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기억하면 사라지지 않는다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동생을 만나러 떠난 미국행 기억을 나누며 보낸 애도의 시간
구정 연휴를 끼고 LA를 다녀왔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처음 한국을 벗어난 셈이다. LA에는 동생의 묘가 있다. 성인이 된 이후 20여년간 그곳에서 살며 가족을 이룬 동생은 생의 마지막 시간도 그곳에서 보냈다. 동생을 찾아가야겠다는, 그리고 올케와 조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선 길이기에 여느 때와 달리 아무 준비없이 비행기에 올랐다.
동생이 있는 곳은 캘리포니아 휘티어(Whittier)에 있는 로즈힐 메모리얼 파크(Rose Hills Memorial Park & Mortuaries)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메모리얼 파크라는데 그래서인지 여러 언덕으로 이루어진 작은 산 하나가 소중한 사람들을 기리는 자리로 가득 차 있다.
동생의 묘 앞에 앉아 있으면 멀리 LA 다운타운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삶의 터전이 되었던 LA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정한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봉분은 아니지만 미국 역시 묘비석 아래 관을 두거나 납골을 한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세우는 묘비석이 아니라 땅에 눕혀 놓는 평장묘비석이라는 점이다. 바닥에 놓인 묘비석을 닦고 술 한잔 따라 놓은 후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자리를 정리할 때쯤이 되어서야 주변의 묘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한국과 다른 장례문화와 성묘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게 한 눈에 느껴졌다. 묘비석 앞에 묻어 놓은 꽃병마다 가족과 친구들이 남기고 간 화려한 컬러의 꽃들이 꽂혀 있었다. 국화나 안개꽃 등 하얀색 위주의 꽃을 챙겨가는 우리와 달리 장미, 금잔화, 튤립 등 다양한 컬러의 꽃들이 가득해 멀리서 보면 축제를 마치고 난 자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묘비석 주변의 장식들도 눈에 띄었다. 작은 펜스를 만들어 화려한 모양의 등불을 올린 묘, 고인이 좋아했던 인형들을 잔뜩 가져다 놓은 묘, 여러가지 꽃과 바람개비로 묘비석을 빽빽하게 둘러 놓은 묘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을 찾은 이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LA 근처이다 보니 한국인, 중국인, 멕시칸들의 묘들이 많은데 추모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그 중에서도 멕시칸들의 성묘 문화는 매번 봐도 늘 인상적이에요.” 올케의 이야기처럼 꽃과 인형으로 정성껏 장식을 해 둔 멕시칸의 묘들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어찌나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는지 마치 그 집 앞마당의 한 켠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장식만이 아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꽤 많은 성묘객들이 와 있었는데 우리처럼 잠시 왔다 가는 모양새가 아니라 아예 피크닉을 나온 것처럼 작은 텐트와 간이 의자를 가져다 놓고 빙 둘러 모여 앉아 음식과 환담을 나누고들 있었다. 매트를 깔고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묘 앞에서는 대여섯 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멕시칸 밴드가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은 파티를 하듯 그 앞에서 웃으며 공연을 감상했다. 과연 ‘망자의 날(Days of the Dead)을 여는 멕시코인들 다웠다.
멕시코인들은 매년 11월 1일과 2일을 1년에 한 번 죽은 자가 신의 허락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오는 날이라 생각하는데, 이때가 되면 조상의 묘를 찾아가 생전에 좋아했던 음악을 틀고 초와 인형, 음식과 꽃, 해골장식들로 무덤 주변을 꾸미고 집 앞도 꽃으로 장식한다. 죽은 이에 대한 기억과 슬픔을 나누는 것은 물론 진심으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라 생각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해골과 유령 분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행진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이 날은 멕시코의 중요 축제가 되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다.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면서도 죽은 이를 기리는 멕시코인의 태도와 풍습이 흥미로웠는데 실제 성묘하는 모습 역시 영화 속 스토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날 저녁 동생 집에서 동생의 친구들과 모여 다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동생과의 에피소드를 하나 둘씩 꺼내며 함께 웃었고, 정리된 사진첩을 들추며 서로 어떤 시간을 나누었는지 또 한번 떠올려 봤다.
멕시코인들은 죽음을 3가지 단계로 나눈다고 한다. 첫째는 심장이 멈추는 육체의 죽음, 둘째는 땅에 묻히거나 화장이 된 후 사람들과 멀어지는 사회적인 죽음, 세번 째가 이승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맞이하는 영혼의 죽음이 그것인데 이 세번째 단계를 거쳐야 진짜 죽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기억이 될 때까지는 죽지 않은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에 공감하며 동생과의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