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인] "女 정치인, 낯선 존재···할당제? 영원하지 않길"

[신년기획] 세상을 바꿀 여성정치인 '아가저씨' 정의당 류호정 의원 인터뷰 '섬식이' 캐릭터로 노조 홍보 새 바람 "여성 정치인 확대 염두하고 공천해야" "이재명 지키기 개딸 바람직하지 않다"

2023-01-25     최수빈 기자

유튜브 채널 '정치본색'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본회의장에 들어가다 제지당하기도 했어요. 경비하는 분이 "여긴 국회의원만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여성 국회의원이 적기도 했고 국회의원 하면 어두운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을 떠올리다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21대 국회의원의 표준은 ‘대학원을 나온 50대 중반 남성’이다. 여성 정치는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청년과 여성,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노란색 마스크를 쓰고 청바지 차림으로 국회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국회 엄숙주의를 깨뜨렸다. 

“언젠가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로 붙어서 특별하게 호명되지 않는 순간이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 내 성비가 비슷해진다면 굳이 이름에 따로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 할당제라는 제도가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동료가 당한 사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나서면서 노동운동을 하게 된 류 의원은 2018년 정의당에 입당해 성남시위원회 부위원장·경기도당 여성위원장을 거쳐 21대 총선에서 당 비례대표 1번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털털한 성격 탓에 '아가저씨(아가씨+아저씨)'로 불리는 류 의원의 집무실에는 짙은 체리 빛이 도는 ‘가죽 소파’와 권위 대신 노란색 원색 가구와 촬영을 위한 조명, 스크린이 있다. 

21대 국회 여성 의원의 비중이 18%인 가운데 류 의원은 여성 정치 발전을 위해 양적인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천 시 각 정당이 여성 정치인의 확대를 염두에 두고 공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평소에 인재를 길러야 한다. 거대 정당들이 의석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법안이 통과되면 할 것이 아니라 각 당이 신경 써서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 의원이 ‘남초 집단’에 소속된 적은 국회가 처음이 아니다. 그는 ‘남초 시장’인 게임업계에 입사해 노조를 만들다가 사실상 해고나 마찬가지인 권고사직을 당했다. 류 의원은 “직장을 다닐 때 사상 검증을 통해 누군가가 잘리기도 하고 일러스트가 내려가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보통 게임 업계에서 사상 검증을 겪는 분들은 대체로 비정규직이거나 프리랜서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바로 잘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렇기에 부당하게 해고를 지시하는 분들이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류 의원은 “저는 당시 정규직이었지만 면담 후 뒷선으로 팀을 배정받는 일들이 있었다. 주변에 동료 여성들이 부당한 일을 겪는데 평사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지켜보는 것이 참 고통스러운 일이었다”라고 회상하며 “사내에서 갑질, 성희롱 피해를 본 후배가 있었고 제가 증인이 되어서 증언도 했지만, 해결이 잘 안됐다. 결국 피해자가 퇴사했는데 이러한 문제들 외에도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문제 등 각종 부당한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그리고 이왕이면 다 함께 목소리 내면 좋겠다는 마음이다”라고 토로했다. 

류 의원은 지난 2020년 7월 시민단체와 함께 게임업계의 여성 혐오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경제신문이 지난해 12월 30일 보도한 ‘원스토어, 성 상품화 게임에 우수상 논란···게임물관리위도 몰랐다’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의 몸매를 강조해 성 상품화를 내세우는 게임이 우수 콘텐츠로 선정되는 등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성 상품화’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류 의원은 이에 대해 “게임이라는 게 좀 방치된 지 오래인 것 같다. 게임은 문화라고 하면서도 사실상 약간 차순위로, 후순위로 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류 의원은 “그렇기에 지원해야 할 것도 안 하지만, 다른 문화 콘텐츠처럼 동등한 위치에서 등급 분류를 받는 일들도 조금 방치되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나 드라마들도 선정성에 대한 기준에 따라서 등급 분류가 이뤄지고 심각한 경우에는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한다”라며 “게임도 문화 콘텐츠로서 자리 잡으려면 지원받는 것 외에 등급 분류 받는 것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받아야 하지만 실천되지 않으니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2018년 게임업계를 떠난 류 의원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선전홍보부장으로 활동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를 친근하게 줄인 ‘섬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노조스타그램(노조+인스타그램)에 활용하며 강경한 이미지의 노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류 의원 출마 기자회견 당시 “한국 노동운동 홍보물은 류호정 이전과 류호정 이후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평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장세곤 기자

