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이상 고온으로 넘긴 유럽 에너지 대란···터널을 벗어났을까?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주식시장선 장밋빛 전망 일색 주가 올라 채권시장선 장단기 금리 역전에 비관론 실물경제 침체는 지금부터가 시작 경계

2023-01-30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지난 14일 명동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날씨는 종종 거대한 전쟁의 향방을 바꾸어 왔다. 유럽대륙의 패권을 놓고 웰링턴이 이끄는 영국군과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결정적 전투를 벌였던 1815년 6월의 워털루 전투가 대표적이다. 나폴레옹은 밤새 내린 비로 인해 선제공격 개시를 늦추었다. 

그 틈에 프러시아 군대가 전장에 도착하면서 협공당한 프랑스군이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워털루 전투 이전에 나폴레옹은 또한 러시아를 침공하면서 혹독한 추위로 병력 대부분을 잃고 철수한 악몽을 겪었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을 침략한 독일군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했다.

침략군을 향해 북극의 냉기를 쏟아붓는 러시아 대평원 동장군의 위력 앞에 유럽 통일을 눈앞에 두었던 나폴레옹도 최신 무기로 무장한 히틀러도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유럽에서 날씨는 러시아의 편이 아니었다.

유럽 대륙의 기온이 평소보다 10도 가까이 오르면서 힘겹게 전투를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군대의 사기가 진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연가스 가격이 이번 달에만 25%가 하락하면서 추운 겨울의 에너지 대란을 걱정했던 유럽 각국도 한시름 놓게 되었다. 

유럽에 만약 혹독한 겨울이 찾아와 가스를 비롯한 연료 가격이 고공행진을 지속했더라면 산업 생산이 타격을 입어 경기는 추락하고 서민들은 극한의 추위를 인내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추위와 싸우는 민심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각국 정부로부터 크게 이반됐을 터였다.

유럽 내 많은 국가에서 친러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던 정부의 입지가 약화되고 민주주의도 크게 후퇴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처럼 가스 공급선을 미끼로 전쟁을 통해 유럽 각국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려는 것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노림수였다.

그런데 이번 겨울 유럽에서 동장군이 힘을 써주지 않으면서 푸틴의 전략은 커다란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유럽이 당면한 에너지 대란에서 벗어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자 유럽연합(EU) 각국이 분열하기는커녕 전례 없이 강력한 역공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독일이 세계 최강의 탱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레오파드2를 우크라이나에 직접 보내기로 했고 이를 보유한 폴란드 등 다른 나라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탱크 지원도 허용키로 했다. 그간 경제난 속에서 러시아의 눈치를 보던 독일 정부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또한, 미국도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에이브럼스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공수하기로 하면서 서방 진영의 대러시아 전선은 한결 공고해졌다. 그런데 이런 독일의 정책 전환은 작년 10월 바닥을 쳤던 제조업 경기의 회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독일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표(PMI)는 작년 10월 45.1 수준에서 최근 47포인트 안팎으로 반등했다. 

이렇게 제조업 전망이 밝아지자 독일 정부는 향후 경기침체는 없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4분기 실질경제성장률이 2.9%에 달하면서 금년 완만한 경기 후퇴를 거쳐 내년에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할 것이라는 연착륙 기대감이 커졌다.

지난 5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들의 모습.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문제는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경기에 대한 전망이 천양지차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식시장은 경기 침체는 염두에 두지도 않은 듯 나쁜 뉴스도 호재로 받아들이면서 연일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채권시장의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신호는 분명하다.

독일 10년 만기 국채와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작년 11월 역전된 후 수익률 격차가 마이너스 40 베이시스 포인트(-40bp 또는 -0.40%포인트) 안팎에서 고착하고 있다. 통상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으면 향후 경기 침체가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미국 채권시장은 어떨까? 미국 국채시장에서 10년물과 2년물 간 수익률이 역전된 것은 작년 6월이었다. 그 이후 장단기 국채 간 금리 격차는 더욱 커져 최근에는 마이너스 70 베이시스 포인트(-70bp 또는 -0.70% 포인트)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선호하는 10년 만기 국채와 3개월 만기 국채 간 금리 격차도 마찬가지다. 두 채권의 금리는 작년 10월에 역전된 후 그 차이를 벌리면서 최근에는 금리차가 -1.26% 포인트에 달했다. 이는 향후 3개월보다 그 이후에 금리가 크게 하락할 것임을 시사한다. 물론 단기금리 하락은 경기 침체로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때 이루어진다.

이렇게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전망이 엇갈린다면 실물경제를 직접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실생활에 밀접하게 쓰이는 포스트잇, 스카치테이프와 같은 소비재뿐만 아니라 수천 가지 종류의 공산품을 생산하는 쓰리엠(3M)의 실적은 경기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그런데 3M의 지난 분기 소비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 가까이 줄어들었다. 금년 전망은 더 암울하다. 이 회사는 이번 분기에 매출이 작년 동기와 비교해 10~15% 감소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면서 회사 핵심인 제조 분야 인력을 2500명 감원할 것이라 발표했다.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챗지피티(ChatGPT)'를 선보인 오픈 AI에 투자해 제2의 성장이 기대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전망도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S의 지난 분기 윈도우 라이선스 매출은 39%나 격감했다.

게임기인 엑스박스(Xbox) 매출도 12%나 줄었다. 컴퓨터 관련 기기의 판매도 마찬가지였다. 급하게 줄이기 어려운 기업 관련 매출인 클라우드 서버 분야에서는 견조한 실적을 냈지만, 일반 소비자의 체감 경기에 보다 밀접한 재량 소비재의 실적은 크게 어두웠다. 이를 반영해 이 회사는 조만간 만 명에 달하는 인력의 감원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주식시장은 거대 테크기업들의 감원 소식을 오히려 호재로 받아들여 상승 랠리를 벌였다. 감원을 통한 비용 감축이 이 회사들의 경영 효율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보다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채 숲을 보기보다 나무만 바라본 결과다.

초봄에 날씨가 따뜻해지고 봄비가 촉촉이 내리면 땅은 젖지만 큰 피해는 없다. 이내 비가 그치면 곧 해가 나와 금방 쾌적한 환경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상류에서 얼음이 녹고 지류의 늘어난 물이 합류하면서 며칠이 지나 하류에는 감당할 수 없는 홍수가 나고 만다.

저금리 상태에서 크게 늘어난 각종 빚이 고금리를 만났다.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숙이면서 최악은 끝난 듯 보인다. 그런데 고금리가 초래한 버블 붕괴의 고통은 이제야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금리 역전 후 최소한 1년이 지나서야 경기침체와 금융경색이 본격화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