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새해의 목표, 플라멩코 춤 추기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손뼉 치고 발 구르는 플라멩코 댄스 오십대 중반이 되어 도전해 봤다

2023-01-17     김현주 매거진 편집장
스페인의 플라멩코를 듣고 볼 때마다 비장한 그들의 표현에 감탄하고는 했다. 그 춤을 직접 한번 춰 보고 싶어졌다. /사진=V2F on unsplash

여성잡지를 만들 때 새해를 맞이하는 1월호에 자주 기획했던 기사가 있다. 새해의 결심(New Year’s Resolution)이 그것인데, 유명인이나 독자들의 각오를 들어보거나 많은 이들이 목표로 삼는 운동, 다이어트, 건강 챙기기 등에 관한 정보와 팁을 주는 내용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에는 누구나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니까. 

2년 전 이맘때의 나의 결심은 ‘요가로 몸과 마음 챙기기’였고, 작년에는 ‘가능한 한 많이 걷기’였다. 이 두 가지 모두 지금까지 잘 유지해오고 있으니 이참에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 줘야겠다.

올해를 시작하면서도 나에게 모자란 것은 무엇이고, 넘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큰 목표를 세워 애써 몰두하려는 게 아니라(그럴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버려야 하고 놓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쥐고 있는 것이 있는지, 채우고 싶은데 안 하고 있는 건 무엇인지 떠올려 봤다는 말이다.

이전처럼 기운이 뚝 떨어지거나 마음이 요동치는 일이 덜하고 잠도 잘 자는 걸 보면 갱년기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것 같은데(지난 몇 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졌다), 이런 상태가 되니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조금 더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줄 수 있는 활동, ‘바이브’를 끌어올릴 수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몇 년째 눈으로만 보고 지나쳤던 동네의 교습소로 들어갔다. ‘플라멩코 댄스’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춤을 출 때면 늘 즐거웠다. 엄마와 같이 에어로빅 센터를 다니며 춤이란 걸 처음 춰 봤던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음악에 맞춰 앞뒤로 뛰어다니다 보면 머리카락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데 그게 그렇게 신이 났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좁은 방에 모여 디스코 음악을 틀어놓고 몸을 흔들던 기억도 선명하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본격적으로 춤을 배워보고 싶어 문화센터를 다니며 재즈 댄스와 라틴 댄스 강좌를 들었다(학교 체육 수업도 포크댄스를 선택했다!). 같이 해보겠다는 친구는 없었지만 혼자라도 상관없었다. 장르별로 달라지는 음색과 비트를 느끼며 몸을 움직이다 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어느새 친숙해지곤 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30대에는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웠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회원 활동을 하며 주말마다 밀롱가(탱고를 추는 장소)를 찾아 다녔다. 플라멩코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파트너가 있어야 하는 춤을 출 수 있는 탱고가 아닌, 혼자서도 뜨겁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플라멩코를 시작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즈음 결혼을 했고, 이후 출산과 육아 그리고 다시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더 이상 춤을 출 수가 없었다. 시간도 없었고, 그럴 마음도 안 생겼다. 

플라멩코 음악은 떨리는 음색의 기타 연주와 목소리로 집시들의 고독과 아픔, 정열을 표현한다. 그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플라멩코 댄스를 추어 보는 건 내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사진=Kazuo Ota on unsplash

그러다 올해 다시 춤 생각이 난 거다.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어요. 20여년 만에 춤을 추는 건데, 괜찮을까요?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잘 따라 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 옆에 정리된 플라멩코 슈즈들과 드레스를 보며 강사분에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걱정하지 말고 시작해보세요. 비슷한 또래분들도 몇 분 계세요. 플라멩코는 잔근육을 많이 쓰고, 박자에 맞춰 손과 발을 움직이는 춤이라 나이가 있는 분들이 하시면 좋아요.” 

플라멩코 댄서들은 기타 연주(토케)와 노래(칸테)에 맞춰 춤(바일레)을 추는데 손뼉(팔마스) 등 추임새를 넣으며 감정을 극대화한다. 인도 북부 파키스탄 지역에서 수백 년을 거쳐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까지 오게 된 그리고 그곳에 정착하게 된 집시들의 사연을 그들만의 정열과 비통함을 담아 강렬하게 표현하는 이 춤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댄서의 감정에 나도 모르게 몰입(두엔데)하게 되곤 했는데, 그 춤을 직접 추게 된다니.

첫 수업 시간, 플라멩코 슈즈로 갈아신고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선생님의 스텝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여봤다. 사파테아또! 구두로 바닥을 쿵쿵 차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큰 스텝으로 땅을 두드려 본 적이 있었던가.

힘차게 발을 구르자 몸이 땅과 가까워지면서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뻣뻣하게 서서 어색하게 동작하는 내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리던 플라멩코 댄서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러면 어쩌랴. 흐느끼는 듯한 플라멩코 음색을 몸으로 느끼며 움직이고 있는데. 멋지게 시작한 올해의 결심도 오래도록 유지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