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석왕 한장협회장 "탈시설 논란, 정치권 갈라치기 탓"

갈등 생기면 정치권이 조정해줘야 그런데 야당, 되려 '조장'하고 있어 10년 내 '탈시설' 흑백 논리 버려야

2023-01-04     김현우 기자

탈시설 논란이 뜨겁다. 장애인 복지 시설은 당사자에게 '감옥'이라는 입장과 경증·중증·최중증 장애인을 지역사회와 시설로 나누어 함께 돌봐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탈시설 지원법 통과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2선으로 물러난 상황이지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정석왕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 간의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성경제신문이 이들 각 단체의 입장을 점검하고 장애인 시설 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① '탈시설' 논쟁은 현재진행형, 박경석 vs 정석왕 찬반 구도 이어질 듯
② 정석왕 한국장애인복지시설 협회 회장 "탈시설 논란 접근법 바꿔야"

정석왕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 멀쩡한 TV를 주먹으로 친다. 모두가 잠든 밤엔 집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를 지른다. 다 차려놓은 밥상을 뒤엎는 건 이제 익숙하다. 182cm·82kg의 육중한 몸덩이를 제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도 아니고 아들이 이러니 환장할 따름이다. 내 나이 예순여섯.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을 때도 있다. 장애인 복지 시설 입소도 자리가 없어 마냥 이 지옥 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기다릴 뿐이다. 

최중증 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 A씨의 사연이다. A씨는 지난해 '모든 장애인 시설은 10년 내에 폐쇄해야 한다'는 탈시설 지원법 발의 소식을 듣고 주저앉았다고 했다. 행동 장애가 대부분인 최중증 자폐 장애인을 집에서 돌본다는 건 매일이 전쟁이라고 그는 호소했다. 그나마 장애인 시설이 유일한 대안이지만, 이마저도 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최중증 장애인에게 장애인 복지 시설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물론 지역 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가 담긴 '탈시설'은 이상적인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A씨처럼 시설 입소가 유일한 대안인 현실도 엄연히 존재한다. 여성경제신문이 탈시설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맞선 정석왕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과 단독 인터뷰를 통해 시설 업계 현실을 들여다봤다.

ㅡ자기소개 부탁한다.

"국내 장애인 거 시설 종사자를 대표하고 있는 정석왕이라고 한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줄여서 '한장협'이라고 부른다. 한장협은 전국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 900여개소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단체다. 장애인 거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장애인 거 시설이다. 협회 회장직은 2019년 2월부터 맡고 있다." 

ㅡ장애인 거 시설, 역할 무엇인지.

"장애인 거주 시설이 장애인에게 왜 필요한지 모르는 분도 있을 것이다. '시설은 폐쇄적인 곳', '인권침해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장애인 거주 시설은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중증・고령・발달장애인 등에게 최대한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전문적인 거주서비스를 지원하는 곳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적 특성을 보이는 중증・발달장애인은 행동 장애가 심해서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돌보기 매우 어렵다. 가족이 집에서 매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가족 본인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랑으로 돌보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생긴다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 시설 입소를 통해 가족 대신 중증 및 최중증 장애인을 보호하고 돌보는 곳이 장애인 거주 시설 역할이다. 시설에 입소했다고 해서 사회와 격리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퇴소가 가능하다. 시설에서 거주할 때도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보통의 삶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ㅡ탈시설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먼저 '탈시설' 용어 문제부터 언급하고 싶다. '시설을 탈피해야 한다' 혹은 '탈출해야 한다'는 의미의 '탈시설'은 시설을 전면 부정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장애인의 선택에 기반 한 다양한 거주공간에서 살 권리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개념으로 어떠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며 시설의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가정 내 돌봄의 어려움이 있는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시설은 희망이다. 그런데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들의 희망을 짓밟았다. 지금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을 모두 비하하는 단어다.

시설은 합법적인 기관이다. 또한 대한민국이 사회 복지 인프라와 제도가 열악할 때, 장애인에게 최후의 마지노선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한데 탈시설 논란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시설의 공로를 부정하고 시설에서 종사했던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켰다. 특히 일부 단체에선 시설을 감옥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시설에 대한 접근법이 틀렸다. 특히 시설 종사자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용어가 국회의원 입에서도 등장하니 참담한 심정이다." 

ㅡ장애인에게 시설이 꼭 필요한 이유는?

