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기피 맛집 된 신경과···'라비'가 쏘아 올린 '뇌전증' 면제기준 논란

발작증세 가능성 때문에 군 생활 어려워 치료 가능 질병···증상 개선 후 입대해야

2023-01-13     김현우 기자
가수 라비가 지난 2020년 12월 12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0 올해의 브랜드 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명 래퍼 라비의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된 '뇌전증' 판정 여부를 두고 관련 단체에선 면제 기준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3일 대한신경과의사회 등 의약계에 따르면 라비의 병역 기피 소식으로 논란이 된 뇌전증은 판정 여부도 타 질병에 비해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긴 시간 동안 면밀히 확인 후 뇌전증 판정을 해야 하지만, 이번 병역 기피 과정에서의 판정은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대한신경과의사회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최대 2~3년간 추적 관찰 후 뇌전증 판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특히 군 입대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입대 전 약물 치료와 병행하거나, 우선 입대 후 증상이 심각해지면 의가사 전역을 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뇌전증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간질(발작) 증세를 보이는데, 이때 뇌파를 측정해야 병 판정에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쉽지 않기 때문에 장시간 동안 면밀한 관찰이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의사는 래퍼 라비의 사례를 두고 입대하지 못할 만큼 뇌전증이 심각하면 애초에 연예계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경과 전문의는 본지에 "입대가 어려울 만큼의 뇌전증 환자의 경우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면서 "이럴 경우 일을 멈추고 집중 치료를 통해 환자 상태를 개선하는 치료가 병행된다. 즉 뇌전증은 약물 치료로 호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치료 후 입대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과 병무청 합동수사팀은 라비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합동수사팀은 라비가 뇌전증을 앓고 있다며 재검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신체 등급을 낮춰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뇌전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작이 발생한다. 때문에 과거에는 간질이라고도 불렸다. 다만 간질의 경우 사회적 편견을 일으킬 수 있는 질병명이라는 지적이 있어, 최근에는 뇌전증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를 악용해 군 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일부 입대 예정자들이 병역 기피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병역 면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면제 기준 강화로 인해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최근 뇌전증학회는 입장문을 내고 "뇌전증 환자는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적절한 기준을 통해 병역면제가 이뤄져 왔다"면서 "병역 비리 방지를 목적으로 역차별을 조장시킬 수 있는 병역면제 기준 강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뇌전증에 대한 치료법이 발전한 만큼, 군입대와 관련해선 엄격한 기준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대병원 뇌전증 전문의는 "뇌전증 환자의 70~80%는 약물치료로 호전된다. 이 중 절반은 2~5년의 약물치료 이후 약을 먹지 않아도 경련이 재발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경련이 재발해 항경련제를 복용해야 한다. 따라서 군입대와 관련해서도 충분한 치료를 받은 후 입대가 가능하도록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