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체납 취약계층 12만···尹정부 처분 유예는 험로

대통령실, 처분 유예 정책화 고령화로 건보 재정 적자 예상 건보공단 "취약계층 정의 못 내려"

2023-01-11     이상무 기자
고령화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의 건강보험료 체납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최근 복지 차원에서 납부를 강제하는 처분을 유예하기로 했지만, 기존 정책 기조인 재정 건전화도 무시할 수 없어 순탄치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건보료 체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잇따른 '세 모녀' 자살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14년 숨진 송파 세 모녀는 생활고에도 매달 건보료 5만원을 납부했다. 지난해 숨진 수원 세 모녀의 경우 건보료를 16개월 체납했는데 실거주지 추적이 안돼 비극을 못 막았다.

건보료 장기체납은 중요한 위기징후로 분류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3개월 이상 체납세대 중 무소득 세대수는 70만3000세대, 연 소득 100만원 미만 세대수는 13만5000세대로 전체의 74%다. 특히 재산이 전혀 없는 비율은 78%로 약 100만9000세대에 달한다.

인재근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건보료 전체 체납 세대수는 95만3000세대이며, 체납액은 1조6167억원에 달했다.

6개월 이상 체납해 급여 제한을 통보받는 취약계층은 12만1130명이다. 이들은 병원 이용이 어려워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버티다가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통장이 압류당해 금융 이용이 제한되기도 한다.

취약계층과 관련해 대통령실은 지난달 29일 건보료 체납에 대한 체납 처분 유예 및 연체금 징수 예외 방안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온라인 국민제안'을 통해 정책화 안건으로 정한 것이다.

건보료 체납자에 대한 처분은 독촉기한까지 납부 않을 경우 재산을 압류, 환가, 청산해 보험료 등의 채권에 충당하는 일련의 강제징수 절차를 말한다. 성실한 납부자와의 형평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한 수단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케어를 폐지하기로 하는 등 건보 재정 안정성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건보 재정 지출이 대폭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예측한 건보 재정 연간 적자폭은 2024년 2조6000억원에서 2028년 8조9000억원에 이른다.

노인 인구는 의료 이용이 많기 때문에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진료비·약품비로 쓰는 건보 재정 지출은 커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진료비는 2012년 16조원에서 2021년 39조원으로 두 배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전체 진료비도 같은 기간 48조원에서 93조원으로 늘었다.

체납 징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건보 재정 고갈은 빨라질 전망이다. 한시적으로 체납 처분 유예를 주더라도, 건보료 완납을 기대하기 힘들어 미봉책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체납자 중 대부분은 자기가 건강해서 병원을 안 가기 때문에 납부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게 현실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추석을 맞아 건보료 장기 체납 경제적 취약계층 14만5000명을 결손처분한 바 있다. 이들이 안 낸 1100억원을 탕감해 준 것이다. 이런 정부의 배려를 악이용해 고의적으로 체납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당국은 취약계층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현재 취약계층 체납 처분 유예 방안은 보건복지부에서 검토 중인 걸로 알고 있다"며 "솔직히 어디까지가 취약계층인지에 대해 아직 정의를 못 내리고 있다. 6개월 체납됐다고 무조건 급여가 제한되는 게 아니고 소득, 재산을 감안해서 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