"과거 한국 사회에선 마을 공동체가 장애인·노인·아동을 돌봤다. 대가족 중심 사회였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가족 구성은 핵가족화됐다. 마을사람 모두가 함께 돌보는 게 불가능해졌다. 결국 주로 부모형제나 소수의 가족이 모든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가정일수록 경제 상황이 넉넉지 않다. 장애인을 돌보느라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에 시설은 유일한 대안이자 희망이다. 그나마 시설에서 장애인을 돌봐주기 때문에 일하러 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마저 박탈당하면 가족의 고통은 극에 달하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확률이 높아진다. 시설이 필요한 이유이고 일종의 예방 복지 역할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ㅡ탈시설, 즉 지역 사회 돌봄을 지향하는 장애인도 있을 수 있다. 시설에서의 인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폐쇄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결국 일정 공간에서 다수가 생활하기 때문이다. 

"먼저 비장애인 사례를 묻고 싶다. 오피스텔과 아파트, 빌라, 주택 그리고 나이가 들면 요양병원, 요양원 등 모두 본인이 직접 거주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장애인은 어떨까.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10년 내 모든 장애인 시설은 폐쇄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다. 선택권을 박탈한다. 중증・발달장애인의 의사표현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도 선택권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 선택권을 정치권에서 박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장애인에게 '무조건 시설을 선택하라'는 것도 아니다. 시설이 필요하지 않다면 집 등 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면 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 선택에 따라 경증 장애인의 경우는 집에서 중증 및 발달장애인은 시설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가정과 시설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사회 돌봄서비스 중에 장애인이 선택하면 된다는 의미다. 오히려 시설 거주 장애인 중 경증장애인의 퇴소가 증가하면 그 자리에 시설 이용을 희망하는 중증・고령・발 달장애인 지원을 통해 이들이 넋 놓고 시설 입소를 기다리는 불상사도 해결할 수 있다. 시설이 아니라고 해서 인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다는 법은 없다. 시설 구조와 운영방식을 다양화해서 충분히 개선이 가능하고 이미 그렇게 운영하고 있거나 그런 방향으로 운영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국회와 정부다. 이들이 나서서 탈시설 문제를 장애인 입장에서 지역 사회와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하지만 되려 국회에선 장애인 업계를 흑백 논리와 정치적 성향을 대입해 이원화시키고 있다." 

ㅡ탈시설을 권장하는 입장에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예시로 들며 시설 거주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애인이 살아야 될 거주권이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유엔권리협약에 나오는 문장이다. 결국 시설을 포함한 지역사회 다양한 돌봄서비스 중 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떤 이유에서든 당사자의 선택 권을 박탈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시설 입장에서 꼭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인 문제를 말하고 싶다. 종사자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표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종사자 1명당 평균 6명의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이들 종사자가 지원하는 장애인 지원 예산은 어떨까. 중증장애인 기준 시 설 이용장애인 1인당 연간 약 4400만원선 인데 비해 재가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는 1인당 최대 1억 2000만원에 가깝다. 시설은 국가가 해야 할 복지 서비스를 대신해 오고 있다. 한데 예산지원은 늘 부족하다.

더 나은 돌봄 서비스 지원을 위해서 시설에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민간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설 유형별 국가 보조금 지원도 차이가 있고 지방 이양 사업의 경우 지자체의 여건으로 인해 지역별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원 30인 이상시설 대비 29인 이하시설은 행정인력 등을 지원받지 못해 영양사 등을 채용하고자 할 경우 모두 후원금이나 자비로 충당해야만 하며, 시설 유형 중에는 지원인력 부족에 따른 근로기준법 준수 조차 어려운 곳도 있다.

시설이용장애인의 보다 질높은 서비스 지원을 위해 종사자 교육을 강화해야 하나 교육 예산 또한 부족하여 후원금 등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설에서만 인권문제가 발생하는지 반문해 본다. 그렇다면 시설이 없어지면 모든 인권문제가 없어지는가. 일반 가정에서의 인권 문제도 매번 발생한다. 사회라면 어느 집단에서든 인권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시설이니까 인권 문제가 발생한다'는 생각 자체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목소리가 큰 단체에 휩쓸려 기존의 사회 복지 서비스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장애인 시설은 과거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시설 입소자를 위한 서비스를 지속하는 입장이다. 시설의 현실을 꼭 국민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처럼 인권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단지 시설 자체에 있는지 인력 및 예산 지원 등 지원구조에서 기인 하고 있지는 않는지 면밀히 들여다 보고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ㅡ장애인 시설 문제가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이유는 뭔가.

"정치권은 탈시설 관련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하나 조정하기는 커녕 조장하는 모양새다. 정치권과 정부는 ‘장애인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에 대해 장애 당사자와 가족, 시설 및 학계 등과 협의 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애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다 진정성 있고 성숙한 자세로 지혜를 모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