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고용 아닌데도 법원 "CJ대한통운이 하청 택배기사 사용자"
계약 관계 없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대법원 판례와 엇박자···현장 혼선 예고 학계 "근로계약 없이 처벌하는 건 문제"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법원에서도 유지되면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확대되는 추세다. 근로계약 관계에서만 단체협약을 인정해온 대법원 판결과 대치하는 판결에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부당노동행위란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불이익 취급하는 등 근로자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침해하는 사용자의 행위다.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행할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020년 3월 CJ대한통운은 하청업체인 대리점과 전국택배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이에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2021년 6월 CJ대한통운을 단체교섭 사용자로 판단해 이들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한 CJ대한통운이 중노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노동조합법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만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다"며 "원고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므로 단체교섭 거부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집배점 택배기사들의 근로조건에 대한 CJ대한통운의 지배는 사업 특성상 구조적일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지배력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계속적"이라고 설명했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근로자의 사용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됐다. 이번 판결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하급심의 첫 사례다.
이에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대하는 판결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부당노동행위에 처벌 조항이 있는 상황에서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사람까지도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도 이번 판결에 강력한 우려를 제기했다. 경총 관계자는 "오늘 서울행정법원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아니다'는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로 노조법상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상급심에선) 산업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한 합리적인 판단이 내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CJ대한통운은 "납득할 수 없다"며 "판결문을 받고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택배대리점연합도 "전국 2000여개 대리점의 경영권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유감을 표했다. 법원 판결로 인해 CJ대한통운이 직접 노조와 교섭할 경우 대리점과 택배 노동자 간 체결한 표준계약은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간접고용까지 원청의 사용자성이 일반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택배노조를 대리한 조세화 변호사(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는 "노동조건과 관련해 실제적인 권한과 대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가 교섭 상대인 것은 너무 당연하다"면서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폭넓게 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