운 위로

[한형철의 아리아 속 명작스토리] 대보름에 꿈꾸는 달 탐사 계획 호수에 비친 달님에게 보내는 노래 드보르작 오페라 '루살카'

2023-02-05     한형철 오페라 해설가

최근에 한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달 탐사국이 됐지요. 올 한 해 다누리는 달을 공전하며 관측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아르테미스 계획'의 달 착륙 후보지도 탐색할 예정입니다. 

다누리가 달 상공에서 달 지표면과 지구를 함께 찍은 모습 /사진=항우연

아르테미스 계획Artemis Program은 미국 NASA가 주도하여 2025년까지 달에 우주정거장 건설 등을 하려는 달 탐사 계획으로, 한국도 참여하고 있는 국제 프로젝트이지요.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으로 사냥과 달 등을 상징하는 여신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금활과 은화살을 들고 사슴 등을 사냥하는 활기찬 처녀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태양신 아폴로를 내세운 이전의 달 탐사 프로젝트보다 더 적절한 작명이라 생각합니다. 

활과 화살, 사슴으로 상징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이같이 아르테미스의 상징인 사슴과 달을 소재로 삼아 숲속 호수를 배경으로 사랑과 배신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주는 절망적인 위로를 서정적인 음악으로 수놓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체코어로 된 드보르작의 대표적인 오페라 <루살카>이지요. 드보르작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들었던 물의 요정에 대한 슬라브 신화를 바탕으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접목한 오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드보르작의 대표적인 오페라 <루살카>

물의요정 신화에 인어공주 이야기 접목

막을 올리면, 숲속 달빛이 비친 호숫가에 숲의 요정 셋이 노래하고 춤추고 있습니다. 물 도깨비인 보드닉은 그의 딸이자 물의 요정인 루살카가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아빠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숲속 호수에 와서 수영했던 인간인 왕자를 사랑하여, 자신도 사람이 되어 함께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싶은 거지요.

보드닉은 루살카에게 인간의 영혼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경고하지만, 루살카는 오히려 인간은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하지요. 사랑에 빠진 딸에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음을 아는 보드닉은 인간에게 딸을 빼앗겼음을 직감하고 슬퍼하지요. 그러면서도 오두막에 사는 마녀 예지바바와 상의하라고 말해줍니다. 루살카는 아리아 ‘달에게 보내는 노래’를 부르며 사랑하는 왕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주기를 소망합니다.

   *달에게 보내는 노래 

  오, 하늘 속 빛나는 달님…
  내 사랑이 어디 있는지 말해 줄래요?…
  멀리까지 빛을 비추시어
  누가 여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말해주세요!

 

마녀를 만난 루살카가 인간이 되기를 청하자, 마녀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조건을 겁니다. 첫째, 인간이 되더라도 말하는 능력을 잃고 벙어리로 살게 되며 둘째, 사랑을 실패할 경우에는 저주를 안고 살아야 하며 셋째, 그럴 경우 상대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시무시한 조건임에도 루살카는 주저없이 받아들입니다. 

새벽에 흰 암사슴을 쫓다가 숲에 들어온 왕자는 긴 머리를 어깨에 드리운 아름다운 루살카를 보고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합니다. 대부분의 오페라에서 사랑하는 남녀 주인공은 어김없이 ‘사랑의 이중창’을 아름답게 부르곤 합니다. 그런데 <루살카>에서는 그런 감동을 느낄 수가 없지요. 루살카가 마녀의 저주 섞인 조건을 받아들였기에, 정작 왕자를 만나고도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답니다. 왕자 홀로 (이중창처럼)노래를 이어가는 모습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결국 말을 할 수 없는 그녀는 왕자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 그의 사랑에 응답하지요. 호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아버지와 자매인 물의 요정들이 슬퍼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루살카는 왕자와 함께 호수를 떠납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마디 말도 없는 루살카에 대해 왕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낙담합니다. 그녀와의 포옹이 차갑고 냉정하다며, 그녀를 안아도 불안하고 슬프다고 탄식하지요. 그때 외국 공주가 등장하여 엉뚱한 여자에게 빼앗긴 왕자를 되찾겠다고 다짐합니다. 질투심에 휩싸인 공주는 왕자에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미인은 당신에게 눈으로만 말하고 있군요”라며 루살카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하지요. 루살카는 긴장하여 온몸을 떱니다. 

보드닉이 딸의 그런 모습을 보며 탄식합니다. 사랑하는 딸의 앞날에 닥칠 슬픈 운명을 떠올리며 루살카를 애틋하게 바라봅니다. 물속에서는 모든 것을 누리게 해 줄 수 있는 그였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답니다. 

왕자는 공주를 추앙하며, 그녀에게 창백한 달빛 대신 활활 타는 불꽃이 되어 달라고 하지요. 세상이 자신을 비난해도 공주만이 불처럼 타오르는 자신의 꽃이며, 그녀를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깜짝 놀란 루살카가 왕자에게 달려가 안겨 보지만, 왕자는 그녀를 거부하지요. 보드닉이 왕자에게 결코 루살카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루살카를 배신한 왕자에게 경고하는 보드닉 /사진 제공=국립오페라단

저주를 안고 숲의 호숫가로 돌아온 루살카는 차가운 물속에서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죽기를 원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죽음보다 더 끔찍하다는 것을 알지요. 

그때 루살카를 잊지 못한 왕자가 그녀를 찾아 숲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는 루살카를 목메어 찾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왕자에게 보이며, 그제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루살카의 ‘사랑하는 이여’를 시작으로 그들의 안타까운 이중창을 처음으로 같이 부르지요. “저를 알아보시나요? 내 사랑, 아직 저를 기억하나요?”… 

 * 사랑하는 이여

처음으로 루살카의 목소리를 들은 왕자는 자신에게 키스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면 왕자가 죽게 된다고 그녀가 말하지만, 그는 죽음을 각오합니다. 마침내 그들의 입술이 하나되고, 왕자는 그녀의 품에서 숨을 거두지요. 루살카는 죽은 왕자를 품에 안고 깊은 호수 밑으로 내려가며 신음하듯 기도하지요.

“신이여, 부디 이 사람의 영혼에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