류 의원은 홍보부장으로 활동한 이력을 살려 지난 20대 대선에서 정의당 미디어홍보본부장을 역임했으며 당의 핵심 의제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녹색과 적색, 보라색. 각각 기후 위기와 노동, 성평등을 의미하는 정의당 서브 컬러를 만드는가 하면 페미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폴우파(폴리티컬 우먼 파이터)’라는 이름의 토론 콘텐츠를 유튜브(정의당 TV)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대양당 중심의 정치 구도에서 정의당의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 5% 안팎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이는 정의당의 꾸준한 당원 이탈로도 이어졌다. 류 의원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의당을 두고 ‘전태일 평전 정도는 읽어야 입당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굉장히 허들을 높게 느끼는 분들이 많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아직 거창한 당직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이 허들을 낮추기 위해서 평소에 정의당의 정치를 좀 더 일상적이고 쉬운 언어 좀 더 직관적인 이미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류 의원은 “연말에 있었던 당 대표 선거가 정의당 재창당을 준비할 당 대표 선거였다. 이정미 대표님이 당선되셨고 얼마 전에 지도부 워크숍도 하고 재창당을 위해 의견 수렴하는 과정들을 밟아가고 있다”라면서도 “당이 재정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존폐 위기라는 게 물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한 만큼 당원 지지자분께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달라고 이야기하는 시기도 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대선 패배 이후 2030 여성들이 새로운 민주당 지지자로 떠오르며 입당 러시가 이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2030 여성 지지자들은 자신을 ‘개딸’이라고 부르며 온라인상의 지지를 이어갔으며 비명(비이재명)계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좌표 찍기’ 공격에 나서기도 했다.

2030 여성 중 한 명인 류 의원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렇게 뭉칠 거면 안 뭉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 류 의원은 “대선 끝나고 ‘개딸’이라는 단어가 생겼고 (그들이) 여의도에 와서 집회도 했다. 만약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을 필두로 한 청년 여성들이 여의도에 왔고 그들에게 빈 도화지 한 장씩 드리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나만 써서 피켓으로 들어 올리라고 한다면 과연 이재명 대표를 지키는 문구일까”라며 “아마 박지현 위원장의 살아온 과정을 보면 디지털 성폭력 근절이라든지 비동의 간음죄라든지 그런 것이 먼저 쓰였을 것 같다. 사실 여성 의제를 별로 다루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성가족부의 여성 관련 정책 역시 ‘임신, 출산, 양육’에 관점이 맞춰져 있으며 사회적 성차별을 적극적으로 시정하는 정책은 거의 없다. 부처 출범 후 20년간 정책목표로 내세웠던 ‘성평등 가치 확산’은 올해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처음으로 빠졌다. 지난 9일 발표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따르면 여성가족부의 주요 정책목표에서 ‘성평등’은 사라졌다. 

류 의원은 “요즘의 페미니즘(을 터부시하는 현상), 여성 정치나 청년 정치의 경우 권력을 더 많이 가져가게 됨에 따라서 오는 경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전에는 ‘그래, 좋은 일 한번 해봐’라는 시혜적인 태도였다면 이제는 유의미한 집단으로서 더 큰 권한을 행사하고 정치인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세력이 되었기에 이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더 거세게 비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정계에 류호정 의원이 필요한 이유’를 묻자 류 의원은 “사실 ‘꼭 나여야만 하는가’ 이것은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어 류 의원은 “어떤 분들은 너무 젊어서 잘 못하지 않겠느냐, 경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말씀을 하지만 이것에 대한 장점도 있더라. 경험이 긴 분일수록 여기저기 빚진 데가 많다”라며 “저는 아직 그 정도로 빚진 데가 없기 때문에 당원 지지자분들의 말만 듣고 달려가기가 요긴하다”라고 전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류 의원은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덧붙였다. “임기 초반에 인터뷰하면서 항상 정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무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권력이 없는 사람들 곁에서 일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제 어느덧 국감이 한 번밖에 안 남았다. 이제 마지막 해를 보고 있는 만큼, 임기가 끝났을 때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