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늪’ 빠진 韓, 장기 침체 빨간불‧‧‧“시행령 통해 규제 풀어야”

건설 경기 침체는 내수 침체로 연결 美‧日 장기침체 원인 집값 폭락 지목 법 개정 필요한데 거대 野 반대 장벽 시행령 내려서라도 투기지역 해제 必

2022-12-28     최주연 기자
올해 아파트 매매가격이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법을 경유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연합뉴스

올해 아파트 매매가격이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장기 침체 빨간불이 들어왔다. 장기 침체가 자산 가격 하락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은 이미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규제를 풀어 침체에 대비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169석을 차지한 야당이 규제 완화를 위한 법 개정에 손도 못 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법을 경유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8일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위기의 전조는 부동산 가격 폭등 시기에 구매자들이 빚을 지고 아파트를 구매하면서 시작된다. 폭등도 위험하지만, 폭락은 아주 위험하다”라며 “학계에서는 장기 침체 원인으로 집값 폭락을 원인으로 본다. 일본과 미국의 침체도 자산 가격 폭락에서 기인했다. 한국은 현재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라고 경고했다.

올해 아파트 매매가격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이 떨어졌다. 고금리→거래 위축→거래 절벽→집값 폭락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KB부동산이 공개한 월간주택가격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이 3.43% 하락했다. 지난 1998년(-13.56%) 이후 가장 많이 떨어졌다. 연간 하락률은 세종이 –11.46%로 가장 컸다. 그다음 △대구(-7.11%) △대전(-6.88%) △인천(-6.54%) △경기(-5.47%) △서울(-3.19) 순이다.

통계보다 현실은 더 처참했다. 여성경제신문이 네이버부동산 아파트 실 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햇빛23단지 주공(22평 기준)은 지난해 10월 4억2500만원에 거래됐지만 올해 12월에는 3억에 거래됐다. 1년 새 29%가 떨어졌다.

규제지역으로 남아있는 경기도 광명시의 철산한신아파트(33평 기준)의 경우 지난해 11월 9억9000만원에 거래됐던 집이 올해 11월 6억3000만원에 팔렸다. 1년 새 약 36%가 급락했다.

규제지역으로 남아있는 경기도 광명시의 철산한신아파트(33평 기준)의 경우 지난해 11월 9억9000만원에 거래됐던 집이 올해 11월 6억3000만원에 팔렸다. 1년 새 약 36%가 급락했다. /네이버부동산,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뚝 떨어진 가격에라도 거래되지 않으면 거래절벽 증상이 만연해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까치신원아파트(31평 기준)는 가장 마지막에 거래된 날짜가 2021년 6월이다. 성남시 수정구 백현5단지휴먼시아(33평 기준)는 마지막 거래가 올해 5월이다. 서울 아파트는 올해 거래된 매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따라 일본의 고질적인 장기침체(저성장),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분석도 회자된다. 한국도 장기침체 우려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

1990년대 일본에 닥친 장기침체도 긴축적 금융정책에 따른 '거품 붕괴'에서 시작됐다. 박대근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논문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와 한국경제’에서 “일본 정부가 1989년 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실시한 공정할인율 인상과 부동산 관련 대출 억제를 위한 총량 규제정책이 자산 가격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데는 (학계에) 이견이 없다”라며 “경기침체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문제와 맞물려 증폭되고 장기화됐다”고 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금융완화 및 내수 확대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토지가격(부동산), 주가, 고급 그림 등 자산 가격이 급등했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한국 경제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 현상에 대처하는 한편 선진국 간 정책 협조체제에 부응하기 위해 1986년 이후 금융완화 및 내수 확대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 토지가격(부동산), 주가, 고급 그림 등 자산 가격이 급등했다. 당시 정부는 경기과열 징후에도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않았고 이는 무자비한 거품 붕괴, 경기 후퇴를 불러왔다. 박 교수는 “자산 가격 디플레이션은 장기침체의 발단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부동산 시장 냉각에 민간 소비도 침체 국면이다. 오 회장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부채가 많아지니 국민들이 돈 쓰는 데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됐다. 소비 진작을 위해 부동산 경기 살리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내년 민간 소비, 투자, 수출이 올해보다 모두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민간 소비 증가 폭은 올해 4.6%에서 2.5%로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경기가 올해보다 더 가파르게 하강할 것이라는 추측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現 부동산 고질적인 문제, 위험 과소평가
시행령 통해 대처‧‧‧금융‧외환위기 우려돼

한국의 집값 하락은 IMF도 주시하고 있다. IMF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택시장 안정성과 구입능력' 보고서를 통해 국가별로 2019년 4분기에서 2021년 4분기간 실질 주택 가격 변화를 비교한 결과 한국의 주택 가격 상승은 약 18% 정도로, 뉴질랜드, 호주에 이어 3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까지 더하면 하락 폭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금리도 높고 가계 빚도 많은 상황에서 부동산 위험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라며 “집을 팔아서 빚을 갚아야 하는데 집값이 떨어지니 빚을 못 갚고 있다. 부동산이 가장 고질적인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부동산 대못’을 뽑겠다고 나섰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지난 2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해제하는 내용을 담은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그러나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취득세, 다주택자 대출 규제 등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보다 여전히 까다롭다. 야당이 반대한다면 실현 여부도 불확실하다.

규제지역 해제도 관건이다. 현재까지 규제지역에 포함된 지역은 서울과 경기 과천·성남(분당·수정)·하남·광명 등 4곳이다. 규제지역에서 벗어나면 대출과 세금 규제가 완화되고 분양권 전매도 가능해지면서 부동산 매매가 더 유연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추 부총리는 “투기 지역 등 조정지역에 관해 아직 일부 규제가 묶여 있는데 해제 조치를 1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법률적 수단을 통한 규제 완화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부동산 거래 절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투기 지역 등 조정지역에 대한 규제를 전면 해제한 다음 세금을 줄여야 한다”며 “금리가 안정화되고서 투기지역 규제를 다시 적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법률적 수단을 통한 규제 완화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연합뉴스

김 교수는 “문제는 과거 경기침체 상황과 다르게 국회 법안 통과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협조해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 시행령 등 규제 완화를 위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법 통과를 기대하고 아무 대처도 하지 않게 되면 금융위기를 촉발할 것이다. 이는 외환위기로까지 전가될 여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오정근 회장도 “거대 야당 투쟁이 갈수록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정부는 내년 성장률을 1.6%로 전망하고 있지만 1% 달성도 쉽지 않을 것이다”라며 “투자, 소비, 수출에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우려했다.