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재고 급증 쉬쉬하다 반도체 생산계획 재검토 뒷북

'메모리 감산'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 늦은 시도에도 경쟁사 대비 미온적 SK 물량 줄이는데···설비 조정 수준 올해 투자 5조원 늘린 49조원 계획

2023-01-18     이상헌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지난해 4분기 14년 만에 적자를 보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고민이 커졌다.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는 이재용 회장.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감산'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여온 삼성전자가 기존의 생산 계획을 바꿀 수도, 유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반도체 불황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재고가 급증했기 때문인데 이에 대처하는 모습이 미온적이다. 

18일 반도체업계 안팎에선 삼성전자가 '기술적 감산'에 들어갔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공식 입장이지만, 범용 반도체 설비라인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물량을 줄이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이미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1년 넘게 지속할 것으로 분석하고, 3분기부터 감산에 돌입한다고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감산을 검토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해 10월 5일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데이 2022'에서 내놓은 "(감산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14년 만의 반도체 부문 적자와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고민을 키웠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추가적인 감산 가능성도 열어 놓는 동시에 적극적인 공급량 관리를 진행해오고 있다. DDR5와 고대역메모리(HBM), GDDR6 등 상대적으로 수요가 견조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의 생산에 집중하면서도 웨이퍼(범용 반도체 칩을 만드는 토대가 되는 얇은 원판) 투입량을 10% 줄여왔다.

결국 지금까지 버티기로 일관한 삼성전자도 기술적 감산 작업에 돌입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운데서도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낸드플래시 생산을 위한 클린룸 일부를 시스템LSI를 비롯한 다른 부문으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웨이퍼 투입량을 실제로 줄인 것에 비하면, 삼성전자의 대응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국내외 경쟁사들이 체질 개선을 진행하는 와중에 기존 시설투자 계획에 따른 생산량 맞추기를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삼성전자 재고자산은 25조6800억원으로 직전 연도(13조5000억원) 대비 90% 증가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은 5조2300억원에서 8조9900억원으로 70% 늘었다.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생산업체 마이크론도 반도체 수요 부진을 반영해 올해 10%의 직원을 감축한다. 미국 반도체기업 인텔 역시 3년간 지출 100억 달러(약 12조8000억원)를 절감하는 차원에서 인력을 감축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엔비디아와 퀄컴도 신규 채용을  동결했다.

삼성전자가 기존의 생산 계획을 유지한다면 지난해 44조원보다 5조원 늘린 49조원이 올해 설비투자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 경제일보는 TSMC와의 경쟁 종목인 파운드리 시설투자 비용이 약 25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