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전단지 알바 뛰어드는 시니어···자칫 과태료 덤터기 쓸 수도

하루 종일 일한다면 5만원 남짓 박스 수거보다 편리, 수입도 짭짤 다만 '불법' 배포일 수 있어 요주의 원칙적으로 구청 신고 후 돌려야

2023-01-31     김현우 기자
전단지 배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한 노인 /여성경제신문

지난 1월 중순 천호역 4번 출구 앞.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에 장갑도 없이 2시간째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는 심재관 씨(72)를 여성경제신문이 만났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패딩점퍼 한 장 걸치고 "영화 보러 와달라"고 외치지만 누구도 관심이 없다.

심씨가 사는 곳은 지하철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그는 "주로 건대입구·천호로데오·강남역 쪽이 유동 인구가 많아서 돈을 조금 더 준다"며 "손목이 아파 물리치료 받으러 가야 하는데 치료비 벌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3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고령층 사이에서 일명 '전단지 배포 알바'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다만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전단지 배포는 자칫 범죄가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날 기자는 앞서 소개한 심씨와 함께 '전단지 배포 알바'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오후 5시에 시작하는 오후 조에 투입됐다. 전단지 배포는 7시가 넘어서야 끝났고 이날 받은 금액은 정확히 1만5000원. 총 300장의 전단지를 돌렸는데 1장에 50원꼴이다. 전단지를 배포해도 약 90%의 행인은 그냥 지나친다. 10분 간격으로 10명 중 3명 정도만 전단지를 받아 갔다. 

전단지를 받더라도 대부분 읽어보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에 넣는 경우가 많았다. 배포율을 늘리기 위해 껌 등을 구매해서 전단지와 함께 건네기도 했지만 효과는 없었고 일부 시민은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감정적으로도 큰 용기가 없다면 공개된 장소에서 전단지를 배포하기란 쉽지 않은 업무였다. 

전단지 알바는 노인들의 마지막 생계 수단인 셈이다. 박스를 수거하는 일보다 조금 더 편하고 수입도 짭짤하기 때문이다. 하루 6시간 넘게 일한다면 5만원까지 수익을 낼 수 있다. 업주 입장에서도 전단지 배포 업무를 노인에게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천호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정모 씨는 "연락도 없이 노쇼를 하거나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학생들과 다르게 어르신들이 성심성의껏 전단지를 나눠주시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하루 5만원이라도 꼭 벌어야 한다며 전단지 아르바이트 찾는 연락도 계속 와서 그만할 수가 없다"고 했다.

2시간 동안 배포해야 할 전단지가 가방을 채우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전단지 배포, 운 없으면 과태료 '폭탄'

한데 전단지를 길거리에서 구청 신고 없이 배포하거나 붙이면 자칫 벌금을 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옥외 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단지를 배포하기 위해선 구청에 신고를 마쳐야 한다. 이후 관할 구청의 승인을 받고 배포 확인 도장을 찍은 후 지정된 장소에서만 전단지를 배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해당 과정 없이 전단지를 돌리면 지자체별 조항 및 전단지 크기 등에 따라 장당 5000원에서 많게는 5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가로등이나 주택가에 전단지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체험하고 있는 기자 /여성경제신문

버려지는 전단지는 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전단지는 종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중국집 메뉴판 전단지나 유흥업소 명함 같은 두꺼운 전단지는 코팅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리수거가 안 된다. 따라서 코팅된 전단지의 경우에는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전단지는 환경미화원에게도 골칫거리다. 특히 홍대, 강남 등 번화가에선 밤사이 수많은 전단지가 거리로 쏟아진다. 대부분 유흥업소 전단지다.

천호에서 만난 한 환경미화원은 "전날 뿌려진 전단지를 치우는 게 새벽 시간 주 업무다. 주말에는 100ℓ 쓰레기봉투가 유흥업소 전단지로 가득할 때도 있다. 전단지 치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상인들은 전단지 공해를 인식하고 있지만 영업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잠실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김모 씨(42)는 "전단지 홍보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주변 식당에서 다들 하니까 안 하면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라며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인건비 부담도 크지 않아 계속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단지 문제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보니 각 지자체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유흥업소가 모여 있는 서울 광진구 일부 지역에서는 인근 거주자를 대상으로 '수거 보상제'를 운영 중이다. 수거 보상제는 유흥업소 등의 불법 전단지를 수거해 구청 등에 가져다주면 일정 액수의 보상금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제도다. 최근 동대문구도 '전단지 등 불법 광고물 수거 보상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길거리에 쌓인 전단지 /연합뉴스

배달업체 간 치열한 전단지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강공원 내에서도 지난 4월부터 전단지 무단배포가 금지됐다. 서울시는 지정 게시판을 설치하고 게시판에만 전단지를 부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단지가 배포되고 있다. 한 구청 관계자는 "전단지 문제의 책임은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들이 아니라 이들을 고용하는 상인에게 있다고 본다"며 "최근엔 SNS 등 대안이 많기 때문에 무분별한 전단지 홍보로 더 이상 행인들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